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간은 변해도 공간은 변하지 않는다 - 뮤지컬 딜쿠샤 [공연]

딜쿠샤 답사기와 뮤지컬 <딜쿠샤> 리뷰
글 입력 2023.12.1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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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딜쿠샤>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앨버트 테일러 가옥, ‘딜쿠샤’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다.

 

1923년에 지어지고 1924년에 완공되어 어느덧 백 살의 나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이 양옥은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을 뜻하는 단어 ‘딜쿠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백 년 동안, 한국의 근현대사가 스쳐 지나가는 동안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만큼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최근에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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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는 국립정동극장에서 그리 멀지 않아 공연을 보기 전 미리 사전 답사를 해볼 겸 딜쿠샤를 가보았다. 이렇듯 뮤지컬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바로 갈 수 있는 일이 흔치는 않아 꽤 설레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독립문역에서 내려 독립문도 잠깐 구경하고, 오르막길을 계속 올라 골목길로 들어서면, 계단 위로 붉은 벽돌의 양옥, 딜쿠샤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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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딜쿠샤의 주변을 둘러보고 외관을 구경한다. 내리막길 아래로 남산타워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고, 가옥 바로 옆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가을이 한참 지나 노란 은행잎들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쉽지만, 잠시나마 상상이라도 해본다.

 

딜쿠샤의 붉은 벽돌 아래를 잘 살펴보면 정초석이 보인다. ‘DILKUSHA 1923’이라는 큰 글씨 아래 ‘<시편> 127편 1절(PSALM CXXVII. I)’이 작게 적혀 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화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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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내부로 들어가면 복원된 거실의 모습과 테일러 가족의 흔적이 남은 물건들을 전시한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가정집이었던 만큼 신발도 벗고 들어가기 때문에, 정말 테일러 가족의 집을 방문한 듯한 기분도 든다.

 

창문 너머로는 서울의 전경과 은행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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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후 국립정동극장으로 향하여 뮤지컬 <딜쿠샤>를 관람하였다.

 

미리 딜쿠샤를 구경하고 와서인지, 딜쿠샤에 관한 묘사를 담은 대사가 나올 때마다 더욱 몰입하기에 수월했던 것 같다. 서울의 모습이 내다보이는, 언덕 위 거대한 은행나무와 함께 자리하고 있는 붉은 벽돌의 이층집. 그것이 딜쿠샤의 묘사이다.


뮤지컬 <딜쿠샤>는 이 붉은 벽돌의 집을 중심으로 하여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을 딜쿠샤에서 보냈던 ‘브루스 테일러’와 작중 현재까지도 딜쿠샤에 머무르고 있는 ‘금자’가 주고받는 편지 속 내용을 통해 전개된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얼마나 다사다난했는가?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를 지나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된 6·25전쟁, 그리고 그 뒤에도 수많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슴 속 사무치는 한과 괴로운 투쟁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이렇게 슬픈 시간 속에서, ‘기쁜 마음’을 뜻하던 ‘희망의 궁전’ 딜쿠샤는 그 이름 그대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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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동안 딜쿠샤는 한 가족에게 소중한 터전과 추억이 되었다.

 

그들은 은행나무가 잘 보이는 곳에 딜쿠샤를 짓고, 약 20년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다. 딜쿠샤 앞마당에서 뛰놀던 아이, 그 사람이 브루스 테일러였다. 브루스는 작중 현재, 노인이 되어 미국의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제 고향 딜쿠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고향’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개념이다. 왜 많은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본능적으로 그리워할까? 오죽하면 ‘향수병’이라는 단어도 있지 않은가.

 

시간은 지나치게 매정해서, 절대로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대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몇 년, 몇십 년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 찰나의 순간들로 한 번쯤은 다시 돌아가 보고 싶어 한다.

 

철없었던, 그렇지만 행복했던 순간들로. 이것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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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테일러 가족이 외국인추방령으로 딜쿠샤를 떠나고 해방 이후, 딜쿠샤에는 또 다른 거주민들이 들어온다. 그중 한 명이 금자다. 특히나 6.25 전쟁이 발발하며 피난민들이 언덕 위 딜쿠샤로 몸을 숨기고 그곳에서 살아갔다.

 

휴전된 후에도 총 11가구가 딜쿠샤에 거주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딜쿠샤에서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아나갔다. 비록 그 과정에서 딜쿠샤가 훼손되기도 하였지만, 그 소식을 들은 브루스는 오히려 딜쿠샤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궁전’이 되었다는 것에 기뻐한다.


그러던 중 딜쿠샤가 국가 소유지가 되며 거주민들은 이주 권고를 받는다. 각자 다른 이유로 딜쿠샤를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금자는 계속 이주 권고를 받던 중 딜쿠샤의 가치를 알게 된 다큐멘터리 감독의 제안으로 딜쿠샤가 국가등록문화재로 검토될 가능성을 암시하는 소식을 듣는다. 그 소식을 기뻐한 금자는 브루스가 딜쿠샤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제 생의 마지막을 딜쿠샤에서 보낼 준비를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삶이 딜쿠샤를 오갔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의 시작을, 누군가는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딜쿠샤도 불에 타거나 공간이 훼손되기도 하며 외관과 구조는 변했지만, 그럼에도 ‘희망의 궁전’이라는 의미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어도 감정과 추억은 남는다. 시간이 지나도 공간은 그대로 그곳에 존재한다.

 

딜쿠샤에서 지낸 수많은 사람의 수많은 추억을, 딜쿠샤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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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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