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헤프게 기뻐하고, 코앞에만 열중할 것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
글 입력 2022.07.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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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험은 결코 흔치 않다. 지금과 같은 줄글의 형식이라면 더더욱, 뚜렷한 필요에 의한 상황일 때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나의 사회적 잠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의 자기소개서처럼 말이다. 이 경우 나를 소개하기보다는 나의 능력을 설명하는 글이 되어버리기 십상일 뿐더러, 그것이 정석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목적 없는 자기소개라면 다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금껏 써왔던 형식적인 자기소개서들과는 달리 진솔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껍데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면을 진지하게 고찰해야 하지 않을까. 또 글의 문체도 어느 정도는 문학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등의 고민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에는 작위적인 결과물을 낳을 것 같았다. ‘목적 없는 자기소개’라는 명분이 또다른 목적이 되는 주객전도로 끝나버릴 것 같아서, 고민하는 자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어렵게 접근하지 말고,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숙고해 보기로 한 것이다.

 

*

 

나에 대해 논하려면 나를 둘러싼 외부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될 것 같다. 나는 주변 환경에 쉽게 휩쓸리는 편이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 나를 소개하는 것은 영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처한 상황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래서 역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누군가를 깊이 있게 파악하고 싶을 때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말이다.

 

나는 그것이 ‘비전’이라고 판단했다. 주체적인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십 대 청년의 입장에서, 한 사람의 내밀한 속내와 기질은 그 사람이 미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를 확인했을 때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또한 그 이야기를 풀어내 보려고 한다. 사회에서 어떤 구성원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기이기에, 어쩔 수 없이 이 글에서는 '나’ 보다는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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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2019년 여름, 나는 의욕적으로 학과 공부에 열중하는 학부 2학년생이었다. 당시는 내 분야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건지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곤 전무했다. 당시 예술은 나의 전공 분야인 동시에 취미 생활이었으므로, 이곳에서 미술을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학교 안팎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자극이 밀려들어오니 새로운 아이디어도 쉼없이 파생됐다.

 

그러나 졸업반을 앞두자 대학생이라면 으레 그렇듯 혼란기가 닥쳐왔다. 보다 현실적인 고민에 휩싸이자 위기감이 밀려왔다. 전심을 다해 예술적으로 상상하고 감각하는, 남다른 이들로 가득한 미술계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그들과 같은 순수한 열정이 과연 내게도 있는 것일까. 이걸 의심하고 있는 정신상태로 녹록잖은 페이와 불안정한 기반 등의 위험부담을 무릅쓰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까. 이때를 시작으로 예술에 대해 글을 쓰는 게 버거워졌던 것 같다.

 

그 의구심은 이내 확신으로 굳어졌고, 나는 이 확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무턱대고 휴학계를 냈다. 일단은 예술계를 제대로 경험해 보아야 이 분야와 나의 궁합이 어떤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학교 바깥에서 경험을 쌓다 보면 소위 말하는 나의 ‘진로’를 쉽게 가늠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1년이라는 휴학 기간을 쪼개고 쪼개 최대한 다양한 일에 부딪쳐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게 내 휴학의 목적이자 유일한 계획이었다.

 

한 해 동안 나는 다행히도 나쁘지 않은 행동력을 보여준 것 같다. 스스로 무계획적인 성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전정신이 강하다고는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하자, 장기적인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는 내게 찾아오는 순간순간의 기회들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일자리든 미션이든, 그것을 고사했을 때 겪게 될 후회가 그 일로 고생하면서 느낄 후회보다는 몰가치할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심지가 굳지 않아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식의 오래된 마인드가 내게도 뿌리 박혀 있었다. 마음껏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적기는 오직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마음가짐 때문에 스스로의 방황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길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획은 없고 충동만 가득한 한 해를 보내니 결과적으로는 갤러리와 공공기관의 업무, 아트페어 운영과 전시 기획 등 예술계 안에서 4가지 직종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미술계에서의 사회생활이라고는 전무했던 내게 이 모든 경험들은 분명 피와 살이 됐다. 그럼에도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내 시야는 여전히 희뿌옜다. 고작 1년의 경험으로 방향키를 잡겠다는 포부는 순진한 오판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경험한 장단점이 저마다 너무도 선명한 탓에 그간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예술 분야에서의 일이 즐거울 때도 종종 있었지만 회의감만 남을 때도 왕왕 있었다. 방황 상태에서 진전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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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커리어에 대한 확신이라곤 없는 와중에도, 내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장 안팎에서 역동적으로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 그것이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있는 16시간 중 절반가량을 직장에 할애하며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을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내게 도무지 불가능하다. 그런데다 나는 직장과 일상을 감정적으로 철저히 분리할 수 없는 성향이다. 그렇기에 즐거운 직장을 찾아내는 것이 인생의 방향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행복과 즐거움을 다르기에, 직장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현실성이 없지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는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로써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첫째,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둘째, 내가 땀흘려 얻은 결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곳이 아니라 나의 고유한 능력이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나만의 무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아직 입을 뗄 수 없다. 나는 한 해 동안 미술계를 떠돌면서 나만의 재능과 적성을 명료하게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엔 모든 것이 ‘큰 그림’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지만 않는다면, 지금 내가 행하는 모든 일들이 유의미한 과정의 일부가 되어 언젠가는 나만의 특별함이 만들어지겠지. 그리고 이 마음가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언제나 현재에 충실히 임하며 기회를 탐색하면 된다고 낙관한다.

 

그렇다면 이제 직장 바깥에서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근사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쉽게 내려놓기 어렵다. 어딜 봐도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자기 분야의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된 사람들, 멋진 취미생활로 여가시간을 누리거나 완벽한 연애를 즐기는 사람들, 매력 가득한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들에 비해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기쁨은 하찮아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조건보다도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느끼는 기쁨의 크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헤프게 즐거워하려고 노력 중이다. 할 일에 집중해서 몰입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건강한 음식을 요리해 먹고 설거지까지 끝마쳤을 때, 신중하게 고른 선물을 친구에게 건네고 그 반응을 지켜보며 덩달아 행복해질 때, 처음 입은 옷이 마음에 들어 발걸음이 가벼워질 때가 그렇다. 지금처럼 시시콜콜한 일로 자주 기뻐하고, 현재에 충실하며 적극적으로 방황하다 보면 이십 년 뒤쯤엔 나름 성공적으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

 

이 글이 나 자신을 제대로 소개하고 있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을 핵심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은 사실이다. 이 생각들은 늘 내 머릿속에서 구름처럼 떠다니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지금처럼 구체화되어 본 적이 없어 약간은 낯간지럽다. 그럼에도 이 글로 출력된 활자들이 앞으로의 미래에서 나만의 기준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이 목적 없는 자기소개를 끝맺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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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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