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처음으로 한국 고전영화를 보았다. [영화]

글 입력 2020.12.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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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나의 고전을 찾아서.



고전, 클래식. 이 이름이 달린 많은 것을 사랑했다. 고전미술, 음악, 소설, 그리고 영화. 이제는 진부하고 빛바랠만큼 오래되었는데 이상하게 이 오래된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다시 되새길수록 그 깊이를 더 해간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화양영화를 보러 가려고 했다. 상황도 상황인지라 결국 조금 미루어뒀지만 재개봉이라는 단어에 설렐 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재개봉 소식에 이 영화를 다시 조명하고 해석하는 것들을 흥미롭게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이야. 나의 고전에 한국이 있었나, 하고.


정말 많은 나라의 고전을 보고 들었지만 이상하게 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고전은 어쩐지 거리를 두게 되었다. 촌스럽거나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보다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함 때문이었다. 국어 시간에 교과서에서 숱하게 접한 한국소설들은 자기연민에 찌들어있는 무능력한 남성들, 자기희생으로 묵묵히 견디기만 하는 여성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야기의 관계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견디기 힘들었다. 읽다 보면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떤 장르는 접할 기회가 적어서, 어떤 장르는 거북함 때문에 한국고전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다시 오늘 나의 고민으로 돌아온다. 한국이 빠진 나의 고전에 대해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한국의 고전영화를 추천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국고전영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관심이 생겼다. 여러 영화를 둘러보다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가 여자 주인공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보고 싶어졌다.


이만희 감독의 '귀로'다.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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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는 한국전쟁으로 부상을 당해 하반신 마비로 성불구자가 된 남편과 그를 14년간 헌신적으로 돌봐온 지연, 그리고 그런 지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기자의 이야기다. 진부하고 뻔한 불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지연과 그녀가 보여준 결말에 있다.


지연의 남편인 최동우는 14년간 제대로 된 남편 역할을 해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지연이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놓아주지도 못해 괴로워한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은 연재 중인 소설뿐이다. 재미없는 구시대적인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면서도 쭉 이어나가고 싶은, 성불구자 남편과 그를 위해 헌신하는 부인에 대한 소설. 미안하기 때문에 옆에 있어달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동우의 소설에 담긴 마음을 지연도 알고 있다.

 

 
"그러나 선택은 내가 한 거예요. 전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제 걱정도 하지 말아주세요. 14년, 14년을 견뎌왔어요. 밤도 두렵지 않아요.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몸이 불편한 동우 대신 서울에 있는 신문사까지 원고를 전달하는 것은 지연의 몫이다. 희생적인 삶을 벗어나 유일하게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자유의 시간. 지연은 그곳에서 기자인 강욱을 만나게 된다. 강욱은 지연에게 첫눈에 반해 접근한다. 기차 시간에 늦은 어느 저녁, 둘은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 모습을 남편 동우의 여동생이 보게 된다. 여동생은 동우를 찾아가 지연을 위해 놓아주라고 말한다.


 
"이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겠죠. 두 사람 다 고통을 받겠죠. 그러나 지금 받는 고통보다는 덜 할거예요. 전 한 사람의 여자예요. 그리고 오빠의 동생이에요. 그리고 지금 전 오빠의 동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용기가 없어서 자신은 선택할 수 없다는 동우를 뒤로 하고, 여동생은 늦게 들어온 지연의 방을 찾아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 절대 나무라지 않을 것이고 모두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러니 이혼한 다음에 그 남자를 만나라고. 지연은 이불 위에 엎드려 펑펑 운다.


동우는 소설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한다. 소설 속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게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방식의 용기다. 그날 강욱도 지연의 집 앞을 찾아왔다. 지연은 그에게 매달린다.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하는 지연에게 강욱은 남편에게서 벗어나자고 하지만 그녀는 괴로워한다.


