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보는 책
어느 날 우연히, 어릴 때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된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전보다 많은 것이 보이고 가볍게 다시 본 책에서 의외의 깊이를 발견한 순간, 왠지 모를 희열이 느끼곤,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 전집이 집에 있을 만큼 어린 시절에 읽어 어렴풋한 기억만 남은 책이었다. 시계를 들고 뛰는 하얀 토끼, 웃는 고양이, 무언가를 먹을 때마다 크고 작아지는 앨리스쯤이었던 같다.
책의 실물을 본 순간,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오랜만에 큰 글씨와 그림으로 가득 찬 책을 읽는다는 생각에 읽기도 전부터 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져만 갔다.
어릴 때 책상에 앉아 소리 내서 읽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소리 내서 읽어보았다. 소리 내서 읽는 것에 애나 본드의 그림까지 더해지니, 내 머릿속에선 자연스럽게 영상이 재생되었다.
애나의 작품은 재치있는 디자인과 손으로 직접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및 레터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그러한 애나 본드가 일러스트부터 한 장 한 장 디자인한 책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지 못한 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말 그대로 정말 이상하다. 등장인물도 이상하고 대화도 이상하다.
그런데 읽을수록 어릴 때 나는 이걸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릴 때의 나는 앨리스의 입장에 몰입한 아이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가 주는 음식을 선뜻 먹는 앨리스를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지? 자꾸만 그러한 현실적인 생각이 이 책에 몰입하려는 나를 방해했다.
또 다른 방해요소는 자꾸 숨겨진 뜻과 의미와 교훈 같은 것들을 찾으려는 나였다.
“너 지금 생각에 빠져서 말을 잃었구나. 거기서 무슨 교훈을 얻을지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금세 생각해낼 거야.”
“아마 없을걸요.” 앨리스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쯧쯧, 이 세상에 교훈이 없는 건 없어! 네가 찾지 못할 뿐이지.” 공작이 말했다.
-p.130
앨리스는 이러한 공작을 보면서 말할 때마다 교훈을 찾는다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chapter 9속 이야기로, 앨리스의 생각을 읽는 순간‘아, 나 지금 공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교훈과 의미 따위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읽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주는 원더랜드 초대권
그렇게 방해요소를 겪으며 고전 소설로 다시 읽어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재밌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장난과 이상한 대화에 왠지 모르게 피식피식 웃기도 했다.
언젠가 간 적이 있음에도 잊고 살았던 공간에 오랜만에 다시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책 속에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도 여전히 동심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여전히 원더랜드 속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뜻을 파악하려는 목표는 수포로 돌아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다.
-p.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