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쩌다' 여기까지 와버린 당신에게 [도서]

글 입력 2021.02.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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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어쩌다'라는 말을 떠올려본 적 있나요?




다른 꽃들이 모두 흐드러지게 핀 계절. 왜 나만 웅크리고 있냐고 이제는 묻지 않겠다. 꽃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가장 추운 계절에 피는 꽃도 그토록 진하고 붉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므로. 꽃이 피지 않는 계절에도 그저 햇볕과 습기를 안으로 뭉치며 힘을 모으는 일이 우리의 할 일임을 배운 겨울. 시간이 흐르면 꽃 피워낼 계절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기다리며 모든 계절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 '유연하게',  p 186-187

 


2018년부터 2020년 여름까지 이어진 나의 유학생활은 결코 길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짧았다고 할 수도 없다. 유학 이전의 삶이 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그 시간이 나에게는 아주 길게 느껴졌으니까. 그만큼 수많은 고비를 넘겼고, 이제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바로 관문처럼 새로운 고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퀘스트처럼, 매일매일 나에게 주어지는 역경을 낑낑거리며 극복하는 것이 나의 유학생활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내가 어쩌다 여기 와 있지?' 하는 자문이었다. 애당초 큰 포부나 확실한 목표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유학생활이었기에 더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수도 없이 길을 잃었다. 당장 주어진 산더미 같은 과제와 시험공부에 허덕이다가 문득 망연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목적도 알 수 없는 공부에 매일 치이면서 나의 꿈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고 느낄 때, '어쩌다'라는 말은 더욱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어쩌다' 뒤에 따라오는 것에는 나쁜 종류의 것들만 있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은 바로 그 '어쩌다'로 시작한 저자의 유학생활이 저자에게 어떤 것들을 가져다주었는지에 관해 말하는 책이다.


 


'어쩌다'가 '플랜 B'가 되는 순간



혹여나 하지 않았던 편이 좋았다고 나중에 후회하는 날이 오더라도, 조금이라도 나은 나를 찾기 위해 시도하고 애썼던 기억이 남을 것이다. 후회 같은 거야 살다 보면 할 수도 있지, 뭐. 그 후회가 지속될 날들보다 다시 도전할 내 삶이 훨씬 더 크니까 아마 괜찮을 것이다. 일단 계속 가 보겠다. 거기서 새로이 보이는 것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 '왜 저를 초대하셨나요', p 198-199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에 담긴 저자의 유학생활 스토리는 나와 굉장히 닮은 부분이 많다. 꿈은 유학과는 다른 길에 있었지만 뜻밖에 갑작스러운 기회가 생겨서 덜컥 유학길에 오른 것부터, 수없이 덜컹거리는 유학생활을 온몸으로 겪어낸 것까지. 책을 쭉 읽어나가다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그대로 적혀 있어서 흠칫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저자가 '어쩌다' 시작한 유학생활에서 자신만의 '플랜 B'를 찾아 가꿔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유학을 떠나기 이전 저자는 언론인의 꿈을 꾸고 있었지만, 사회학과 통계학을 공부하면서 통계학자로서의 꿈을 새롭게 찾게 되고 그 꿈에 정착한다.

 

나 역시 전에는 오로지 공연기획자가 되겠다는 소망만을 갖고 그 외의 것들은 도외시해왔지만, 유학생활이 끝난 이후 보다 넓은 시야로 다양한 길을 고려해보게 되었고 자잘한 다른 꿈들이 새롭게 생겨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분명히 가고 싶은 길이 있었기에 유학이라는 다른 옵션을 택한 상황이 그저 불안하게만 느껴졌던 때를 지나,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다른 길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길을 걸어나가는 것. 어쩌면 불확실한 날들 속에서 내 눈 앞에 당장 놓인 가장 확실한 것들을 해치우며 착실함을 쌓아온 이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것이 '플랜 B'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돌고 돌아도 결국 '흐린 뒤 맑음'일 겁니다

 


지금껏 이루어놓은 게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너무 때리거나 혼내지는 말자. 노력하고 있다면, 애쓰고 있다면, 제자리를 맴도는 듯 해도 결국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고 믿어보는 것도 괜찮다. 실패로 끝나는 여정이란 없다. 아직 끝이 아닐 뿐. 그럴 땐 그저 계속 가보는 것이다.

