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소년 김혜빈에 대하여

글 입력 2024.05.2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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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푸름. 전 이름 김혜빈. '소녀라는 단어는 마치 내가 약한 것 같잖아.'라는 지극히 성차별적인 사회 인식이 담겨있는 발언과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항상 슬픔에 침몰했던 김혜빈 시절의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표현했다. 성인이 된지 수 년이 흘러간 지금,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뒤 적당히 세상에 타협하고 적응해가며 살고 있지만 소년 시절의 그는 꽤나 휘청이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뱃속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소년의 모습은 글에도 여실히 담겨있다. 항상 '기어이 살아버린 어린 소년을 생각한다.'는 한 줄의 문장으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기에. 무언가 토를 해내는 것처럼 적어내리는 소년 김혜빈은 항상 글이 항상 눅눅하게 젖어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소년'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서야 추측해본다면, '만화의 주인공'이라는 대상을 하나로 묶어낸 단어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한다. 그 당시 자신이 즐겨봤던 소년 만화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을 김혜빈은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아, 그럼 지금 내가 아픈 이유는 주인공이기 때문이구나. 분명 나는 큰 사람이 되어 이 때를 떠올리며 웃겠구나.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비 내리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잔잔한 빗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납득했습니다. 그런 흐름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진짜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우연이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제가 봐왔던 주인공은 지쳐 쓰러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고, 앞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을 따라가려 노력했습니다.


- 변함있는 K로부터

 

 

'소년'이라는 단어는 김혜빈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었던 유일한 단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김혜빈으로 존재하자니 스스로는 과하게 볼품 없었고, 소녀로 존재하자니 누군가 자신을 지켜야 할 것 처럼 연약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스스로의 존재를 정의 내린다면 소년 밖에 없다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소년이라는 단어가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고 고개를 주억인 것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소년'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정의 내린 적이 없다. 특히 그가 더욱 스스로를 동정할 때, 과거의 삶으로 힘들어 할 때 그는 더욱 더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칭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그의 시선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심심찮게 오렌지를 까먹고 사과 주스를 입에 문 각색의 눈동자를 가진 소년들을 바라봤다. 몇 해가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국의 낱말들과 재잘거리는 음성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그러나 풍부한 음성들 속에서 소년은 쉽게 함께 목소리를 뱉어낼 수 없었다. 공감 많고 리액션 큰 동양의 소년이 사실은 그들 곁에서 어젯밤 읽었던 소설 속을 배회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았을까. 그저 자신이 부유물이 된 것처럼 남몰래 그 대화를 이탈해 쉽게 스러지는 상상들과 함께 허공을 헤엄쳤다. 겉으로는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처럼 고개만 주억일 뿐이다. 타지의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소년은 그토록 가벼운 것들을 품고 다니며 쉽게 헤엄쳤다.


소년이 부유물을 내뱉는 '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에 관해 이야기 할 때면 많은 것들을 변명할 수 있었다. 자주 비행기를 타며 한국과 호주를 오간 것과 한 공간에 익숙해질 틈 없이 달이 넘어가기 전에 꼬박꼬박 이사를 다닌 것. 무언가에서 쫓겨 다녔던 나날들 속에서 뇌리에 박혔던 언어는 쉽게 스러졌다. 외로움 속에서 이곳저곳에서 구해온 모국의 책만을 유일하게 품에 안고 살았다. 소년은 무력감만이 맴돌았고, 끝없이 가라앉았다.

 

- 호주, 그럼에도 소년이 사랑했던 곳


 

그렇다면, '소년'이라는 단어를 김혜빈은 스스로의 강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용했는가.

 

처음에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혜빈은 타인으로부터 나약해보이지 않기를 원했고 그에 대한 과한 강박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나는 소년이야'라고 과시하는 용도로 소년이라는 단어를 활용했을지도 모른다고.

 

분명 헷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의 일기장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소년이라는 단어는 '과시'와 '증명'을 위한 수단 보다는 '암시'의 용도가 강했다.

