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나의 글쓰기 철학

글 입력 2024.02.1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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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쓴 글들을 다시 읽고 있다.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쓴 지도 벌써 3년이 되었으니 나의 글쓰기 인생도 딱 그만큼 되었다는 소리다. 3년간 들쑥날쑥 올린 글들을 읽으며 느낀 감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뉘는데 1.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2. 어쩌면 지금보다 나을지도... 3. 그럼에도 걸리는 부분들이 있군, 정도였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나 문체 같은 것이 크게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조금씩 달라진 부분이 있기야 하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고 문체 또한 한결같다. 좋은 건가?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대체 불가한 나만의 문체가 생겼다는 사실이 조금 떨떠름하기도 하다. 


또 한 가지 감상. 모든 글을 꾹꾹 눌러쓴 흔적들이 보인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소재를 고민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찾고 퇴고를 하고···. 처음 글쓰기의 기쁨을 발견했을 때의 열정과 에너지 같은 것이 느껴져서 내심 감동하기도 했다. 현재의 나를 반성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요즘은 예전만큼 꾹꾹 마음을 다해 쓰거나 글이 누더기가 될 때까지 수정하고 퇴고하는 일이 많지 않은 것 같아서다. 솔직히 [글 기고 노하우] 같은 건 과거의 내게서 배울 점이 더 많아 보이고 어딘가 건방진 느낌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3년간 글을 쓰면서 축적해 온 나만의 데이터가 있고 이쯤에서 ‘나의 글쓰기 철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붙여 나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써왔는지, 어떤 점을 유의하면서 쓰는지 등을 기록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아래는 나의 글쓰기 철학(내지는 노하우) 셋. 몇 년이 지나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이 글을 3년 뒤의 내가 읽고 반성할지 비웃을지 몹시 궁금하다. 어떤 상황이든 반가울 것 같다. 어쨌든 내가 글쓰기를 통해 원하는 건 끊임없이 확장되고 무너지고 다시 쌓아 올리고 배우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변형된 나를 발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1. 첫 문장? 제목?



중요하지만 얽매이지 않는다. 오래 붙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첫 문장이나 제목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세계로 독자를 맞이하는) 초대장 같은 것이니까. 초대장만 화려한 것보다야 본격적인 파티가 재밌는 편이 훨씬 낫다. 물론 초대장과 파티 모두 근사하다면 더욱 좋겠지만. 정성 들여 쓴 초대장은 티가 나기 마련이고 독자는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많은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간결하고 명료하게 초대장을 작성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글은 무엇을 다루고 있고 나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글의 핵심을 관통하는 압축된 구절이나 문장이 요구된다.


이러한 도입부 작성이 너무나 귀찮고 쓸데없이 느껴진다면 글쓴이(초대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고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본문에 충실하면 될 일이다. 도저히 멋들어진 제목이나 첫 문장을 뽑아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해당 글에서 좋았던 문장이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변주해서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제목과 첫 문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는 편인지?


책을 읽을 때는 제목의 중요성을 크게 절감하지 못하지만 인터넷 지면에 글을 쓸 때는 제목이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얘기했듯, 우선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제목으로 미끼를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되도록 간결하게. 글의 주제나 핵심, 메시지를 아우르는 제목이면 좋다. 독자가 제목을 보고 글의 내용을 대충 유추할 수 있는 정도면 문제없다. 내가 선호하는 제목의 글자 수는 보통 (공백 포함) 15자 내외인데 이 정도가 하나의 메시지를 담기 가장 깔끔하(게 느껴지)고 한눈에 읽혀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써온 글 가운데 마음에 들거나 좋았던 제목들을 모아 평균치를 낸 것일 뿐... 10자가 안 되거나 20자가 넘어가는 제목의 글도 많다. 따라서 이건 나의 개인 취향일 뿐이고 절대적인 지표가 아니니 참고사항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제목으로 독자를 끌었다면 이제 글의 출입구로 독자를 안내해야 한다. 첫 문장은 그런 출입구 같은 역할을 한다. 출입구로 독자를 넘어오게 하려면 우선 글의 장벽이 낮아야 한다. 나는 보통 글 첫머리나 앞 문단에 개인적인 경험을 글의 주제와 연결 지어 소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편이 가장 편리하기도 하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한 사람의 독자적인 경험이나 생각, 세계관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의 가치관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당신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이 세상에는 반드시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칼럼이나 평론이 글 앞머리를 자기 경험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식으로 진입로를 잘 닦아두면 글쓴이와 한결 친밀해지는 느낌이 들고 이어서 나오는 본문도 훨씬 수월하게 읽힌다.


좋은 글은 시작부터 진입로를 잘 닦아두는 경우가 많으니 역시 글의 인상을 좌우하는 첫 문장이나 제목도 조금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2. 읽기 쉬운 글



에디터 활동을 할 때부터 읽기 쉬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의 진입장벽을 낮추면 독자층도 넓어지니까··· 같은 원대한 목표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그저 나부터가 읽기 쉬운 글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기호의 차이일 뿐. (어려운 주제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사람이 진짜 글쓰기 고수가 아닐까?) 결국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글을 쓰면서 스스로가 장소나 공간, 사람을 묘사하길 특히 어려워한다는 걸 깨달았다. 머리를 쥐어짜서 뽑아낸 미문이나 비유 역시 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방식이 내게 가장 적합하다는걸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글의 속도감 역시 내 글의 주된 특징이다.


