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당신의 속도는 어떤가요? [예능]

예능 <달리는 사이>,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
글 입력 2020.12.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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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하니(희연), 유아(시아), 청하, 츄(지우)

 

아이돌 멤버, 혹은 솔로 가수로 활동 중인 이들은 함께 '달리는 사이'다.

 

이들 다섯 명이 출연하는 MNET 예능 <달리는 사이>는 정말 '달리기'를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처음 프로그램 소개 글을 읽었을 땐, '이건 또 뭔가' 싶었다. 인적 드문 곳에서 캠핑하거나, 노래 경연을 하는, 소위 말해 잘나가는 요즘 예능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예능들이 '살아남는 것'을 강조하고 부추겼다면, <달리는 사이>는 대놓고 '쉬어가기'를 권장하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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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런 트립(run trip)을 위해, 다섯 명은 2박 3일 치 짐을 들고 충남 서산에서 만난다. 선미와 청하처럼 샵에서 익숙하게 보던 사이도, 청하와 유아처럼 연락하다가 애매하게 끊긴 사이도, 츄와 하니처럼 완전 처음 본 사이도 있다. 이들은 한데 모여 반가움과 어색함이 뒤섞인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다. 숙소에 짐을 대충 푼 이들은 달리기 경험이 풍부한 하니의 주도로 코스를 짜고 출발점으로 이동한다.

 

 

 

셋, 둘, 하나, 출발!


 

달리기 전, 준비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부상을 방지할 수 있도록 달리기 전후 충분히 스트레칭을 해주세요"


출연진들은 시작점에 서서 몸의 이곳저곳을 쭈욱 늘린다. 달리기는 온몸을 사용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한 곳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잘 안쓰던 근육까지 꼼꼼히 풀어주며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한다. 얼마간의 스트레칭 시간이 끝나면,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러닝 DJ 장윤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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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을 셀 동안 천천히 숨 고르기를 한 후 달려볼게요. 셋, 둘, 하나 출발!"

 

선미, 하니, 유아, 청하, 츄는 긴장과 설렘을 안고 숨을 고른다. 출발 신호가 들리자 한 명씩 발을 뗀다. 러닝 크루로서 첫 달리기가 시작된다.

 

출발선에 서고 발을 내디딘다. 달리기 전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은 사회에 나가기 전의 마음과도 같다. 하지만 사회에 발을 딛기 위해선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야 한다. 업종에 맞게 직무에 맞게 뇌를 주물러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나라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준비 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기는 해도, 필수인 것은 사실이다. 엑셀을 다룰 줄도 모르고 사무를 본다면 업무시간은 배로 늘어날 것이다. 결국 나중에라도 바쁜 시간을 쪼개 배워야 한다. 기업의 선택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것들은 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차분히 다져놓은 기술들은 필요할 때 발휘돼 몸과 마음의 부상을 방지해 주기도 한다.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잘 달리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차가운 바람 속 뜨거운 입김에 집중하기


  

러닝 크루 멤버들은 함께 또 따로 달린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끼고 붉게 물든 단풍을 보며, 서로의 호흡을 들으며 달린다.

 

유아는 "두근대는 심장으로 내가 실체가 있는 사람이구나"를, 청하는 "생각 없이 온전히 뛴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끼고, 하니는 "자신이 알려주고 싶었던 것을 애들도 느끼고 있었다"며 뿌듯해했다. 는 그런 "언니들 덕분에 계속 웃을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선미는 "제일 뒤에서 나대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힘을 모았다가 달리고. 일하고 있는 것도 매사에 그러고 있는 느낌이다"고 했다.

 

이들은 달리는 사이 자기 삶의 속도를 마주했다.

 

 

"첫 달리기의 설렘으로 여유롭게 뛰고 있나요, 아니면 숨이 조금씩 가빠오며 잘 도착할 수 있을지 두려워졌나요? 어떤 것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인생의 첫 달리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지금처럼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방황했었으니까요."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도 앞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을 거예요. 나를 향한 불면한 말들, 스스로를 옭아매는 걱정과 과도한 책임감. 무엇이 잘 달리고 있는 당신의 발을 붙잡는지 나를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유아는 항상 앞일을 걱정하며 하루를 망쳤다고 한다. 하지만 산길을 달릴 땐 커브 때문에 무엇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며 다음 길을 가서야 그 길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가서 보면 되잖아, 아무 생각하지 말자."