 

-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해서', p 36-37

 


저자는 이 책을 내기 전, '써바이벌 유학생활의 쌩고생'을 담은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왔다. 네이버에 '유학'이라고 검색만 해도 저자의 블로그가 바로 검색 결과에 등장할 만큼, 유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블로그였다. 그러나 반드시 유학생들만이 이 블로그에 들리는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겼다.


그렇기에 이 책은 유학생활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나 고전하는 사람들, 어쩌다 발을 들인 길에 예상보다 오래 머무르게 되어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오늘'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내일'은 막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블로그의 이름 '흐린 뒤 맑음'처럼, 자신의 진솔한 경험담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아직 안갯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만 뚫고 지나가면 반드시 맑은 날이 찾아온다는 위로를 전한다. 더불어 저자의 문체 전반에 깔려 있는 유쾌한 분위기, 자신의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태도에서 느껴지는 밝은 에너지 역시 페이지 너머 독자에게 전해지며 큰 힘이 되어준다.


 


내가 남긴 발자국이 누군가의 다음번 걸음이 될 수 있다면

 

 

사람이 뿜어낸 따뜻한 기운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돌고 도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좋은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교수님께 받은 따뜻함을 세상에 그대로 돌려주는 것도 통계 분석을 하고 논문을 쓰는 것처럼 내가 맡은 일의 하나겠구나 싶었다. 아주 기분 좋은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 '기분 좋은 숙제', p 220

 


사실 이 책의 저자는 나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아주 감사한 분이다. '어쩌다' 뒤에 따라올 것이 어떤 것일지 미처 깨닫기 전, 유학 '쌩초보'이던 시절 나는 저자의 블로그를 읽으며 큰 힘을 얻었다. 그러다 하루는 힘들다 못해 감정이 이성을 앞질렀던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사이의 저자에게 내 처지를 하소연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저자는 17분이나 되는 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림으로써 내 하소연에 답해주었다. 내 처지에 정말 많이 공감했다는 말과 함께 현실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가 그 말을 듣지 않고 당시의 생각과 감정에 따랐다면 후회했을 법한, 그 당시의 나에게 제일 필요한 말들이었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친절과 호의를 받았지만, 저자가 내게 보여줬던 호의는 그중에서도 아주 깊게 각인되었다.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고, 유튜브 채널을 구독했는데 이게 웬걸. 더 큰 위로를 받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동기까지 부여받으며, 받는 것만 되려 늘었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쩌다'로 시작해서 '의외로'에 도달하는 것. 어쩌다 발을 들였지만 의외로 좋은 것들, 의외로 힘겨운 것들,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는 것들이 나를 하나씩 마주하는 길을 천천히 걸어 나가는 일. 그러다 보면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흐린 날 뒤엔 반드시 맑은 날이 있을 테다. 날씨는 바뀌는 것이 자연의 섭리니까.


그렇게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면서 내가 얻은 것들을 나눈다면, 어쩌면 그때 내가 걸어온 길 위 저 멀리서 나를 따라오는 누군가가 그로부터 힘을 얻어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내 길을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내 발자국에 누군가가 위안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목적지에 닿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흔적을 하나라도 더 애써서 남기는 것이 인생에서 보다 큰 의미로 남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에게 오랫동안 응원을 전해주었던 한 무리의 발자국들을 여기 이렇게 나눈다. 부디 이 책이 흐린 날씨에 갇힌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힘이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아주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채 녹질 않아 답답한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책이 그 지난한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 우리 모두에게 다시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계절이 돌아오기를. 혹, 우리가 목적지에 닿지 못한다 해도 부단히 애썼던 그 시간들이 보석처럼 남기를.

 

- 프롤로그, p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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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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