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보이지 않는 것들

글 입력 2021.03.27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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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내 주위를 감싸 흐르고 있는 것들.

 

책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건조한 문장들임에도 문장이 담고 있는 콘텐츠는 생동감이 넘쳤다.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이미지들. 나는 그 이미지들을 따라갔다.

 

한스 바뢰이와 그 가족들은 바뢰이섬에 살고 있다. 때때로 밀려들어오는 외지의 물건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수집하며 삶을 일구어간다. 러시아 나무 트렁크를 발견하였을 때, 그것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때부터, 한스 바뢰이는 아버지 마틴의 뒤를 이은 이 섬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한스 바뢰이와 가족들의 삶은 단조로운 듯 보였지만, 그들은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투쟁을 실현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투쟁이 초반에 등장하는데, 사건은 한스의 여동생 바브로가 육지에 나가 하녀로 일하러 갈 때가 되었을 때 발생하였다.

 

바브로가 육지에서 하녀로 일하게 되는 것은 마치 당연하게 정해진 일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았고 당사자인 바브로마저 농장으로 일하러 가고 싶지 않다 말하면서도 그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육지. 농장에 도착한 바브로를 맞이한 사람은 꽤나 쌀쌀맞은 농장의 여주인이었다. 바브로를 '멍청이' 취급하는 여주인의 태도에 화가 난 것일까? 한스는 바브로의 손을 잡고 농장을 나왔다.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지만 한스는 큰 결심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때, 한스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한스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

 

아무리 당연한, 심지어 전통으로 여겨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차마 자신의 동생이 하찮은 취급을 당하며 살아갈 미래를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일까? 그 이후, 바브로 자신이 선택한 목사관에서도 한스는 여동생이 육지에 남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다음 날, 새끼 돼지 한 마리를 사 왔다.

 

한스는 문득 화가 났을 것 같다. 저항 없이 받아들였던 현실의 결과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바브로가 무언가에 얽혀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표현되는 한스는 '섬'이라는 지역적 한계에 굴복하지 않는 인물이었기에, 동생을 향한 연민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아무도 섬을 떠날 수 없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가 이 책을 둘러싸고 있는 대전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섬이 상징하는 것은 고립이다. 그리고 한스가 상징하는 것은 극복이다. 한스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부두를 짓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육지로 나가는 것이 아닌, 섬과 육지를 연결하겠다는 의지는 한스가 단순히 섬을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고 오히려 활용하여 더 큰 기회로 확장시키려 한다.

 

소설이지만, 단순한 소설이라 하기엔 깊은 울림이 있었던 책 <보이지 않는 것들>. 섬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리고 한스라는 인물의 행동을 통해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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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맨부커 국제상
2018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작
 
가족의 유일한 터전이자 그들의 성을 따서 이름 지어진 바뢰이섬. 본토의 목사조차 한스와 마리아의 외동딸 잉그리드의 세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이곳을 찾았을 정도로 작고 외딴섬이다.
 
한스는 이제 늙어 아들에게 섬의 주인 자리를 내어준 그의 아버지 마틴부터 해온 얕은 토양을 경작하고 깊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자식을 키우며 오리털을 모아서 교역소에 내다 파는 일보다 더 큰 꿈이 있다.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부두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섬과 바다 건너편 넓은 세상을 잇는 일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변덕스럽고 잔인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한편 본토를 오가며 학업을 마친 잉그리드는 목사관 견습 후 오스카 톰메센 부부의 집안일을 도우며 차츰 현대 세상에 눈뜨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톰메센 부부에게 어려움이 닥치면서 그들의 어린 두 아이를 맡아 보살피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섬으로 돌아온 잉그리드는 미혼모인 바브로 고모가 낳은 아들 마스와 종종 마찰을 빚으면서도 협력하며 조금씩 성장하는데…….
 
거친 파도에 맞서 자신의 터전인 바뢰이섬을 지키기 위해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로이 야콥센
 
1954년 12월 26일 노르웨이 오슬로 출생. 1982년 첫 단편 《감옥생활(Fangeliv)》을 발표했고, 노르웨이 작가연합이 그해 최고의 데뷔작에 수여하는 타리에이 베소스 데뷔상(Tarjei Vesaas' debutantpris)을 수상했다.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990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노르웨이 비평가 문학상(Norwegian Critics Prize for Literature)을 수상했다.
 
1991년 《승리자들(Seierherrene)》과 2003년 《서리(Frost)》로 북유럽협의회 문학상(Nordic Council's Literary Award)에 두 번이나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았다. 《꺼져 버린 기적의 도시(The Burnt-Out Town of Miracles)》는 2009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International Dublin Literary Award)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6년에 발표한 《보이지 않는 것들(The Unseen)》은 노르웨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17년 맨부커 국제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과 2018년 국제 IMPAC 더블린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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