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 [도서/문학]

글 입력 2021.02.2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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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문장 아닌 깊이 있는 문장. 껍데기는 예쁘지만 알맹이가 없는 위로 아닌 담담하지만 꽉 찬 위로. 나는 꽤 오랫동안 이런 책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책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는 도박중독을 앓고 있는 쌍둥이 오빠와 함께 살아가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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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뽑기도 도박이라면 나도 도박 유경험자이다. 한창 인형 뽑기가 유행이던 때, 나도 그 유행에 동참했었다. 영 솜씨가 없었던 터라 오백 원~천 원이 오천 원~만 원이 되어야 인형 한 개를 뽑거나 말거나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것은 그 순간 잃은 것은 생각나지 않고 '인형을 뽑았다'라는 사실만이 감격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독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차라리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저렴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인형 뽑기를 그만두었다. 어느 누가 잘 뽑는다더라, 유독 잘 뽑히는 기계가 있다더라 등의 이야기들을 무심하게 넘길 수 있을 때쯤에는 아예 인형 뽑기 기계 주변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도박 역시, 마음만 먹으면 금방 손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도박 중독자의 삶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

 

주인공의 쌍둥이 오빠 현은 인상 좋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부모 속 한 번 썩여본 적 없는 전형적인 모범생. 공부도 곧 잘해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도 들어갔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어느 날 도박중독자가 된 것이다.

 

도박의 맛을 본 현은 그만두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도박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잃은 다음에도 그는 기어코 도박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 빚은 모두 가족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묶인 선량한 피해자들만이 도박의 야기한 고통의 몫을 짊어져야 했다.

 

부모와 오빠 사이에서 채는 괴로웠다. 오빠의 도박 사실을 조금 먼저 알았다는 사실은 상당한 죄책감을 야기했다. 내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끝없는 후회와 자신이 오빠를 도와준 꼴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부모의 하소연 사이에서 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일이 다 자신의 탓처럼 여겨졌다.

 

그런 채가 단도박 모임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더 이상 삶을 살아갈 힘이 없다는 생각이 짙어져갈 때, 채는 단도박 모임과 단도박 가족모임을 알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던' 채는 현에게 모임에 함께 나가보자 제안했고, 그렇게 그들의 모임 생활이 시작되었다.

 

채는 모임을 통해 도박이 질병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현이 도박중독자가 되어버린 결과가 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현이 단호하게 도박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은 현의 문제였다. 현과 부모의 문제는 그들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고 채 자신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던 도박중독자 가족으로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은 채를 숨 쉬게 하였고 소망하게 하였다. 모임을 통해 채는 새롭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힘이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도 주소서

 

-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 

 

 

나는 2여 1남 중 장녀이다. 장녀라는 이유로, 나는 내가 어느 정도 사리 분별을 할 수 있을 때부터 부모의 한숨을 직면하며 살아야 했다. 처음에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을 공유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오히려 그런 고민들을 나누어주는 것이 감사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한숨의 방향이 두 동생들 아닌 오직 나에게로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 사실은 나를 종종 지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부모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채가 자신의 부모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나도 느끼며 살아왔던 것이다.

 

나는 이런 감정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딸로서 나의 역할을 떠올리며 그러니 내가 감내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충돌하는 속에 나는 괴롭고 또 괴로웠다. 채가 느낀 우울과 무기력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모든 것이 다 지긋지긋했다. 해결책을 도통 모르겠는 그때, 참 우연히도 책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어>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눈이 시큰거려 혼났다.

 

결은 다를지 모르지만, 채가 가족 사이에서 느꼈을 감정과 현실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내가 느껴온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채가 모임을 통해 깨닫는 이치들이 나에게도 상당한 울림을 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리지 말고 어쩔 수 있는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것. 깨끗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것. 함께 소망하기를 놓지 않는 것. 불가능한 것에 욕심내며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지난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을 잘 살아내고 싶다는 채의 마음이, 너무 소박하지만 실현하기 참 어려운 그 마음이 나를 꼭 닮아있었다. 닮은 마음이어서 공감할 수 있었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로 아침을 맞이한다는 채를 따라 나 또한 조금 더 현명하고 분명하게 삶을 살아내고 싶다. 가볍지 않은 삶이지만 부디 욕심내지 않는 삶을.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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