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향에 관한 소소한 단상 [사람]

2020년, 여전히 좋은 것들에 대한 기록
글 입력 2021.01.0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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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너 인생의 목표가 뭐냐 라고 묻는다면 단순하지만 내 대답은 항상 ‘멋진 사람이 되는 거’였다. 지금도 그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멋진 사람이 부합해야 하는 기준에 항상 빠지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였다.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파고들어 명확한 취향들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눈에 띄는 사람이 멋져 보였다. 어른스러워 보였고, 언제나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기록하려고 하는 편이다. 적어두고, 사진도 찍고 캡쳐도 한다. 정말 자주 그렇게 해서,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몇백개의 메모들이 줄지어 있고, 갤러리의 은색 하트 폴더는 항상 꽉차있다. 날짜별로 당시의 관심사를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목록들이다.

 

얼마 전 메모장의 글을 오랜만에 읽어보다가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의 일들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글을 적기 시작한다. 사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내가 좋아하는 특정 분야들에 대해서 적기에는, 앞에 언급한 ‘멋진 사람’에 부합하기 모자란 사람임을 밝힌다. 그래서 나의 새해 목표는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는 거다.

 

그동안 나의 빅 데이터를 잘 쌓아놓고 다듬어서 몇 달 뒤 여기에 다시 멋지게 소개해 보기로 약속하고, 지금은 그냥 좋아하는 일들에 가까운 것을,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좋아했던 습관과 같은 것들을 일기처럼 편하게 적겠다. 아무래도 멋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지는 않지만 솔직한 기록이 될 것 같다.


 


Wonderwall :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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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질리지도 않을 만큼 오랫동안 나와 함께였다. 나는 거의 태어났을 때부터 쭉 수도권의 변두리에 살았는데, 그래서 길고 긴 통학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것이냐 하는 것은 십 몇 년 동안의 학교생활 내내 풀어야하는 숙제였다. 물론 정말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사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그 시간을 즐기게 된다.

 

그 길고 긴 시간을 없애버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니, 나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지하철의 백색소음과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은 정말로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 때 내가 자주 한 것이 뭐였냐면 음악을 들으며 핸드폰으로 일기를 쓰거나, 간단한 과제를 하는 거였다.

 

집에 가는 방향의 지하철 안에서, 강변역을 넘어가는 구간의 지는 노을을 보며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순간은 여전히 통학이 끔찍했음에도 좋았다. 지는 햇빛이 하루의 피로를 한강물에 녹여내는 것 같았다.

 

거의 왕복 5시간에 달하는 대학교 통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최소한 하루의 6시간은 음악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편도로 세 시간은 조금 오래된 에어팟의 배터리가 다 닳아 충전시켜달라고 소리가 날 정도로 긴 시간이다. 아무튼 이 얘기들은 전부 내가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들어야 했는지에 관한 얘기다. 지금도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으니.

 

그리고 나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서는, 음 사실 전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일단 처음 다짐했던 것처럼 솔직해보겠다. 올드 락도 한국 인디밴드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그렇지만 항상 내 관심의 기저에 깔려있는 것은 밴드음악이었다. 이건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꾸준했다. 중학교 때 모두가 아이돌 한 팀쯤은 꼭 좋아하는 게 기본이었던 그 케이팝 춘추 전국시대에, 내가 첫 번째로 좋아했던 그룹도 밴드 아이돌이였으니까. 그 이후로 여러 밴드 음악들을 거치고 거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아시스를 만났다. 밴드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만날 수밖에 없는 예견된 순서인 것처럼 그랬다.

 

곡이 너무 많아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다 들으려면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하지만 사실 아무거나 랜덤 재생해도 그냥 좋다. 그 다른 세계로 통하는 듯한 목소리가 좋았다. 완벽한 기타 선율은 언젠가 꼭 일렉 기타를 배워보리라! 다짐하게 했다.

 

그들의 노래 제목 중 하나가 내 왼쪽 위 팔목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 Wonderwall,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그리고 일상에 기대어 쉴 수 있는 구원자 같은 존재. 그래서 나는 좋은 곳에 있을 때 오아시스의 음악을 자주 튼다. 좋아하는 친구와 드라이브를 할 때는 Champagne supernova를, 우울한 하루에는 Let there be love를, 오늘처럼 새벽까지 글을 쓰는 순간에는 Married with children을.


 


멜로가 체질 : 영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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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의적으로 연애 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비주류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연애라는 것에 대해 꽤 호의적인 입장이다. 그 이유는 물론 내 몇 안 되는 연애경험들이 좋았기 때문이겠다. 그런데 그 경험들을 토대로 내가 그래도 사랑은 해볼 만한 일이라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까닭은, 어이없게도 순전히 나 자신의 발전 때문이다.

