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이 되고 싶었던 피노키오 [영화]

글 입력 2021.04.0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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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로봇에게 감정이 생기는 영화를 좋아했었다. 특히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좋아했는데 인공지능이란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하며 짧게 A.I.로도 불린다.

 

과학소설가인 아시모프(Isaac Asimov)는 자신의 단편소설인 배신 (“Roundaround” 1942)에서 이른바 “로봇의 세 가지 법칙”을 창조했다.

 

 

1. 로봇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되며, 인간에게 위험이 닥쳐올 때에 방관해서는 안된다.

2. 로봇은 제1법칙에 저촉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3. 로봇은 제1법칙 또는 제2법칙에 저촉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여야 한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는 순간 세 개의 법칙은 깨지게 된다.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깨는 반항적인 순간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은 식상한 것이 되었고 새로운 인공지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변천사를 말해보려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관련된 영화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단순한 기준이 필요했다. 제일 처음 접한 인공지능 영화와 최근에 본 것. 유명한 영화 보다는 기억에 남는 영화를 가져오고자 했다. 기준이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면 소정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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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영화는 2001년 작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아이다. 에이아이는 내가 처음 접했던 인공지능 영화다. 이제 막 핸드폰이 보급되던 시절, 기계가 감정을 갖는다는 건 충격적인 이야기였고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설정에 흠뻑 빠지게 됐다.

 

에이아이는 불치병에 걸려 냉동된 아들을 대신해 로봇 소년 ‘데이빗’이 입양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아들이 살아난 뒤에는 데이빗이 풀숲에 버려지게 되는데 데이빗은 엄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끝내 그녀의 품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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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 된 데이빗. 뒤에 소개할 영화들 중 인간과 제일 비슷한 용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제일 인간이 되고 싶어 하고, 제일 인간을 사랑하는 로봇이다. 이 당시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적인 감정 혹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2000년대 초반의 인공지능은 미숙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미숙’이란 인공지능이 자신의 자아를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에서 찾는 것을 의미한다. 미숙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본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인간이 되려고 노력한다.

 

둘의 차이가 메꿔질 수 없음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 불변의 진리가 어린 시절의 나를 매료시켰다.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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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화 HER는 2013년에 개봉한 작품으로, 앞서 이야기한 에이아이와는 긴 시간 차이가 있다. 사실 에이아이 이후로는 인상 깊었던 인공지능 영화가 없었다. 에이아이 이후 잊을 만하면 나왔던 ‘인간이 되고 싶은 인공지능’은 금세 식상해졌다. 그러나 이 영화를 시작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설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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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별거 중인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사만다는 데이빗과는 달리 몸도 없고 오로지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사랑하게 되지만, 인공지능과 인간의 한계에 서로 이별을 고한다.

 

에이아이와 다른 점은 사만다는 자신이 인공지능인 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면서 테오도르를 사랑했던 점이다. 또한 다른 인공지능과 소통도 활발했으며 테오도르 외 다른 사람들과도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테오도르는 바람을 피우는 사만다가 이해되지 않았고 인공지능인 사만다는 자신을 소유하려는 테오도르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제 인간이 인공지능을 사랑해‘주는’ 시기가 지났음을 알게 해주는 영화였다. 인공지능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깨닫고 인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심지어는 감히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헤어짐을 말한다.

 

나는 더 이상 메꿔질 수 없는 차이에 슬프지 않았다. 둘의 헤어짐은 단순한 성향 차이로 인한 연인 간의 헤어짐이었다.

 

 

 

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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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피는 비교적 최근작으로 2015년에 개봉했다. 인공지능 영화에 대한 사랑이 식어갈 때쯤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채피는 놀라웠다. 과거 차별받았던 동성애가 사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느끼는 감동과 엇비슷했다. 이성애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듯이 인간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았다. ‘로봇’ 그 자체를 인정해 주었다.

 

로봇 개발자 ‘디온’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성장하는 로봇 ‘채피’를 탄생시킨다. 채피는 다사다난한 일을 겪으며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하듯이 천천히 자아를 확립해간다.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들의 마음을 백업하여 로봇으로 재탄생시키며 영화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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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채피는 ‘로봇’이기 때문에 여러 차별을 받는다. 누군가는 채피가 가진 감정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채피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진 않았다. 인간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채피는 그냥 살고 싶었다. 채피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성장하고 또 행동했다.

 

인간들이 기계로 이식되면서 서로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것처럼 이제 인공지능에 대한 영화는 이런 식일 것이다. 인공지능은 자신이 원한다면 충분히 ‘인간적’일 수 있고 인간도 원한다면 ‘기계적’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은 더 이상 우리가 범접할 수 없던 존재가 아니다.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어떤 종족이 되어 버렸다.

 

*

 

세 가지의 영화를 차례대로 분석하고 또 비교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과거엔 인공지능이 인간다워지는 자체를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는 것을 넘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어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거나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미 어느 순간부터 아시모프의 세 가지 법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모프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인공지능을 인간이 지배해야 하는 존재로 봤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처럼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무지로 인한 위태로움에서 나왔던 것이다.

 

우리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인식하고 인정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 다음 단계는 무엇일지 앞으로 나올 인공지능 영화는 어떤 식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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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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