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성을 넘어 - 수잔 팔루디의 다크룸을 읽고

글 입력 2021.02.22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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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래쉬'라는 페미니즘 이론서로 우리에게 알려진 미국의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가 작년 '다크룸'이라는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다시 만났다. ‘다크룸’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인 것을 다룬다. 한 사람의 이야기와 정체성, 바로 팔루디의 트랜스젠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은 2004년 팔루디가 3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 했던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수전에게. 좀 재미있는 소식이 있어 연락했다. 나는 이제 공격적인 마초맨을 가장하는게 진절머리가 난다. 나의 내면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팔루디는 설명한다. “일흔이 넘은 아버지는 태국에서 수술을 받고 여성, 그러니까 '스테파니'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헝가리 유대인’ 이슈트반 프리드먼으로 태어나 서 10대 후반에 ‘동화된 헝가리인’ 이슈트반 팔루디로 변신했고, 다시 20대에 ‘미국 남자’ 스티븐 팔루디가 되었던 아버지는 76세에 스테파니 팔루디가 되었다. ‘다크룸’은 이 이메일을 시작으로, 팔루디가 10년이라는 집념의 시간동안 아버지가 겪어온 변화의 시기들을 조명한다.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이 단순히 성전환 전 후 사진으로만 설명될 수 없듯이, 팔루디는 스티븐이 스테파니로 되기까지의 과정속 갈등, 의심, 실패, 서투름, 탐구 등 결코 매끄럽지 않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삶, 즉 다양한 정체성이 교차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수잔 팔루디의 다크룸을 읽으며 트렌스 젠더로서 스테파니가 건넜던 국경들, 경계를 이동하며 바꿔왔던 이름들, 그리고 공동체에 융화되게 위해 그녀가 증빙해야 됐던 서류들을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비행기를 탔을 때 작성했던 입국신고서처럼, 그녀의 삶 또한 ‘너는 그것인가 아닌가’라는 정체성의 체크박스에 대답을 해왔다. 헝가리 유대인이지만 ‘완벽한' 헝가리인이 되기 위해 ‘여성화'된 이미지의 유대인 역할을 벗어야 했고, ‘완벽한' 마초 미국인 아버지로 살아갈 때도 스테파니에게 남성성은 수행해야 하는 “역할놀이"라고 여겨졌다. 그리고 그녀는 성전환수술을 함으로서 남성의 자아와 작별하고 원래의 모습인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비유한다.

 

이처럼 스테파니의 삶은 정체성이 사람에게 내재된 어떤 자연적이고 단일적인 속성이라는 것을 반박한다. 그녀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사회적인 맥락과 맞물려있을 때, 그녀의 정체성 또한 유동적으로 변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란 고정적인 being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doing, 즉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알게 된다. 이처럼 정체성은 선명하게 구분된 범주로 구성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과 역사속에서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항상 ‘되기’ 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듯, 젠더를 수행한다는 것은 미리 존재하는 자연적인 성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허락하는 선과 제시하는 틀 안에서 성적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 그래서 정체성이란 오히려 복잡하고 미묘하다. 

 

하지만 여기서 책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스테파니의 ‘여성성' 수행성을 넘어, 그녀가 성전환 수술 후 어떻게 다른 세계를 지어가는 지에 관점을 둔다. 그녀가 설사 ‘완벽한' 여성이 된 들 과거 해로운 남성성 (toxic masculinity)과 인종차별에 억압받았던 자아를 끊어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스테파니의 삶에서 일어난 변화들은 성구분, 젠더, 혹은 인종과 같은 이분법적인 틀에 기대어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여성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지낼 것만 같은 스테파니는 고향인 헝가리로 돌아가며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하고 현재 그녀의 모습과 계속 부딪힌다. 홀로코스트때 유대인들의 감옥으로 쓰였던 자신의 옛집을 지나치고, 버스에서 반유대인 발언을 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극우 단체들의 성소수자 혐오 정책들도 목격한다. 그녀는 ‘완벽한' 헝가리인 것처럼 마자르족에 대해 칭송하고, 유대인임을 숨기며, ‘상냥한' 퀴어 소수자의 모습을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가 이러한 단편적인 이미지에 자신을 구겨 넣을수록 그녀가 겪어온 유대인의 역사와 과거의 모순 역시 지우개 자국이 남은 사진처럼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후반에는 딸 수잔과 함께 유대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여성성을 수행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품있는 드레스' 를 입다던지) 그녀는 계속 변화한다. 이처럼 '다크룸' 에서 수전 팔루디는 답을 내려주지 않고 정체성이 가진 정치학에 대해 질문을 한다. 스테파니가 온전해 보이는 정체성의 신화에 어떤 균열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사유하기 때문이다.

 

'다크룸' 은 스테파니라는 개인이 살아온 경험들의 복잡성과 모호성을 이야기함으로써 트렌스젠더를 향한 단편적이고 혐오적인 시선에 도전한다. 스테파니는 여성으로 사는 것이란 ‘여성성'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닌, 남성으로 호명된 자신의 몸을 재의미화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샤모니에서 창조주를 만났을때, 왜 자신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냐며 분노하는 장면은 스테파니의 삶과도, 퀴어의 삶, 그리고 정상성이란 권력의 규범에 사는 모두와도 연결 되어있다. 기존의 인식론이 지닌 한계와 폭력을 마주했을 때, 스테파니는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아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트랜스젠더 학자인 샌디 스톤이 프랑켄슈타인처럼 기꺼이 괴물이 되겠다 라고 말한 것 처럼, 스테피의 수술 또한 “생물학이 운명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의 결정은 여성이라는 범주의 내용을 의심하게 하고, 본질적 정체성을 부인한다. 여성을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다크룸 출판이 한국에서 가지는 의미란 크다. 작년 2020년 다크룸이 출간됐을때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에 관한 담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속에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는 것, 그 가시성이 더욱 드러난 해였기에 이에 따른 혐오 선동 또한 동반됐다. 어쨋든 담론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진 듯 했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장의 변화가 긍정적이라고는 진단을 내리기 어렵다. 아직까지도 성소수자 혐오는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특히 트랜스젠더의 인권은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몸에 새겨진 경험과 기억은 믿고 존중해야 하는 것. 그래서 트랜스젠더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귀하고 필요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조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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