 

달리다 보면 분명 오르막을 만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오르막 길은 아무리 뛰어도 뛰어가는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좀 더 힘을 내야 한다. 달리기 코스에서 오르막길을 만난 멤버들에게 하니는 오르막길을 달릴 때 속도를 조금 낮추면 길게 뛸 수 있다고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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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을 레이스에 비유한다. 하지만 도착점이 있는 레이스와는 달리 인생에는 도착점이라는 것이 없다. 굳이 있다면 죽음일 것이다. 죽음 직전까지 무엇을 이뤘는지, 어떻게 달렸는지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다. 삶의 레이스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계절의 변화처럼 일상도 끝을 모른 채 반복한다. 계절에 따라 나무와 사람들이 옷을 바꿔입는 것이 그나마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선 환경에 구애받을 새도 없이 쉬지 않고 일하며 달려야 한다. 살기 위해 일하지만, 삶을 가득 채운 일은 음료도 없이 입에 한가득 넣은 크래커 같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을 땐 음료나 휴식이 필요하다.

 

잘 달리기 위해선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달리는 코스를 의식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천천히 달리다가 전력 질주하는 선미처럼, 꼿꼿하게 앞을 보고 꾸준한 속도로 달리는 하니처럼, 자신만의 호흡을 찾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 도저히 못 달리겠다 싶을 땐 쉬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열심히 달린 나, 너, 우리에게 보내는 박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달리기가 끝이 났다. 출연진들은 호흡을 가다듬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 자신이 느낀 것들을 나눈다. 하니는 "달릴 때 숨이 차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속도를 낮춘다. 그런 것들을 달리기를 하며 배웠는데 내 삶에도 적용하는 것 같다."고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는 감상을 전한다.



"저는 반대로 숨이 차는 데서 늘 멈췄던 것 같다. 근데 안 멈추고 조금 더 달렸더니 호흡이 편해졌다. 내가 더 달릴 수 있구나, 지금 이 시기가 숨이 차는 시기구나. 하지만 숨이 차도 괜찮다. 어차피 이 뒤에는 편안하게 달릴 수 있으니까"


 

유아의 감상은 하니와 정반대다. 하니가 한계를 넘어 몸이 망가질 때까지 달렸다면, 유아는 한계 근처에서 맴돌다가 포기해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는지는 상관없다. 달리기로 배울 수 있는 건 결국 '잘 사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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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힘을 쏟아낸 러닝 크루 멤버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근처 식당에서 백숙을 포장하고, 장을 봐 온 고기를 굽는다. 선미가 능숙하게 요리를 주도하고, 하니는 챙겨 온 술을 꺼낸다. 이들은 달리고 먹고 마시는 사이가 된다. 힘든 것도 잊고 늦은 저녁까지 즐겁게 담소를 나눈 멤버들은 깨끗이 씻고 노곤한 몸을 침대에 누인다. 곧바로 스르륵 잠에 들어, 다음 날 다시 달릴 체력을 비축한다.

 

알게 모르게 쉬는 건 사치이자 죄악이 됐다. 잠에 있어서는 특히 어림없다. 낮잠은 사치고 늦잠은 죄악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런 생각들이 주입돼 있다. 사회는 건강을 위해 충분한 수면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빌딩 숲 근처 높은 방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심 외곽에서 통근해야만 하는 상황, 근무 시간이 8시간을 넘겼어도 일을 끝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상황처럼 말이다.

 

쉬는 건 권리이자 의무다. '쉼 권리'를 지키기 위해선 색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쉴 용기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푹 쉬어보자. 느긋하게 낮잠도 자고, 산책도 하고, 새로운 취미도 만들어 보자. 달리면서 느낀 살아있는 감각과는 다른 살아있음이 찾아올 것이다.

 

 

 

살아있다는 감각



하루하루를 살며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내 기억으론 손에 꼽는다. 좀처럼 풀리지 않던 기타 연습(혹은 연주)이 갑자기 잘 되던 때,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하던 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났을 때, 원하던 기업으로 현장 실습을 갔을 때, 그리고 가장 최근엔 달렸을 때다.

