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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동물’은 동물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기 동물’과 ‘살아있는 동물’ 간의 차이가 작품 속 동물의 의미를 추측해 볼 수 있게 한다.
책 속 세계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일종의 힘의 상징이다. 반대로 전기로 흉내 낸 동물을 가진 것은 큰 수치이며 숨겨야 할 일이다. 이러한 동물에 대한 인식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실제로 살아있는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가치 있지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들은 필요에 의해 죽여 마땅한, 아니 죽인다는 표현도 아까워 ‘퇴역’ 시켜버려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곳에서는 아예 '전기 인간'인 안드로이드(앤디)를 잡는 '앤디 사냥꾼'도 존재한다.
![[크기변환]다운로드 (1) 양.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011/20201118234539_zbphxtcv.jpg)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유능한 앤디 사냥꾼 '데카드'는 안드로이드들과 사랑에 빠지거나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등 그간 가졌던 신념을 무너뜨리고 만다. 결정적으로 데카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작품의 맨 마지막, ‘전기 두꺼비’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대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작품에서는 동물과 인간을 대비시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작품에서는 데카드가 여성형 안드로이드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 당혹스러워 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이런 발상을 영화화 한 작품이 있다.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크기변환]다운로드 (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011/20201118233849_xoftclfo.jpg)
속도감 있고 빠르게 읽히는 흥미진진한 책이었으나 결코 그 내용이 던지는 질문들이 가볍지 않았다.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윤리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것인지, 또 로봇과의 사랑이 가능하다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단순히 미래의 이야기를 예측해서 쓴 공상과학 소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상당히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제목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책에서는 데카드가 ‘안드로이드도 꿈을 꿀까?’하고 의문을 갖는 장면이 있다. 내가 생각한 대답은 ‘전기 양이 살아있는 양과 다르지 않게 여겨지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입장에선 전기 양이든 앤디든 윤리적으로 고려되는 대상으로 여겨지길 꿈꿔왔을 것이다.
기계와의 공존이 불가피해지는 세상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1968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앞으로 '기계'와 '윤리' 혹은 '사랑'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단어들이 깊이 숙고되어야 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기계에 대해 생각하며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고 ai와 소통할 날이 언젠가 오기를 꿈 꿔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