그렇다면 읽기 쉬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려운 단어나 어절은 되도록 쓰지 않는다. 세상에는 어려운 단어를 요리조리 조합해 근사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대한 쉬운 단어로 우직하게 문장을 밀고 나가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또 독자의 시선에서 글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건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다. 내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 사실이 나를 자주 움츠러들게 한다. 내가 넘지 못하(고 있)는 어떤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거나 부숴버리는(극복하는) 과정이 그래서 필요하다. 그런 지혜와 지식은 대개 책으로부터 얻는다. 나는 책에서 얻은 그러한 유용한 자산들을 내 글에 시험하고 적용해보는 식이다. 물론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바깥 세계에 있다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같은 선상에서 ‘읽는 맛’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대적인 지표나 기준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라 이 글은 맛이 있고 저 글은 맛이 없네 나눌 수는 없지만··· 확실히 입맛을 돋우고 감칠맛이 나는 글들이 있다. 뭐랄까, 문단과 문장이 출렁출렁 파도를 타고 움직이는 느낌이다. 글에 표정이 있는 것도 같고. 활자와 활자 사이에서 글쓴이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술술 읽히면서 재밌기까지 하다. 아무리 따분하고 지루한 소재라도 이들이 펜을 잡으면 일단 쫑긋 귀를 기울이게 된다. 형편없는 재료로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셰프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 내가 지향하는 글 역시 이와 비슷하다. 맛있는 글은 계속 손이 가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내 글을 읽다가 턱턱 막히는 구간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거나 그냥 망한 문장이거나 둘 중 하나다.

 

 

 

3. 퇴고



많이 한다. 퇴고를 거듭할수록 글이 눈에 띄게 나아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전체적인 글의 뼈대나 윤곽을 잡아두고 한 번에 글을 썼다가 퇴고 과정에서 문단, 문장, 단어, 접속사, 조사 등을 바꾸거나 빼거나 수정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작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이기도 하고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도 믿는다. 퇴고를 많이 한 글과 많이 하지 않은 글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어설프게 완성된 글 한 편의 오타를 가려내기 위해, 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 몇십 번씩 퇴고했던 과거의 이력이 나를 좀 강박적으로 만든 것도 같지만. 어쨌든 문장을 수선하고 기운 티가 많이 나는 글은 대체로 읽기가 편하고 완성도 역시 높아 보인다. 


그래서 마감에 치여 퇴고를 많이 못한 과거의 글을 볼 때마다 약간의 자괴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마감에 치이면서도 어떻게든 글 한 편을 완성해 냈다는 뿌듯함이 들기도 한다. 앞서 퇴고를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는 했지만 그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한 편의 글을 시작하고 완성하고 보는 것이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퇴고든 뭐든 일단 본인의 생각이 담긴 한 편의 글을 집요하게 완성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퇴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역시 시작이 중요합니다··· 너무 뻔하고 게으른 소리인가? 


그런데 나는 그 시작을 못 해서, 한 편의 글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더는 쓸 수 없게 된 글이 많다. 유효기간이 다 한 것이다. 구상 단계에서 머문 어떤 글들의 아이디어(몇 개는 제목까지 정해두었다)는 여전히 내 메모장 어딘가에 깊숙이 처박혀 있다. 쓰다 보니 글쓰기가 운동과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둘 다 엄청난 귀찮음을 무릅쓰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 그러나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그것을 끝내고 나면 (마감의) 개운함과 뿌듯함과 성취감이 (때로는 황홀감과 함께) 밀려든다는 점이 그렇다. 시작이 힘들고 끝이 좋은 건 모두 글쓰기와 비슷한 성질을 띠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자명한 진리를 과거의 내가 몰랐을 리 없고 나는 여전히 시작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 


따라서 내게 글쓰기는 시작의 두려움과 압박감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극복하는 과정의 연속일 것이다. 두려움과 압박감을 주는 상대와 멀어질 수 없는 건 그만큼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하자.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한다기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추상의 세계에 머물던 생각과 상상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와 복원하고 탑을 쌓는 과정을 좋아한다. 어렴풋하게만 느껴지던 아이디어가 글로 옮겨진 뒤 명확하고 뚜렷한 실체를 찾은 것이 눈에 보일 때 밀려드는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건 처음 생각했던 바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글의 흐름이 전환되거나 나아가는 때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글쓰기의 정말 놀라운 마력 중에 하나다. 동양의 인도를 찾아 나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불시착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러므로 글을 쓴다는 건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로는 정해두었지만 이 넓은 바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는. 가끔 폭풍우를 마주칠 일도 있겠지만 어쨌든 미지의 대륙을 발견한다는 건 가슴 설레고 기쁜 일이니까.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선 바다에 올라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일 테다. 바꿔 말하면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고 그 위에서 활자와 내가 함께 변화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기쁨이자 즐거움일 것이다.

 

*


앞서 말한 원칙들을 지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하면서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건 한 세계에만 매몰되지 않는 글쓰기다. 그러니까 문장의 주어가 다양해지는 것이다. 마침 어제 읽은 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얼굴』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글쓰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은 주어를 바꾸는 것이다. 나 말고도 다양한 타자로 문장을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벅찬 감동과 막막함을 동시에 준다.” 더 많은 독자층을 수용하고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한없이 무해하고 다정한 글을 쓰고 싶다는 건 아니다. 왜냐면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활자 너머의 타자를 생각하고 글을 지속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요컨대 좋은 의도로 쓴 글에서도 폭력이 발생할 수 있고 또 다른 차별과 소외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많이 읽고 쓰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타자를 상상하고 포용하고 끌어들이려면 그 방법밖에는 왕도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예정된 실패를 끌어안고 나와 타인의 세계를 넓히는 글을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이 글의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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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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