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웹툰, '싸우자 귀신아' [만화]

내 상처를 마주하는 것은 나 자신임을
글 입력 2021.02.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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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런 사람은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이 삭막하고 팍팍한 세상에서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만약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완벽한 세상은 없으리라. 이것이 지나치게 완벽한 가정이기에, 우리는 그것이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 주변에는 상처받은 것 같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왜 다들 아무 일 없어 보이는 걸까? 왜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아 보일까? 왜 나만 유독 힘든 것일까?

 

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단단해지고 더 유해질 수 있을까.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작가의 혼이 담긴 '싸귀2 : 퇴마록'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웹툰이 있으니, 바로 '싸귀2 : 퇴마록'이다.

 

작가 임인스가 2013년 2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네이버에 연재한 작품인 '싸귀2 : 퇴마록'은 임인스 작가의 '싸우자 귀신아' 3부작 중 두 번째 시리즈이다. 임인스 작가의 작품은 굉장히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개그물로 시작했다가 후반에 갈수록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지더니 결국 심오한 작품성을 뽐내며 마무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임인스 작가의 가장 뛰어난 점 중 하나이며 이 면 덕분에 그는 재미도 잡고 감동도 잡은 무수히 많은 걸작들을 배출해냈다.

 

'싸귀2 : 퇴마록'도 그의 걸작 중 하나로 손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에피소드는 '연옥편'이다.

 

'연옥편'은 연재 당시 너무 심오한 내용 탓에 작가 스스로도 자괴감에 빠져 한동안 제대로 된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결국 막장으로 치닫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임인스는 장기간 휴재 중단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이 모습을 본 독자들은 '싸귀2'에 대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전 작품만큼의 명예 회복은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치고 돌아온 임인스 작가는 이전에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매 편 어마어마한 작품 역량을 보여주었고, 결국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연옥편'을 마무리하게 된다.

 

임인스 작가의 고통이 담긴 '연옥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 주는 것을 택하는 사람들


 

연옥편은 재수 학원이 주 배경이다. 아무래도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했다'라는 죄책감 때문에 이미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상태의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작품 전체 분위기는 매우 어두운 편에 속한다. 특히 초반부는 제대로 보기가 힘들 정도로 암울한 내용이 등장하기에 이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쉽게 나가 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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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상처주는 방법을 택한다. 내가 받을 상처를 타인에게 떠넘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인물들의 모습은 흡사, 위험천만한 폭탄돌리기를 하는 '게임 참가자'들 같아 보인다. 남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을 괴롭히고, 상처주고, 욕을 하며, 까내리는 필사의 생존 게임. 우연찮은 기회로 모두가 강제로 참여하게 된 이 게임은 총성 없는 전쟁터인 것 같다.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인가? 누구를 위한 게임인가? 내가 이겨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아니, 그 전에 왜 이런 게임을 해야하는 것인지? 이 게임의 끝엔 어떤 것이 있는지? 나는 왜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는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상처가 덧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다. 그것이 어떤 파국을 초래할지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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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남의 약점을 헐뜯고 이리저리 조리돌림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를 더욱더 어둠속으로 끌어들였고 그것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에 자물쇠를 걸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겹겹이 쌓인 자기 방어 태세는 자기 안에 위치한 내면 아이를 억누르기만 했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된 나에게 이렇게 외친다.

 

날 좀 봐달라고, 나 좀 도와달라고, 나 너무 아프다고, 제발 이 곳에서 날 구원해달라고..

 

그런데 우리는 의미없는 게임만 반복하는 동안, 총성없는 싸움이 오가는 동안,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외침을 듣지 못한다. 공허한 외침이 되어버리고,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메아리처럼 내게 다시 되돌아오는 허무한 목소리. 내 안의 아이는 홀로 남겨진 채, 점점 내게서 멀어져간다.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안, 끝없이 오가는 전쟁은 무수히 많은 핏방울과 비명만 남겼을 뿐이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없는가? 왜 이 싸움을 지속해야 하는가? 싸우는 것만이 방법인가? 의미없는 싸움만을 반복하느라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걸까?

 

 

 

비교하지 말기


 

우리가 마주하는 내적 상처는 다른 누군가에 비해서 많이 작아보일 수 있다. 나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있는데 감히 내까짓게 아프다고 성을 내서야 되겠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내가 한없이 초라하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부분에서까지 남들과 비교하려고 하는 것인지? 내가 가진 상처의 크기를 왜 내 멋대로 정하는지? 상처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겪은 내가 '아팠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고통은 나만이 알고 있다. 내 아픔을 남으로부터 이해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남들은 내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꺼져가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로 이 내가 나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다. 내 안의 어린 아이를 안아주는 일, 아이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

 

이 웹툰은 인물 한명한명의 내적 상처에 초점을 맞추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의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웹툰을 보다보면 저절로 눈물이 날 때가 있을 것이다.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잘 따라가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 한 구석이 쓰리고 숨 쉬기가 힘겨워 질 때도 있을 것이다. 당신 안의 아이가 울고 있다는 증거다.

 

웹툰을 통해 만난 상처를 이해했다면 이제 나의 상처를 마주할 시간이다. 내 안의 아이를 만나러 가야한다. 그동안 외면했던, 방치했던, 내 과거를 그대로 품은 어린 아이를 어루만져줄 때가 왔다. 혼자 힘겨워하고 있을, 과거의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자. 이젠 그럴 차례다.

 

 

[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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