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뜨거운 위로: 아벨 콰르텟 제4회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21.02.2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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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final_아벨콰르텟_제4회정기연주회.jpg

 

매년 1월이면 신년음악회를 다녀오곤 했다. 항상 신년음악회를 다녀오며 그 해의 목표를 되새기고 새롭게 환기하는 것이 매년 초의 개인적인 연례행사였다. 하지만 올해에는 코로나로 인해 조심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1월에 예술의전당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음악회를 다녀오지 못하면서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진 2월에라도 나만의 신년음악회를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그런 차원에서 2월 20일 토요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아벨 콰르텟의 제4회 정기연주회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낭만주의의 극치를 느껴볼 수 있을 법한 선곡들로 이루어진 이번 공연은 여러모로 뜻깊다.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던 아벨 콰르텟이 오직 낭만 시기의 작품만을 선곡한 첫 무대이기도 하고, 비올리스트 문서현이 합류한 이후로 처음 이루어지는 정기연주회라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되는 무대다. 공연에 앞서 선곡된 작품들을 미리 들어보기만 했을 때에도, 어느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작품이 없어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P R O G R A M


슈베르트 / 현악사중주 제12번 다단조, 작품703 ‘콰르텟자츠’

F.Schubert / String Quartet No.12 in c minor, D.703 "Quartettsatz"


멘델스존 / 현악사중주 제6번 바단조, 작품80

F.Mendelssohn / String Quartet No.6 in F minor, Op. 80


Intermission


차이코프스키 / 현악사중주 제1번 다장조, 작품11

P.I.Tchaikovsky / String Quartet No 1 in D Major, Op.11

 


 

 

이번 무대의 첫 곡인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12번 다단조, 콰르텟자츠는 '짧고 굵다'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고전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슈베르트가 그 영향에서 벗어나 좀 더 자신의 주관을 드러내기 시작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강렬한 트레몰로가 인상적인 1주제는 아름다운 2주제와 대비되어 작품의 아름다움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그 극명한 대비, 그리고 집약된 41마디라는 점에서 슈베르트의 작품은 이번 공연의 초반부인데도 아주 극적으로 느껴졌다. 1주제가 다시 한 번 제시되는 시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의 활 털이 끊어진 게 보일 정도였다.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아벨 콰르텟은 이번 연주회의 서막을 열었다. 아니, 서막을 여는 동시에 객석을 매료시켰다.

 

*

 

1부의 두 번째 작품은 멘델스존의 현악사중주 6번 바단조였다. 파니를 위한 진혼곡(Requiem for Fanny)이라고 스스로 이름을 붙일 정도로, 멘델스존이 누이의 죽음을 기리며 쓴 이 작품은 작품 전반에 걸쳐 멘델스존이 느꼈던 처절한 감정을 절감할 수 있다. 1악장은 조형준의 첼로부터 문서현의 비올라, 박수현과 윤은솔의 바이올린까지 차례로 트레몰로를 쌓으며 멘델스존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을 표현하였다. 2주제에서 조금 분위기가 밝아지는 듯하지만 다시금 1주제에서 촉발되는 긴장감으로 회귀한다. 1악장의 코다에서 만나는 아주 강렬한 유니즌은 멘델스존의 상실감과 분노가 완연했다. 갈 곳을 잃은 분노로 끝난 1악장의 정서를 이어받아, 2악장 역시 그의 절절한 심경이 심화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악장에서 보이는 싱커페이션은 분명 인상적인데도, 그 리듬감으로 인한 활기나 익살스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3악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멘델스존은 아다지오에 이른다. 1, 2악장에 비하면 보다 차분하게 누이를 떠나보낸 상실감과 슬픔을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슬픔은 3악장에서조차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벨 콰르텟의 연주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이 그 절절한 음색으로 멘델스존의 아픔을 말하고 있었고, 첼리스트 조형준은 전체적인 소리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이 선율과 반주 사이를 넘나들며 그 감정에 윤활유를 부었고, 비올리스트 문서현은 그 모든 소리에 깊이감을 더하여, 슬퍼서 더 아름다운 악장이었다.

