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천국으로 가는 계단, 예술가의 이상이 완성되는 순간 [공연예술]

넷플릭스 다큐 차이 구어 치앙의 예술세계
글 입력 2020.12.03 21: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필자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빛이다. 원하는 빛을 모아서 지속시킬 수 있다면, 세상의 진귀한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들의 가치는 급하락할 것이다. 빛은 고정되지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며, 다른 채도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 일시성과 허망함은 역설적이게도 빛의 가치를 높인다.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붙잡을 수 없는 빛이 지닌 순간은 스쳐 지나가 버리는 아름다운 시간과 추억을 닮았다.

 

폭죽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빛이다. 내게 폭죽으로 하는 불꽃놀이는 큰 가치가 없었다. 어떤 행사 전후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용도로 쓰이는 하나의 절차에 불과했다. 정형화된 단계와 모양, 종류가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단순하고, 신선함이 없었다.

 

 

[꾸미기][크기변환][포맷변환]AAAABYPICNgWEd0YDiNqSRjKvRPoNLksnpQJ7CMB0UCMXIvdcMbF5SE1RSjV9nBiNnuxxeTJaTh3LiQLQvKqo5d8Gyje4Vb2[1].jpg

 

 

차이 구어 치앙의 폭죽 예술은 나의 고정 관념을 타파했다. 그의 불꽃놀이 작품들은 미와 파괴가 공존한다. 응집된 폭발성의 표출과 아슬아슬한 불꽃의 위험성이 관람자에게 스릴과 쾌감을 준다. 다큐는 추억, 위안, 환각 2, 9번째 물결, 하룻밤 불장난 등의 작품들을 안내한다. 건축, 조형물, 하늘을 배경삼아 시연되는 예술은 개방성과 신선함을 선사한다. 혼란, 희망, 좌절, 실패 등 다양한 색의 배합과 형상들은 색채를 띤 감정을 보여준다. <추억>은 꽃이 피어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정열적인 빛의 향연을 표현한 <위안> 은 생명의 태동을 보는 듯한 역동성을 전달했다.

 

최대의 폭죽 예술 프로젝트는 <천국으로 가는 길> 이었다. 지구와 우주를 잇는 사다리를 세우고 싶다는 소망에서 시작된 대규모 작업은 여러 번 실패를 겪었다. 1994년의 첫 번째 시도는 기상 악화로 취소되었다. 2001년의 두 번째 시도는 9.11 테러로 취소되었다. 2012년 세 번째 시도는 산불 위험으로 무산되었다. 세 번의 실패를 겪고, 2015년 캄보디아 취안 저우에서 다시 작업을 진행한다.

 

작품은 오직 그의 할머니를 위해 만들어졌다. 할머니는 그에게 잃어버린 고향과, 탄압받는 전통, 그리움을 의미했다. 이 작업은 예술적인 명성, 돈, 사람들의 인기를 위한 작업이 아니었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만드는 것은 돈을 태우는 것과 같았다. 중국 공산당의 개입을 막기 위해 모든 걸 비밀리에 진행했으므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작품도 아니었다. 오직 100세가 된, 죽음을 목전에 둔 그의 할머니의 편안한 임종을 위한 것이었다.

 

폭죽 전문가, 안전 관리사, 설치 전문가 등 각국에서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모였다. 지역 주민들도 함께 작업에 참여했다. 폭죽 작업이 설치되는 장면들은 공사장을 연상케 했다. 정교한 과학 실험처럼 보이기도 했다. 세밀한 관심이 필요했고 위험을 동반했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갈 무렵, 차이 구어 치앙은 폭죽을 점화시킨다. 캄캄한 밤의 하늘에 노란색 불빛들이 공중의 사다리를 타면서 올라갔다. 흑색 종이에 노란 사다리 길이 생겼다. 이글거리는 불꽃의 아름다움, 톡톡 튀는 노란색 불빛이 넋을 놓게 만들었다. 인간의 상상력과 가능성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치앙의 할머니는 건강이 쇠약해져, 캄보디아에서 직접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없었다. 영상 통화를 통해 할머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본다.

