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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렸던 실존 인물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의 생애를 다룬 한국 창작뮤지컬이다. 파가니니가 사망한 후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이유로 교회 묘지 매장이 거부되고, 아들 아킬레가 아버지의 안식을 위해 종교 법원에서 벌이는 재판을 액자 구조로 삼아, 1836년 파리의 ‘카지노 파가니니’ 사건과 파가니니의 일대기를 회상 형식으로 풀어낸다. 사업가 콜랭 보네르의 탐욕, 사제 루치오 아모스의 광신, 성악가 지망생 샬롯 드 베르니에의 꿈이 교차하며, 순수한 예술가가 자본과 종교 권력에 의해 어떻게 '악마'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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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품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천재성’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현대 사회는 남과 같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이다. 차별화된 경쟁우위의 원천이 곧 생존의 조건이 되었고, 특정 분야에 대한 집요한 관심, 남다른 개성, 타고난 재능이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그 스토리는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는 곧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다. 유튜브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나 취미를 보여주는 사람이 수백만 구독자를 모으고,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시대이다.

 

아마 파가니니가 지금 태어났다면 자신의 독보적인 실력과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SNS를 활발하게 했을 것이다. 실제로 파가니니는 기괴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독특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를 비롯한 당대 유명 여성들과 자유롭게 염문을 뿌렸던 인물이니, 요즘이었다면 "악마에게 영혼 판 썰 푼다"는 기막힌 후킹으로 오히려 대중을 열광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가니니가 살았던 19세기 유럽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당시 사회는 가톨릭이라는 획일적인 믿음 체계를 중심으로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종교와 신화가 세상을 설명하는 거의 유일한 틀이었다. 이렇게 폐쇄적인 사회에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파가니니의 연주는 경외의 대상인 동시에 기존 질서를 흔드는 위협이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재능 앞에서, 그 시대가 가진 유일한 해석 틀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에서 루치오가 파가니니의 연주를 직접 보고 "이런 연주는 악마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장면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악’으로 규정해버리는 폐쇄적 사회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보여준다. 파가니니의 천재성은 그 시대에서 보호받기는커녕, 견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같은 재능이라도 어떤 시대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을 통해 선명하게 다가왔다.

 

 

2.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천재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뮤지컬 속 파가니니의 삶을 돌아보면, 그의 천재성은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소모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자마자 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연습을 시켰고, 성장한 뒤에는 콜랭 같은 사업가가 그의 이름에 빨대를 꽂고 이익을 챙기려 했다. 파가니니는 샬롯을 구하기 위해 콜랭과 노예와 다름없는 장기 계약을 맺고, 영혼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연주에 매달려야 했다. "내 영혼은 닳아서 낡아지고 결국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음악만 남겠지"라는 대사는, 한 인간이 '천재’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철저히 소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른 나이에 재능을 발견받은 아이들이 시스템 속에서 경쟁에 내몰리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인격과 영혼이 충분히 성장할 기회를 잃는 경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어린 운동선수들, 어린 예술가들, 어린 영재들이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가치에 비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얼마나 보호받고 있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사회와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천재성과 그 영혼을 보호하고, 기회를 부여하면서도 '천재’라는 존재로 단순히 소모되지 않도록, 인간적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파가니니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바이올린 대신 어린 시절을 돌려주었더라면, 콜랭이 아닌 진심으로 그를 아끼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파가니니의 음악은 달라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의 삶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동시에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재능이 묻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와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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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클래식 연주곡이라고 하면, 조용하고 엄숙한 공간에서 기침 소리조차 조심하며 감상해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와 라 캄파넬라가 화려한 조명 아래 7인조 락밴드의 반주와 함께 울려 퍼지는 순간, 클래식이 가진 에너지가 이렇게까지 폭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체감했다.

 

생각해보면 파가니니 자신이 이미 당대의 '락스타’였다. 관객을 열광시키고, 현이 끊어져도 연주를 멈추지 않으며, 무대 위에서 악마적 카리스마를 발산했던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뮤지컬의 ‘락 클래식’ 편곡은 원곡의 정서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가니니가 살아 있었다면 원했을 법한 방식으로 되살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변주가 파가니니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연주가들, 다른 장르까지 확대된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발레 <지젤>에도 이런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지젤> 2막에는 처녀귀신 '윌리’들이 등장하고, 저주를 받은 남자 주인공 알브레히트가 죽기 직전까지 쉬지 못하고 춤을 추어야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클라이맥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펼쳐지는 처절한 무용을 록 음악의 에너지와 결합한다면 어떨까.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매력적인 IP가 더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면 좋겠다는 것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자그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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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처음에는 파가니니 역 배우가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관람을 시작했다. 공연 초반, 바이올린 소리가 유독 깨끗하고 쩌렁쩌렁하게 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녹음된 음원치고는 너무 생생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배우의 활 움직임과 소리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어라?’ 싶어 공연 중 검색해본 결과, 주연배우들이 실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직접 무대 위에서 연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공연의 몰입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무대 위에서 실제로 울리는 바이올린 한 음 한 음이, '파가니니는 천재였다’는 서사적 설정을 관객이 직접 체감하게 만든다. 아무리 대사로 "그의 연주는 신의 경지였다"고 말해도, 그 연주를 귀로 직접 들을 수 없다면 관객은 결국 상상에 의존해야 한다. 또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극을 연출하면서, 바이올린 연주는 가짜 연기에 불과하다면 관객은 절대 몰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배우가 직접 연주함으로써, 극 중 인물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특히 후반부 라 캄파넬라 7분 독주는 서사의 클라이맥스이자 음악적 클라이맥스가 동시에 겹치는 설계로, 화려한 음율을 지휘하는 힘있는 활의 움직임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섬세한 음율을 관객석 구석구석까지 전달하기 위해 사운드 설계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이 느껴졌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경험이었다.


 

 

 

5. 

“음악이 되고 싶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뮤지컬 〈파가니니〉의 이 한 문장이 공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났다.

 

파가니니는 음악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세상은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악마의 이름을 다시 인간의 이름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아들 아킬레는 36년을 싸웠다. 천재성이란 무엇인가, 사회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고 한 사람의 진짜 이름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누구인가. 공연장을 나서면서 이런 질문들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렇지만 역시 "24개의 카프리스 작품번호 1, M.25(Caprices, Op. 1, M. 25)"에서 첫 활이 미끄러지던 순간만큼은, 파가니니가 악마에게 영혼을 건네는 장면이 떠올랐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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