 

마지막 4악장은 첼리스트 조형준의 당김음으로 시작했다. 이윽고 앞선 모든 악장의 감정이 전부 합해져 가장 선명하고 뜨거운 감정의 표출이 이어졌다. 코다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나는 유니즌은 휘몰아치는 격분 그 자체였다. 끓어오르는 감정으로 시작해서 열화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로 마무리한 멘델스존의 작품은 뜨거웠다.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선보인 아벨 콰르텟의 하모니도 아름다웠지만, 가슴을 파고드는 슬픔과 분노의 그 뜨거운 소용돌이를 생생히 그려낸 아벨 콰르텟의 멘델스존은 가히 1부의 백미였다.

 

 

Abel Quartet 01-0199_ⓒJino Park.jpg

ⓒJino Park

 

 

2부는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1번 다장조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아벨 콰르텟의 이번 정기연주회의 부제인 안단테 칸타빌레가 속해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1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이 1바이올린으로 나섰고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이 2바이올린으로 나섰다. 그러나 2부에서는 반대로 박수현이 1바이올린 그리고 윤은솔이 2바이올린으로 나섰다. 1부와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기대감을 안은 채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거의 알레그로 일색이었던 1부와 달리, 모데라토로 맞는 차이코프스키의 1악장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단조에 극적이었던 1부 프로그램들의 악장들과 확연히 대비되어서일까, 1악장인데도 마치 노래악장마냥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화음이 느껴지는 도입부에 이어 1바이올린이 주선율을 연주하고 나머지 악기들이 이를 꾸미는 그 모든 과정들이 물 흐르듯 부드럽고 유연했다. 이 부드러운 악장도 몰입해서 연주했던 탓인지 바이올리니스트 박수현의 활 털이 다시 한 번 끊어진 것이 보였다.

 

차이코프스키의 2악장, 바로 이번 무대의 부제이기도 한 안단테 칸타빌레는 약음기를 써서 부드럽고 몽환적인 소리로 홀을 가득 채웠다. '와냐는 긴 의자에 앉아 있었네'라는 민요에 감명을 받아 완성되었다는 1주제의 선율은 애수어린 감정이 느껴졌다. 사실 극적일 것은 전혀 없는 선율이다. 그런데도 1주제의 선율이 연주되는 순간, 음원으로 듣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마음이 속절없이 끌려갔다. 첼리스트 조형준의 피치카토로 맞이하는 2주제는 그야말로 꿈결 같았다. 그가 부드럽게 뜯는 첼로 소리에 심장이 함께 박동하는 듯했다. 그 반음계 피치카토 위로 얹어지는 서글픈 노래는 더 말해 무엇할까. 보이지 않는 손이 끝없이 나를 다독이는 듯한 그 선율에 끝내 눈물이 흘렀다. 멘델스존의 작품을 들을 때 다른 관객이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울컥하기는 했어도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벨 콰르텟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는 애절한 아름다움을 넘어 거부할 수 없는 위로 그 자체였다.

 

이어진 3악장은 스케르초로 다시 한 번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생기가 넘치는 분위기와 리듬감, 마치 춤곡 같은 박자감으로 1, 2악장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가득했다. 한껏 생기있는 3악장의 연주 끝에, 비올리스트 문서현의 활 털도 끊어졌다. 마지막 4악장은 그야말로 대미를 장식하는 악장이었다. 차이코프스키 현악사중주 1번에 녹아있는 모든 정서들이 보다 발전된 동시에 음악적인 즐거움 역시 가득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감성이 충만한 1주제에 비올라의 캐논, 2주제에서 드러나는 싱커페이션과 각 악기의 기교가 잘 드러나는 악절, 서정적인 패시지에 이어 빠른 템포의 화려한 피날레까지 무엇 하나 흥미롭지 않은 요소가 없다. 4악장 전반에 가득한 그 밝은 정서는 이제 곧 홀을 나설 관객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curtaincall.jpg

 

 