 

그는 타인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꾸준히 소년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타인에게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은유로 가득찬 일기장에조차 그는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칭했다. 그것은 그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고등학생을 지나 대학생이 될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크나큰 위로다 뜨거웠던 열정이 지나가고 잿더미같은 몸뚱아리만 남은 새벽 회색 도시에서 존재를 찾지 못해 고아마냥 이리저리 헤매는 유령들 속에서 나는 시를 읽는다 나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이들의 불투명함을 찾기 위해


살아있는 것이 죽은 것보다 초라해서 세상은 검다는 허연 시인을 떠올린다 다행이다 나만 초라한게 아니라서 살아있는 것들이 초라해서 세상이 검어서 하마터면 나만 양잿물을 뒤집어 쓴 어린 소년이 될 뻔 했다 사실 모두가 잿빛인 것을

 

햇빛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구름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기꺼이 시를 받아들이려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짐승인 척 킁킁대며 시의 향기를 찾기 시작한다 봄바람에 신난 이름 모를 철새마냥 잿빛은 잊어버린 채 달빛을 찾아다니고 양잿물은 잊어버린 채 강물을 찾아다닌다 간신히 살아있으므로 죽기 직전을 열심히 만끽한다 살아있음을 뽐내며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려 한다 죽은 자만이 삶을 사랑할 수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결국 열심히 죽음을 뽐내는 행동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러니 시가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기어코 무식하고 투박한 소년으로 남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와주는 활자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살아있는 하늘을 만끽하고선 모른 척 죽어버린 존재들을 찾아 위로받는다 다행이다 교양 있는 척 바보가 될 수 있어서

 

- 고등학생 시절 일기

 

 

일기 속 김혜빈은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마다 '스스로가 완벽한 사람'이라는 사실보다도 '타인도 자신과 비슷하게 부족한 사람'임을 알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만이 힘든 것 같다는 오만함을 없애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은 시를 읽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아픔과 슬픔을 예술로 녹여내는 문장들을 읽으며, 사실은 모두가 잿빛이었구나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 것이다.

 

그토록 시에 빠져 살며 소년은 자신이 그토록 끔찍해하는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며 행복을 외치고 과시한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단어 속에서 부유한다. 그리고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이래서 행복하고, 저래서 행복하지. 다들 보여? 나는 행복해.' 외치며 열심히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평소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행복이 과시의 수단이 되지 않는 다는 것도 모르는 채.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소년은 다시 시의 존재를 통해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본인 뿐만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불행을 시로 남기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자신만이 불행한 것도, 자신만이 행복을 과시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그런데 소년으로 존재하던 김혜빈이 김푸름이 된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그의 안에서 소년의 존재는 사라졌다. 김혜빈처럼 소년이라는 단어를 읊주리는 시간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대신 그는 소년이라는 호칭 대신 '그'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은, 소년 시절을 벗어나 성장하고, 다시는 소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처럼.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를 '과거'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김혜빈이었을 때에는' 혹은 '김혜빈 시절에는'이라고 표현한다.


 

김푸름. 전 이름 김혜빈. '소녀라는 단어는 마치 내가 약한 것 같잖아.'라는 지극히 성차별적인 사회 인식이 담겨있는 발언과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항상 슬픔에 침몰했던 김혜빈 시절의 스스로를 소년이라고 표현했다. 성인이 된지 수 년이 흘러간 지금,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뒤 그는 이제 적당히 세상에 타협하고 적응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소년 시절의 그는 꽤나 휘청이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 속으로 읊주린다. 소년 김혜빈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어린 소년은 사라져있고, 이제 그 시절을 추억하며 현재에 고군분투하는 청년 김푸름만이 남아있다고. 그러니 청년 김푸름은 이제 다시는 소년 김혜빈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 이따금씩 소년 김혜빈의 남아있는 흔적을 본인 스스로에게서 발견하면, 소년 김혜빈의 잔상을 거울 속에서 발견하면 땀을 흘리기 위해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숨이 찬다는 사실로 자신은 더 이상 김혜빈이 아니며 김푸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고통만이 삶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앞으로의 김푸름의 삶은 더욱 더 푸르를 것이라고 말이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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