[Essay] 유영하는 삶

상처받지 않고 역영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글 입력 2023.12.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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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뛰어드는 순간, 자유로움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소음에서 해방되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부력에 의해 나의 신체가 수면 위로 떠오를 때면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지곤 한다. 수면을 눌러 파동을 만들어내며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아직은 설레고도 낯설지만 누군가에게 ‘나 수영을 좋아해’라고 말할 수준은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왜 수영을 배우지 않았는지. 이토록 재밌는 걸 말이다. 아마도 엄마가 누누이 말씀하셨던 ‘몸에 힘을 빼야 한다’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이지 않았을까 싶다.

 

힘을 뺀다는 것. 사람들은 ‘어깨에 힘 좀 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릴 땐 이 말이 그리도 무책임하게 들렸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가 미웠던 적도 많았다. 남들은 쉽게만 하는 일들이 나에겐 어려웠고 어떨 땐 또 다른 벽을 만난 느낌이었기에. 내면에 학습된 완벽주의는 내가 가장 나답게 존재하도록 도와준 가치관이지만, 가끔은 벗어던지고 싶기도 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물을 보며 자책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님에도 혼자서 땅굴을 파고 들어가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회상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혼자 상처받고 침잠하는 일의 연속이다.

   

 

숨기려 해도 느낄 수 있잖아

이미 사라진 너의 웃음을

말을 할수록 변명처럼 느껴지는 걸

 

아이처럼 맑은 너의 미소를 보며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

그런 말이 너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그 차가운 너의 눈빛도

 

- 윤상, <넌 쉽게 말했지만>

 

 

요즘은 이런 담담한 노래가 좋다. 이별 노래여도 애걸복걸 다시 돌아와달라는 그런 가사 말고, 그저 그 상황만이 머릿속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그런 노래 말이다. 오히려 상황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 상상할 수 있는 폭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다. 가끔 머릿속에 물이 찬 듯 멍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노래의 배경을 상상하곤 했다. 어느 계절, 어떤 장소에서 연인이었던 두 사람이 차디찬 이별을 맞게 되었을지. 서로의 감정이 어떠했을지도.

 

이처럼 생각은 내가 마음껏 노닐 수 있는 잔디밭이자 무한한 영감이 샘솟는 우물이다. 이성을 잃고 널뛰는 때가 있어서 그렇지. 일상에서도 난 모든 것에 생각을 달아두며 산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기대이자, 두려움이자, 성장이자, 애증이다. 어느 날은 소재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빈 화면을 남겨둔 채 노트북을 덮었고, 또 어떤 날에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명료하게 정리되지 않아 야금야금 시간을 끌었다. 표현하고 싶은 게 활자로 술술 풀리는 날이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고, 퇴고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코멘트를 들으면 더욱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불어난다. 그들의 말 한마디가 나를 감동시킨다는걸, 계속해서 글을 쓰게끔 하는 원동력이라는 걸 그들은 알까. 몰입하고 싶은 새벽이면, 쳇 베이커의 트럼펫과 보사노바 재즈를 배경 삼아 마치 유영하듯 뭐라도 끄적인다. 그러다 괜찮은 게 나오면 싱긋 미소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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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싫어하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는 시기이다. 6개월 완성 수영 강습반에 다니고 있어 한창 접영을 배우고 있는데, 물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고비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바로 ‘평영’을 배울 때였다. 평영은 다른 세 가지 영법에 비해 발동작의 정확도에 따라 가동 범위에 큰 차이를 보이는 편이다.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개구리를 떠올리며 나름 열심히 따라했건만, 왜인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질 못했다. 키판을 내려놓고 팔동작을 배울 때까지, 나는 수면에 떠 있질 못하고 자꾸만 허우적거렸다. 숨을 들이쉬고 나서는 깊은 수면 아래까지 가라앉아 자꾸만 발로 수영장 바닥을 짚어야 했다. 그렇게 꽤 지루한 발차기 연습이 계속됐다. 언제까지 연습을 해야 하지. 잘 안되는 걸 건너 뛰고 얼른 새로운 걸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좀 재미가 없어도, 가기 싫어도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었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숨을 쉴 때 명치 쪽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시야가 너무 수영장 바닥만을 항해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연습을 하며 조금씩 자세를 바꿔나갔고 그러다 보니 미약하지만 글라이딩이 되고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물론 아직 팔을 11자로 확실히 펴는 연습이 더욱 필요하지만 말이다. 

