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도 없는 그림을 읽어 보았다 - 그림 읽는 법

글 입력 2023.12.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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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근처에 전시회가 열리면 보러 가곤 한다. 시 전시회든, 미술 전시회든.


시 전시회는 읽으며 나름대로 감상을 한다지만, 그림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림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따위를 읽고 싶은데. 작품에서 구현된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싶은데. 미술은 어떤 역사를 거쳐 발전해 왔을까를 알고 싶은데. 그에 대해 해박하지 않으니, 작품을 풍요롭게 감상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래 가지고 있는 한계 같은 것이었다.


미대를 준비하던 친구 하나가 있는데, 그 친구는 그림에 대해 정말 잘 안다. 언제 한번 기회가 되어, 미술작가 한 분을 인터뷰할 일이 생겼었는데, 그림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작가님과 활발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퍽 멋있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부러워 미술사나 예술철학에 대한 책을 아무거나 읽었다. 하지만 그 공부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책들이 다소 어렵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책들이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놓아 버린 격이다. <그림 읽는 법>은 그때의 아쉬움을 덜어보고자 읽게 되었다. 더불어 나도 그림에 대해 좀 배워 보고 싶어서.


책을 시작하기 전에 적힌 작가의 말이 좀 인상적이다.


 

미술작품에는 세상과 사람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적,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인간이 선택하고 행해온 결과이며, 창작자의 심리, 정신적인 표현 그 자체지요. 미술이 재미있는 이유는 절대적 진리를 찾는 과학과 달리 하나의 작품이나 주제, 사조, 아티스트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며, 그것이 주는 깨달음의 환희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마주한 뒤 직감적으로 느낀 것부터 이론적인 분석에 이르는 과정이 주는 즐거움과 공감, 다양한 관점의 발견이 나와 우리, 이 세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꼬한 미술 연구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겠습니다.

 


미술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잘 묻어나는 부분이었다. 내가 애정하는 문학도 절대론적 관점, 반영론적 관점, 효용론적 관점 하며 다양하게 해석하곤 하는데, 그림도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공부가 그렇듯 미술 공부 또한 쉽지 않을 테지만, 그 흥미로움에 빠져 더 열심히 공부해 볼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그저 어렵다는 이름을 둔 척 쉽게 알기만을 바란 오만함은 아니었을까 문득 반성을 했다.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다루고 있는 한편, 더 마음이 갔던 파트가 몇 있다. 우선 하나는 '테오도르 제리코&외젠 들라크루아'다.

 

 

 

테오도르 제리코 & 외젠 들라크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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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작가라기보다는 '낭만주의는 낭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문구에 끌렸다. 낭만주의는 어떤 아름다움이나 환상적인 것, 꿈 같은 것, 혹은 사랑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비이성·비현실적인 것, 무질서와 흥분, 공포 등 아티스트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댔다.

 

  
낭만주의는 때로 달콤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나 평화롭고 로맨틱하다는 의미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현대적 의미의 로맨틱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공식 문서나 문학작품에 쓰이던 공식 언어가 아닌 일반 민중이 쓰던 통속 라틴어입니다. 통속 라틴어는 엄격한 규칙 없이 민간에서 편하게 사용되었기에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유용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로망(roman)은 '소설'을 뜻하며, '소설적인, 비현실적인, 기이한, 상상의'라는 뜻을 지닌 단어 로마네스크(Romanesque)에서 기원했습니다. 로맨티시즘, 즉 낭만주의는 이 어원에서 생겨난 명칭입니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낭만주의 미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라고 한다. 콜드플레이(Coldplay)의 노래 'Viva la Vida'가 수록된 앨범 커버로도 활용된 <민중을 이끄는 여신>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만 보면, 외젠 들라크루아를 사회 참여적 아티스트로 볼 수 있지만, 그러한 그림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주로 소설이나 신화 같은 상상의 세계와 이국적인 환경에 집중하던 화가'였다는 것이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뗏목>의 화가로, 제리코 또한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다. 사람들이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주제가 드러내는 공포와 끔찍한 상황에서도 발견되는 예술의 환희와 숭고의 정신은 대중을 사로잡았지만, 고전주의자들은 참혹한 시체 그림일 뿐이라며 큰 반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평가가 갈릴 수는 있겠다만, 예술을 통해 어느 순간을 만나고,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이 가진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구스타프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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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는 내가 앞서 이야기한 무대를 준비하던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화가다. 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에로티시즘적이고 예쁘기도 한 게 좋다고 했었다. 클림트의 그림을 그 친구를 통해 처음 봤는데, 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빛을 내고 있다는 듯한 생각을 했었다. 마냥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지, 클림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지는 생각을 못 해 봤는데,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었다.

 

  
클림트가 좋아했던 주제 중 하나인 끝없이 반복되는 삶의 순환, 죽음과 새 생명의 교차는 1903년과 1907년에 작업한 작품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클립트는 <희망Ⅰ>과 <희망 Ⅱ>에서 그의 특징인 장식적 요소를 화려하게 집어넣어 임신한 여성의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당시 서양미술에서 비교적 보기 드문 주제였죠. 작품 속 주인공은 욱체적 사랑의 화신이며 다산의 알레고리입니다. 두 작품 모두 임신한 여성 앞에 죽음의 상징인 해골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희망찬 얼굴을 한 여성의 뒤로는 일그러진 표정의 죽음과 불운이 도사리고 있죠. 늘 해오던 방식처럼, 클림트는 육체적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고 있는 여성을 에로틱하게 그리면서도 죽음의 위협은 인간의 삶에 언제나 공존한다는 메시지를 심었습니다.
 

 

아름다움만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죽음, 사랑 등을 아름다움으로써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클림트 같다.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고... 무엇이든 아름답게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경이롭기도 하다.

 

어느 한 작가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도 하나 있었다. 예술가들이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예술가가 예술작품에 이름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감상자가 스스로 보는 힘을 갖게 하고, 창작 배경과 동기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하나의 차원에서 하나의 해석만이 가능하도록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서 고려될 수 있으며 언제든 자의에 따라 변경할 수 있도록 해둔 장치인 셈이죠. 하지만 이처럼 언어가 주는 제한적 성격을 피하려 했음에도 무제 작품들조차도 결국은 언어로 이루어지는 학문적 비평이나 의견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 '언어'라는 것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와닿으면서도 약간은 다른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언젠가부터 열린 결말의 작품을 그리 선호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목을 '무제'로 둠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하고, 감상자만의 제목을 붙여 볼 수 있고, 작가 스스로조차 제목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작품을 그릴 때, 혹은 환성했을 때의 작가와도 소통하고 싶다. 왜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왜 그 제목이어야 했는지를 읽어 보고 싶은 것이다. 이건 그냥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어찌되었든 다양한 화가들의 작품에 대해 그리고 그림 속 이야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었다. 내용이 어렵다 싶으면 책의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어,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에데 익숙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야기도 있어, 그들의 덕후라면 읽기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림에 대해 혹은 화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림을 '본다'가 아니라 '읽는다'고 하는 게 색다르게 다가왔는데, 왜 그렇게 이야기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문예사조처럼 미술사조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 보면 보다 폭넓게 그림을 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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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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