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삶
글 입력 2023.11.2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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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컬쳐리스트 활동내용이 개편되면서 한 해만에 리뷰가 아닌 에세이를 쓰게 된 지금, 내가 지금껏 어떤 글을 썼던가 뒤돌아봤다. 내 관심사의 흐름이 어디서부터 어디로 흘렀고 또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보였다. 시각예술에 대해 줄기차게 오피니언을 쓰던 초반부터 좀 더 힘을 풀고 에세이로 지면을 채우던 중반, 그리고 리뷰로 전향해 문화초대에 대한 글만 썼던 최근까지. 보는 이들은 그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서조차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취미에 가까운 예술 분야가 과제가 되고 직업이 되었을 때, 특별한 감흥 없이 기계적으로 예술을 대하곤 했다. 분명 내 진짜 관심사를 좇아서 시작했던 일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 멱살이 붙들린 기분이었다. 흡족스럽게 마무리한 글도 많지만,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억지로 붙들고 간신히 써낸 글도 많았다. 그래서 부담감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인풋이 명확하고, 정해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는 리뷰에만 집중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래간만에 나만의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글의 주제를 놓고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지금으로부터 1년 반 전에 썼던 ‘헤프게 기뻐하고, 코앞에만 열중할 것’이라는 글이 눈에 밟혔다. ‘Project 당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썼던 글로,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에 대해 쓴 글이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프로젝트였지만 당시 내가 겪고 있었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방법에 대해 썼다. 그중 일부를 발췌하면 이렇다.


 

“그러나 나만의 무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직 입을 뗄 수 없다. 나는 한 해 동안 미술계를 떠돌면서 나만의 재능과 적성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엔 모든 것이 ‘큰 그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만 않는다면, 지금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유의미한 과정의 일부가 되어 언젠가는 나만의 특별함이 만들어지겠지. 그리고 이 마음가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현재에 충실히 임하며 기회를 탐색하면 된다고 낙관한다.”


“하지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조건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느끼는 기쁨의 크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헤프게 즐거워하려고 노력 중이다. 할 일에 집중해서 몰입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먹고 설거지까지 끝마쳤을 때, 신중하게 고른 선물을 친구에게 건네고 그 반응을 지켜보며 덩달아 행복해질 때, 처음 입은 옷이 마음에 들어 발걸음이 가벼워질 때가 그렇다. 지금처럼 시시콜콜한 일로 자주 기뻐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적극적으로 방황하다 보면 이십 년 뒤쯤엔 나름 성공적으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원문

 

 

이십 년까지 흐르진 않았지만 일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이번 글을 통해 나의 상황을 한 번 점검해 보기로 했다. 내 솔직한 속내를 새삼스럽게 다시 보고 내 진짜 관심사를 다시 한 번 탐색해 보기 위해서다. 물론 첫 문단에 녹아든 진로에 대한 혼란은 해결된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직은 방황하는 이십 대고, 내가 몸담은 분야에 늘 의구심을 품을 뿐더러 20년 뒤의 미래도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막연하게 잘 되겠지, 애써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 문단에서 논하는 시시콜콜한 행복이라면 충실히 누리면서 살아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어느덧 저물어가는 2023년은 내게 온전한 쉼의 해였기 때문이다. 졸업식을 치르고 새 집으로 이사한 뒤 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신분에 무턱대고 머물면서 이전까지 누리지 못했던 일상을 즐겼다.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감정과는 거리를 두고 마음 닿는 대로 움직인 시간들이었다. 그 순간순간을 톺아보면 나의 진짜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그 형체를 어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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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올해의 봄부터 가을까지 대부분의 하루가 내게는 한가한 날들이었다. 특별한 스케줄이 없으면 뭐라도 하기 위해 헬스장에 갔다. 헬스장은 아주 이른 새벽 시간이나 애매한 점심 시간이 가장 한산했다. 공부나 일에 치일 때는 제대로 손대기 어려웠던 운동에 열중하며 열을 내고 땀을 흘렸다. 다음날 찾아오는 근육통도 거리낌 없었다. 아파봤자 이틀이 지나면 가라앉는 통증인데다, 건강해지기 위한 아픔은 오히려 상쾌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빛깔이 눈부신 봄가을에는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집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나는 혼자서만 동떨어져 있었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보통 학교에 있거나 직장에 있었다. 낮 시간의 동네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가장 많았고, 저녁 시간에는 퇴근길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어른들이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계속계속 보고 싶은 건 어린아이들이었다. 엄마의 손을 놓고 천방지축 달아나는 모습, 짓궂게 장난을 치는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는 모습.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그들에게는 한없이 별 것 아닌 일상의 한 조각인데도 너무도 빛나 보였다.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음식을 해 먹었다. 운동 뒤에 깨끗하게 씻고 점심식사를 잘 차려먹는 것까지가 루틴의 완성이었다. 파는 것처럼 뛰어나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거실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건강을 생각한 재료로 요리를 했다. 보는 사람은 없어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먹기 전에 사진도 찍고 식사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겼다. 같이 사는 언니가 퇴근할 시간이 되면 때에 맞춰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여유가 있는 건 나였으니 당연히 내가 할 몫이었다. 가족이 맛있게 음식을 먹어주고 고마움을 표현해 주는 것 역시 나름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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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체력적으로 고갈될 일이 별로 없으니 잠 안 오는 새벽도 종종 찾아왔다. 그럴 땐 굳이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았다. 대신 스탠드를 켠 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평소에 읽기를 미뤄둔 책이나 감상에 젖어들기 좋은 산문집을 펼치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음악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나직하게 울리는 이 시간대는 오히려 낮보다도 책에 빠져들기 좋았다. 글을 읽다 자연스레 눈이 피로해지면 다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렇게 혼자만의 일상을 즐기다 보면 하루하루가 성큼 흘러갔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거나 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 지루해지면 친구를 만나거나 혼자 외출을 했다. 도서관에 가거나 명분 없이 전시를 보고, 거리 구석구석을 마음 가는 대로 거닐다가 끌리는 가게에 들어갔다. 사진 않더라도 내 취향의 옷들을 입어보고, 눈이 즐거운 물건들을 구경하고, 흥미로우면 사진을 찍고, 또 한창 돌아다닌 뒤에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싱거운 외출이었지만 이 또한 소중한 일상이라는 걸 끝없이 되새겼다.