 

 

131.jpg


 

치앙은 휴대폰 너머의 할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보셨어요? 할머니 손주 대단하죠? 정말 멋있어요. 이제 주무셔도 돼요!’

 

그도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할머니를 향한 그의 말들은 소년의 말 같았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사랑이 담긴 그의 마음이 아름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그라 드는 불빛들의 잔재는 긴 여운을 남겼다. 21년 전 꿈이였던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2015년 취안 저우에서 성공했다. 할머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다.

  

‘중국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런데 자기 예술을 일관성 있게 끌고 나가면서 또 너무 벗어나면 안 돼요. 당국과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죠.’

 

넷플릭스의 예술 영화들 중, 이 영화를 콕 찝어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차이 구어 치앙이 중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개성 있는 세계관을 형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인식의 환기를 일으키는 예술가는 중국의 탄압적, 통제적, 조직적인 풍토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중국을 벗어나기 위해 일본에서 살았고, 뉴욕으로 영구 이주했다.

 

 

141.jpg


 

그가 9살 때 문화혁명이 일어났다. ‘중국을 현대화 하려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기존의 것들을 모두 파괴했다. 역사적인 유물, 건축물이 파괴되었으며 기존의 문화나 부에 관련이 있는 자는 모두 축출당했다. 기존의 권위와 질서는 전복되었고, 젊은이들은, 중국인들은 파괴적인 이상주의에 파묻혔다. 피아니스트는 손가락이 부러졌고, 전통 극장 공연 등의 문화 예술활동은 모두 금지되었다. 광기의 시대에서 모든 중국인들은 상처 입었다.

 

탄압과 광기의 잔혹한 역사를 경험한치앙은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국가 행사를 담당하게 된다. 2008년 베이징 개막식을 연출했고, 다큐 영상에서는 apec 개막식을 연출하게 된다. 다큐는 행사 주관을 위한 베이징 공산당 회의를 잠깐 비춘다. 회의 분위기는 침체 되었다. 그들은 치앙의 아이디어를 전혀 수용할 생각이 없었다. 담당자의 짧은 말을 통해 공산주의를 경험할 수 있었다.

 

‘혁신 좋죠,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안전성과 안정성도 똑같이 중요해요. 부서에서 기각하면 수긍하는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당신을 도우려는 겁니다. 전 실용주의자예요. 마오쩌둥께 배워서 실용적이고 현실적이 됐죠.’

 

허탈한 웃음과 힐난하는 눈빛은 나의 표정과 일치했다. 미국을 쫓는 중국이 정말 1위의 국가가 된다면, 인류의 역사가 축적해 온 모든 것들 것 바스라 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처럼.

 

 

1311.jpg


 

‘시간이 흐를수록 저 자신과 타협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굉장히 화가 나요.’

 

Apec의 개막식은 그의 예술성이 없는 일반적인 불꽃 축제 였다. 그가 구상한 예술적 콘셉트는 정부에 의해 없어졌다.예술과 정치는 언뜻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긴밀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정치는 어렵다. 복잡한 이념과 정책을 사람들에게 홍보하고, 세뇌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쉽고 직접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그 장치가 바로 예술이다. 예술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며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또 하나의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예술가는 더 큰 권력에 희생될 수 있고, 자신의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권력을 깨닫고, 이를 이용하고자 한 예술가 중 한 명이 조지 오웰이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 라는 에세이집에서 이렇게 말한다.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의 경지에 올려 놓겠다.’

 

현대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공산주의인 중국은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을 것 같은 국가이다. 자유가 없고, 인권이 열악하다. 만연한 범죄와 열악한 치안은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당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숙청되거나 탄압받는다. 심각한 문제점들은 중국의 막강한 권력과 감시 속에 은폐되고, 묻혀 있다. 치앙은 과연 조지 오웰처럼, 자신이 가진 예술적 권력을 휘두르고 이를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그의 행보와, 영향력이 기대된다. 

 

 

[꾸미기][크기변환][포맷변환]R720x0[1].jpg

 

 

[박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