지연이 키우던 강아지를 남편이 죽인 날, 지연은 강욱을 만나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둘은 어디론가 떠나기로 결심했다. 떠나기 전 잠시 집에 들른 지연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른다. 화장하는 중간중간 화면이 뿌예지고 전화가 울린다. 곧 10시니 기차를 타러 오라는 강욱의 전화다. 나가겠다며 전화를 받고 있던 갑자기 지연은 침대에 쓰러져 정신을 잃어간다.

 

 
"곧 가요. 다음 차는 싫어요, 가요."
 
 
完(끝)
 



나를 구원해줘요


 

갑작스러운 지연의 죽음에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다고 한다. 정말로 그녀가 죽은 것인가? 감독은 지연은 확실하게 죽었다며 대답했다고 한다.


지연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반응이 내가 생각했던 불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과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소설을 담당하는 부장도,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강욱, 그의 여동생까지 당연히 그녀가 남편을 뒤로하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 맞다고 응원한다. 최동우의 헌신적인 부인을 그린 소설이 사회적으로 고리타분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인의 부정을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최동우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지연은 다르다. 불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는 괜찮다고 자기가 남편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흔들리긴 하지만 그녀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 나는 지연이 자신이 최동우를 선택했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믿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닮은 소설의 결말을 궁금해고, 자유로워보이는 강욱에게 끌리지만 자신의 상황을 동정 받고 싶지 않다.


강욱과 비 오는 밤 나눈 대화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녀가 원하는 비극의 구원은 남편에게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는 것을. 강욱은 지연의 구원자가 될 수 없었다. 이 비극은 지연이 자신의 선택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도록 옭아매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을 구원하는 길은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당신을 뺏어오는 겁니다."

"나를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나를 구원해줘요. 나를 도와줘요."

"당신은 당신의 남편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은 당신의 비극으로부터 구제받을...."

(지연은 소리를 지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인천의 집과 서울의 신문사를 오가는 길 사이에 언덕 위에 있는 교회가 두 번 등장한다. 밑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지연의 내면을 상징하는 시퀀스다. 처음에 지연은 당당하게 한쪽 길을 선택해 내려간다. 하지만 두 번째 씬에서 갈림길에 서 있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교회가 있는 언덕을 바라본다. 그곳에 강욱이 있었다. 그녀는 강욱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인냥 그에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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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리 지연은 마지막으로 와 결국 강욱을 구원자로 선택한다. 많은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지연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연 대신 집안을 뛰놀던 그녀의 강아지는 지연의 자유로움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선택하는 존재.

 

그러나 최동우는 지연을 놓아주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었지만 그녀의 강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남편을 배신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을 잃고 싶지 않았던 지연이 두 사람 중 하나에 기대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이다. 어쩌면 당시 여성이 느꼈을 시대적인 한계를 담은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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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욱에게 가 남편으로부터 도망치기로 한 마지막 시퀀스. 거울을 보며 강욱의 여자로서 화장을 하는 자신의 얼굴을 지켜보는 지연의 시야가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강욱에게서 전화가 오고 가겠다고, 곧 가겠다고 대답하지만 그녀의 몸은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죽는다. 죽기 전의 그녀의 모습은 황홀해 보이기도 한다. 죽은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살려고 한 자신을 잃었을 때, 상징적인 죽음이 찾아왔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이 결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상황 속에 허물어졌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

 

시놉시스만 들었을 때만 해도 주체적인 여자 주인공의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캐릭터였다. 물론 지연은 실패했지만 말이다. 어디에도 아닌 자신에게 기대려던 지연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영화의 미장센과 연출도 굉장히 뛰어난 부분이 많았기에 이 영화를 만든 이만희 감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생겼다. 한국영화는 납작한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좁은 우물만 보고 있었던 나에게 퐁당 돌을 던져준 시간이기도 했다.

 

고전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외면해왔던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외국의 이야기만 선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라에서부터 좋은 것을 되짚어보자고. 이제 처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거대한 한국고전의 바다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으로 크리스마스의 연휴를 시작해볼까 한다.

 

 

[최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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