때로는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아무리 나는 내 의지로 쉼을 누리고 있다고 되뇌어도, 앞으로 어떤 생을 개척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내가 무엇으로 기뻐하는지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다시 의무감에 내몰리는 삶보다는, 현재의 강박을 완전히 내려놓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일상을 솔직하게 즐기는 것이 더 필요했다. 세상에 방임된 채 내 시간을 나만의 결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려보는 특권이었다.

 

*

 

물론 특권이라고 해봤자 그다지 거창한 걸 본격적으로 즐긴 것도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들과 아주 최소한의 해야 하는 일들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게 다였다. 누군가는 그때의 시간에 남들처럼 여행이라도 떠나거나 제대로 된 공부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먹구름 하나 없는 시야로 하루하루의 기쁨과 반짝이는 순간을 붙잡았던 때가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 끝에 내린 결론은 뭔가를 사랑하는 것마저도 나의 의지에 달렸다는, 어찌 보면 내가 작년 여름에 썼던 그 글의 주제다. 하지만 이번엔 그저 머릿속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내가 직접 체득한 결론이다. 반 년 남짓, 취미든 일상이든 마음껏 편식했던 삶은 나의 결핍을 차고 넘치게 채워주었다. 이와 동시에 삶의 생동을 온전히 누릴 때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도 진실된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겐 이제 또 다른 희망이 싹텄다. 나는 거창하지 않은 작디작은 한 조각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다.

 

최근 나는 다시 예술 분야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그곳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고 조금 더 풍요한 시선으로 다정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행복은 삶을 온 마음으로 누릴 때 발견할 수 있을 뿐, 어떤 일을 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행복은 잠을 푹 잔 덕에 평소보다 가볍게 내딛는 출근길에서도, 오늘따라 인파가 덜해 숨통이 트이는 지하철 칸 안에서도, 퇴근길에 귀에 꽂은 이어폰 너머에서도, 잠자리에서 내 몸을 감싸는 겨울이불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에 그렇다.

 

내가 직업적으로 몸담은 분야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또 그곳에서 찾은 행복이 사소하다는 이유로 나의 진정성을 스스로 폄하할 이유도 없다. 지금까지는 내 마음속에 예술을 향한 뜨거움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내 진심은 진심이 아닐 거라고, 또 그건 숨겨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 안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내가 채 알지 못하는 나머지 행복들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다가 또 일 년쯤 지나면 다시 이 글을 읽어봐야겠다. 그때까지 하루하루를 기대감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면서, 일 년만의 자기소개를 이쯤에서 끝맺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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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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