 

간절한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는 걸 깨달았다.

 

지루함과 막막함이라는 고통 너머에 존재하는 즐거움이 훨씬 짜릿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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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언제나 내 뜻대로만 흘러가진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굴복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을 직면할 때 더더욱 그렇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붙잡아 두고 싶던 순간들도 이제는 지나가고 허울만 남았다는 걸 직감할 때 크나큰 상실감이 든다. 흔히들 부르는 ‘반오십’이라는 나이를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그렇다. ‘아직 젊다’,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라는 말을 들어도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점철된 매일을 산다.

 

자꾸만 우울에 좀 먹힌 채 일상을 보내는 일이 잦아졌다. 며칠 그러다 말겠지하며 내버려 두기엔 내면의 목소리가 쿡쿡 찌르며 말을 걸어온 탓에 쉽지 않았다. ‘야, 너 언제까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비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건데?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기나 해?’ 반박하기엔 뼈가 아리도록 아프게 모두 맞는 말이었다. 어떻게든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역설적으로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러다 자기계발 유튜버 ‘드로우앤드류’의 영상을 보게 됐다. 지속 가능한 자기 계발을 위한 4가지 루틴이라니, 이런 게 정말 있단 말인가. 메모까지 하며 영상을 집중해서 시청하고 나니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플랜을 세우고, 실행하고, 이를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동기부여를 받는다는 것. 어찌 보면 굉장히 심플하고도 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방법이 직관적이라 가장 좋았다.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도. 마침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지체 없이 바로 매일매일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수능 준비 이후로 플래너를 이렇게 자발적으로 쓰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두고 보니 몸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부터 시간을 쪼개 차근차근 일을 해나갔다. 밤이 오면 오늘을 점검하고 내 감정에 대한 답글을 썼다. 매해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게 습관이지만, 그걸 채우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백지로 가득했던 종이 안에 이제는 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어느덧 이 생활을 거의 한 달 넘게 지속하고 있다. 이만하면 만족스럽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날 구해준 건 생각이 아닌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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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절이 도래했다. 이번 겨울은 예년보다 이른 추위가 찾아오고 이례적으로 많은 눈이 내리는 것 같다. 내리는 눈은 날선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고 이내 꽁꽁 얼어붙을 테다. 살아오며 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들이 쌓이고 쌓여 오히려 비를 더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겨울로 인해 취향이 바뀌었다. 눈 오는 날의 낭만을 알아버렸달까. 줄 이어폰으로 듣는 발라드는 눈 내리는 날씨에 퍽 어울렸다. 좋은 사람들과 길을 걸으며 맞는 눈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창밖으로 바라본 하얀 풍경은 영화 속 세상에 들어온 듯 했고, 그 속에서 나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자주 웃었다.

 

 
지나치게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긴장을 풀고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과거의 실수나 후회에 매여있지 말고 훌훌 털어버려야 하며, 기쁜 일이 없더라도 때로는 크게 소리내어 웃어야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소중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출처 모를 문장인데, 이 글은 지금 나에게도 앞으로의 나에게도 중요한 이정표가 될 마음가짐이다. 지나치게 잘하려는 욕심보다는, 힘을 빼고 그 자체를 즐기는 것. 늘 긴장을 달고 사는 나에겐 어려운 일이지만 머릿속에 새기고 되뇌면 결국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느덧 2023년의 끝자락이자 2024년의 초입. 새로운 일자리를 구했고, 학교 생활이 끝나간다. 지금처럼 열심히 그러나 얽매이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탐색하며, 그에 따른 목표를 달성하며,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즐겁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삶을 살고 싶다.

 

언젠가 호탕한 웃음으로 유영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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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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