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60개의 죽음에 대한 에세이 - 안녕은 단정하게

글 입력 2020.12.2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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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불을 끄고 누으면 눈이 어둠에 적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다.

 

빛도 소리도 없는 그 잠깐 동안 종종 죽음에 대한 사념들이 불쑥 머릿속으로 뛰어들곤 한다. 나이가 든 것 같다고, 몸도 마음도 예전같지 않다던 엄마의 말이 어둠 속에서 들려오고, 누군가와 영영 헤어질 날이 그려진다. 모든 것이 끝에 다다라서는 이렇게 어둠 속에 묻히리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잠을 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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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단정하게>는 죽음에 대한 책이다. 모두가 경험하지만 아무도 그 과정과 결과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소재다.

 

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이나 과학 분야에서도 죽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되고 또 해석된다. 하지만 그러한 탐구의 대상이기 이전에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의 영역에 속해 있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서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매리언 위닉은 이 책에서 사적인 경험으로서의 60개의 죽음을 '부고 에세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형식으로 담았다.

 

어머니, 한 다리 건너 알았던 지인, 30년 전 직장 상사, 좋아하던 연예인... 심지어 기르던 물고기도 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적, 간접적으로 알았던 존재들의 삶과 죽음을 짤막한 글로 풀어낸다.
 
머리말에서 작가는 최대한 죽은 이들의 삶을 왜곡 없이 다루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죽은 이들은 책의 내용에 대해 변명하거나 항의하지 못하므로 본명은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각 꼭지의 제목이 '알파 /2008년 사망' , '나의 조언자 /2017년 사망'과 같은 형태인 이유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8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친구의 딸 결혼식장에 가서 한자리에 모여 있는 어여쁜 남매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 없는 이 세상이 어떻게 지속될지, 이보다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던 순간은 없었다. 131쪽
 
 

바다 건너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던 사람들의 별칭과 사망 연도, 그들에게 얽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공동묘지를 거닐거나 거대한 납골당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책을 읽으며 의외로 죽음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가 미국인임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나이가 들어 죽는 경우에는 병사나 자연사가 대부분이고, 비교적 젊은 때 죽은 이들은 사고 아니면 약물 중독으로 인한 죽음이 많았다. '부고 에세이'라고 내세운 만큼 이 책에서 사람들의 죽음은 그다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이나 과정이 아니라 다 지나간 후의 풍경이여서일까, 글들은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다.

 

죽음을 내세움으로써 주목하게 되는 건 오히려 죽은 이들의 삶이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건 죽은 사람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오래 전 나누었던 시덥잖은 말 몇 마디, 같이 먹었던 한 끼 식사. 누군가의 삶은 그런 걸로 기억된다.

 

저자가 쓴 부고 에세이는 이처럼 죽은 사람들 각각이 저자에게 남긴 작은 기억들을 엮은 것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삶은 여러 사람들의 기억의 일부가 된다. 시간이 흘러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 역시 죽으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의 삶은 여러 사람을 경유하며 수없이 많이 쪼개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이루는 것이 물리적인 신체와 그 사람이 살아온 삶 총체라면 사람은 죽기는 하지만 사라지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 속에 묻힌 몸은 썩고 분해되어 흙의 일부가 되고, 삶은 작디 작게 쪼개져 살아 있는 누군가의 일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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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가장 가까웠을 사람인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한 이 책은 수많은 이들의 삶과 죽음을 거쳐 '삶'이라는 제목의 61번째 꼭지와 함께 마무리된다. 유일하게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은 이 꼭지는 앞으로 죽음을 맞을 모든 사람, 그 중에서도 작가인 매리언 위닉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묘지를 거닐며 언젠가 거기에 묻힐 자기 자신을 떠올린다.


앞선 60개의 꼭지들에서는 모두 죽은 사람(혹은 존재)이 등장했기 때문에, 마지막 꼭지를 읽으면 갑자기 저자가 살아있다는 게 어색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삶 전체가 그러할 것이다.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이야말로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상태고, 작디 작은 조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태는 아닐까. 책 처음에 나오던, 사람들은 죽고 난 뒤 그대로 머문다던 인용구는 책 마지막에 가서 비로소 더 와닿았다.

 

생명체인 이상 죽음은 언제나 낯설고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견딜 수 있도록 망각이라는 능력을 갖고 태어났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매 순간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그것만이 역설적이게도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종종 책 제목을 '안녕은 다정하게'로 헷갈려서 잘못 말하곤 했다. 지금 보니 그 제목도 꽤 잘 어울린다. 언젠가 반드시 오고 말 그 날에 이 책의 제목처럼 단정하게, 또 다정하게 안녕을 말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불을 끄고 난 직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어둠 속에서도 사물이 눈에 익는다. 죽음과 삶은 빛과 어둠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보다 당장 내일 아침에 확실하게 다가올 만남을 생각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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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은 단정하게

볼티모어 부고 에세이

 

 

지은이

매리언 위닉 

 

옮긴이

박성혜

 

출판사

구픽

 

출간일

2020년 11월 30일

 

가격

12,000원

 

ISBN 

979-11-87886-57-0 (03840)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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