객석의 뜨거운 박수에 화답하여, 아벨 콰르텟은 세 곡의 앵콜무대를 선보였다. 첫 곡은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의 5악장, 카바티나였다. 박수현이 1바이올린으로 나서 함께 한 카바티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2부의 안단테 칸타빌레에서 느꼈던 감정에 잇닿아, 서글프게 아름다운 첫 앵콜을 음미했다. 이어진 두 번째 곡은 바인베르크의 현악사중주 5번 3악장, 스케르초였다. 여기서는 윤은솔이 1바이올린으로 나섰다. 현대음악가로 탄생 100주년이 넘어 과거보다 더욱 조명을 받고 있는 바인베르크의 스케르초는 정말 강렬했다. 아벨 콰르텟이 연주하는 현대 음악도 꼭 들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무대였다. 마지막 앵콜곡은 니콜라스 루바니스가 작곡한 영화 '펄프 픽션'의 삽입곡, 미실루였다. 다시 한 번 박수현이 1바이올린으로 나서 맞이한 마지막 앵콜은 화려하고 즐거웠다.

 

*

 

아벨 콰르텟의 제4회 정기연주회는 음악 프로그램과 더불어 즐거운 킬링포인트들이 유독 많았다. 먼저 첫 번째는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과 박수현이 뛰어난 1주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먼저 1부의 1바이올린주자로 나섰던 윤은솔은 기본적으로 눈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편인 것 같았다. 현악사중주의 키를 기본적으로 잡고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눈으로 멤버들과 소통하며 끌어나가는 그 모습이 매우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런가 하면 2부의 1바이올린주자였던 박수현은 눈을 포함해 다양한 제스쳐를 활용하는 편인 것 같았다. 차이코프스키 1악장이 끝나고 휴지기에, 박수현의 바이올린 받침대가 갑자기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다시 끼우고는 멤버들과 눈을 맞추며 '하자'라고 입으로도 의사표현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커튼콜을 반복하다 첫 앵콜곡을 하러 나왔을 때에도, 멤버들에게 눈을 맞추며 '앉아?'라고 묻는 게 보였다. 연주할 때는 모두 카리스마가 넘치는 두 바이올린주자의 상이한 점이 이렇듯 보이니, 이것도 이번 공연의 색다른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차이코프스키 4악장을 할 때였다. 서로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멤버들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순간이 있었다. 아벨 콰르텟 멤버들이 서로 눈을 맞추고 웃음을 나누며 하모니를 만들어가는 그 모습이 뇌리에 박혔다. 합주를 하려면 당연히 서로를 보며 호흡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어쩜 그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아벨 콰르텟의 올댓아트 인터뷰를 보면, 바이올리니스트 윤은솔은 멤버 교체는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로 8년째 콰르텟이 유지되어 올 수 있었고, 또 너무 가까워지다 보면 서로가 힘든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에 선을 지키려는 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정기연주회의 무대를 보면, 그들의 음악적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는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객석에 앉은 채로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점은, 앵콜무대에서였다. 세 번의 앵콜 중에서 두 번째 앵콜무대를 할 때부터, 아벨 콰르텟 멤버들은 비올리스트 문서현을 앞세워 무대에 들어왔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작년부터 합류하여 정기연주회에는 처음으로 함께 서는 문서현을 객석에 각인시키려는 멤버들의 배려인 게 느껴졌다. 앵콜무대를 소개할 때에도 두 번째 앵콜곡은 첼리스트 조형준이 소개했지만, 첫 곡과 마지막 곡은 비올리스트 문서현이 소개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비올리스트 문서현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도 그를 명확하게 보여주려는 아벨 콰르텟 멤버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

 

아벨 콰르텟의 이번 무대는 뜨거운 위로였다.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관객들에게 단비같은 오아시스였는데, 조심스럽지만 코로나로 인해 작년부터 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아벨 콰르텟 멤버들에게도 뜨거운 위로가 되는 무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날 IBK챔버홀에서 아벨 콰르텟과 객석이 공유한 그 무언의 위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제4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아벨 콰르텟은 멤버들의 호흡이 환상적이라는 것을 객석에 각인시켜 주었다. 그 인상적인 호흡과 더불어 그들이 그려내는 음악적인 풍경 역시도 절경이었다. 벌써 8년차에 접어든 아벨 콰르텟인 만큼, 국내 무대에서 또 다른 아름다운 레퍼토리로 더 많은 무대들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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