 

올해 초, 2년 동안 살던 보금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곳과 도보 10분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산책할 수 있는 강과 가까워졌다는 게 특별했다. 하지만 아직 침대조차 들어오지 않은 곳에서 나는 텅 빈 일주일을 보냈다. 답답하고 지겨운 마음에 무작정 문을 열고 나갔다. 도심에 뜬금없이 펼쳐진 밭을 지나 강가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우연히 영어 선생님에게 배워 한 켠에 저장해뒀던 호흡법을 사용했다. 일명 '칙칙폭폭' 호흡법이었다. 선생님은 인생에서 놓지 말아야 할 것으로 독서, 어학 공부, 운동을 꼽았는데, 이 중 자신의 운동 일화를 소개하며 호흡법도 알려주셨다. 칙칙(코로 들이마시기 두 번), 폭폭(입으로 내쉬기 두 번)을 반복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유산소 운동 달리기는 잘만 호흡하면 잘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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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넘치는 시간과 호흡법만 믿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생각보다 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뛰었다. 나는 속도를 높여 사람들을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전력 질주로 에너지를 쏟아내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줄여 걷기 시작했다. 그사이 내가 앞질렀던 사람들이 다시 나를 앞질러 갔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그들은 그들만의 속도로 달렸다. 달리기에는 승리도 패배도 없었다.

 

내가 강렬하게 생의 감각을 느꼈을 땐, 숨이 차오르다 못해 토가 나올 것 같은 순간이었다. 달릴수록 숨이 모자라 갔다. '칙칙폭폭' 리듬도 완전히 깨지고, 짜증과 오기가 솟구쳤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내 모습에 짜증이 났고, 동시에 어떻게든 더 달리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숨쉬기와 팔다리 움직임에 집중했다.

 

팔과 다리는 기계적으로 흔들었다. 부족한 숨을 채우기 위해 거칠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잡념을 뿌리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작만 반복했다. 힘들다는 감각, 공기를 들이마시는 감각이 나를 가득 채웠다. 달리면서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평소 희미했던 나라는 존재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달리는 사이>의 취지와 출연진들의 마음에 쉽게 공감한 것 같다.

 

 

 

같은 풍경, 같은 호흡, 같은 속도


 

이제 다시 프로그램으로 돌아오자.


<달리는 사이>에서는 어떤 강요도 없다. 다만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속도를 점검해보라고 한다. 러닝 크루 멤버들은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호흡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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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면서 느꼈던 소중한 것들을

나누고 싶은 달리기 리더, 하니

 

상처가 많은 사람이지만

스스로 이겨내고 강해진 멋진 사람, 선미

 

멤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만큼,

자존감이 높아 보이는 유아

 

댄서에서 솔로 가수로 우뚝 서기까지

쉴 줄 모르고 달려왔던 청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비타민 막내, 지우

 

 

같은 풍경, 같은 호흡, 같은 속도로 달리는 러닝 크루 멤버들은 합이 잘 맞는다. 제작진이 이들에게 선물한 별 조각 목걸이처럼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사람들이다. 상대를 도와주려고 다가갔다가 오히려 배우고 돌아오기도 한다. 나이나 연차는 중요하지 않다.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응원하며 들어주기도 한다.

 

이 예능 프로그램은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예능이 아니다(물론 보고 있으면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어렵기도 하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은 출연진의 통찰이 깃든 생각과 그것을 증폭시켜주는 자막이다. 편집 방향은 달리기와 인생을 연결하는 쪽이다.

 

프로그램 특성상 자칫하면 가벼워 보일 수 있지만, <달리는 사이>는 본분을 잊지 않고 힘있게 끌고 간다. 추진력을 얻기 위해 땅을 발로 차는 순간부터 가쁜 호흡으로 뛰어가는 순간, 다시 속도를 늦추며 에너지를 모으는 순간을 빼놓지 않고 모두 조명한다. 그리고 항상 상기시키는 게 있다. 당신 곁에서 누군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4부작으로 구성된 MNET 예능 프로그램 <달리는 사이>는 2020년 12월 9일(수) 첫 방송을 했으며, 오는 12월 30일(수)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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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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