 

나는 애초부터 누구에게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아니나, 내가 아끼는 관계에는 말 그대로 ‘과몰입’을 하는 편이다. 아주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상대와 깊은 관계일 때 상처를 받을 만한 상황에서는 그 상처가 굉장히 컸고, 행복한 상황에서는 과하게 행복했다. 소설 속에서 닳고 닳은 설레서 머리가 어지럽고, 속상해서 가슴이 저릿하다는 표현들이 그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말 그대로 사실이라는 걸 알았던 것도 이쯤이었다.

 

연애 전과 후를 비교해 봤을 때 내가 경험한 감정의 폭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늘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 번 열린 감정의 스펙트럼은 모든 분야에 적용이 가능했고, 나는 이 경험이 나를 쌓아올렸다는 것을 자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더 문학적이고 더 낭만적인 사람이 됐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관심 없던 로맨스 영화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이쯤부터다. 특히 무작정 완벽하게 행복한 사랑 이야기보다는 여러 방면에서 현실적인 것들을 더 좋아했다. 현실적인 상황 설정과 유치하기도 한 그래서 겪어봤을 법 한 인물의 감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유일하고도 보편적인 사랑의 성질이 수많은 사람들이 로맨스에 몰입하는 이유일 것이다.

 

내가 최근에 잘 봤던 작들은, 드라마 멜로가 체질,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다. 나는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집에서 혼자 볼 때 꼭 입으로 감탄사를 내뱉는 편인데, 두 작품 다 보는 중에 ‘와 좋다...’를 읊조렸다. 작품의 공통점은 역시 현실적인 부분이다. 동시에 주인공들은 현실의 나처럼 사랑에 ‘과몰입’한다.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상처는 더 아프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은 결정한다. 그럼에도 또 다시 사랑.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집중과 휴식 : 삶의 패턴


 

나는 무언가에 집중하려면 꼭 그럴만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예민한 기질이 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공간분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내 방이 오로지 휴식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집중력은 좋지만 집에 있을 때의 의지가 뛰어난 편은 아니라는 사실도 고백한다. 그래서 빈둥거리다가 일어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그게 집이 아닌 공간, 가령 카페 같은 곳이라면 조금 다르다. 카페는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공간 중 하나다. 틈만 나면 내 노트북 앞을 가로막는 우리 집 고양이가 없고, 내가 피곤하면 눈을 돌릴 침대도 없으며, 졸릴 때 한 모금 씩 홀짝일 ‘남이 타준’ 커피도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쁜 사람들. 나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특이하게도 마치 감시라도 당하는 것처럼 할 일을 한다. 그것도 몰두한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서 취미생활도 하고, 일도 한다. 과제도 하고, 기고할 글도 쓰고, 블로그에 일기도 쓴다. 집중할만한 모든 것들을 하는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방면에서 나에게 힘을 주는 요소는 산책! 요즘 코로나로 대중교통보다 차를 훨씬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산책의 횟수가 줄기는 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상황은 선선한 여름밤이다. 간간히 멈춰서 버스킹을 구경할 수 있는 한강도 좋고, 우리 동네가 한눈에 보이는 역 뒤 산책로도 좋다. 나 혼자여도 좋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여도 좋다.

 

고3 독서실에 다닐 때에는 꼭 막차보다 15분 정도 일찍 나와서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와 오늘 어떤 과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가끔은 그런 얘기를 안 하고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나눠들었다. 재수학원에서는 거의 매일을, 그곳에서 만난 제일 좋아하는 친구와 석식 시간에 운동장을 빙빙 돌았다. 수능 직전에도 예외는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남은 시간동안 종이 칠 때까지 그냥 같은 방향으로 계속 도는 거다. 그러면서 하루 동안 재밌었던 얘기들, 공부는 얼마나 하기 싫은지, 연애 상담, 나가면 뭘 할 건지 같은 사소한 얘기들을 했고, 하루 중에 제일 많이 웃었다. 이 시간이 없었으면 나는 그 시기를 못 버텼을 거라고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있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의 패턴은 만족스러울 만큼 열심히 살았던 시기를 돌아봤을 때 가장 선명하다. 온전한 집중과 휴식의 공존이다. 나에게 이 둘을 건강하게 충족시켜준 게 카페와 산책이었다.

 

코로나로 소중한 취미인 동시의 습관인 두 가지 것들이 다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집 앞 산책 정도는 여전히 가능하니 추운 겨울 혼자 하는 집 앞 산책과 어울리는 음악 하나를 두고 간다.

 

 

 

just here with you

in ther quiet

there's nothing more to life

and it's enough it's enough

to make me smile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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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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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 제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에디터님의 글을 읽으니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우효님의 enough도 잘 들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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