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고 글을 쓰는 것, 그거면 끝이다.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도서]

우리를 '외설' 속에 그냥 놔두고 신문들이나 급습하라.
글 입력 2020.11.1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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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공민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페이지: 400쪽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내가 이 책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늘 깔끔히 정돈된 글만 읽어왔던 나에게 이리 거친 문체의 글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늘 논란의 중심이었던 20세기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가 그의 별명인 것을 보면 그의 글이 어떨지 아주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 소개를 보면 “부코스키를 더 깊게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작품이며, 부코스키를 처음 읽는다면 단번에 그의 목소리에 빠져들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전자는 확실히 맞다. 책을 읽고 나니 어떤 사람인지는 아주 잘 알 것 같다. 그러나 후자는, 아쉽지만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빠져들기에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고, 혐오적이었으며 어려웠다.


사실 미리 책 속의 구절 몇 개를 보았을 때부터 나와는 맞지 않는 책이겠구나 싶어 읽기를 고민했으나 대체 왜 독자들이 부코스키에게 열광하는지 궁금했기에 며칠을 고민하다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느꼈던 생각들 모두 책을 다 읽어보고 해도 늦지 않으니까.

 

 

예술적인 대중은 항상 외설적이다. 작가의 작품보다 삶의 방식을 더 찬양할 테니까. 대중은 특히 미친 사람, 살인자, 중독자, 자살자, 굶주림을 선호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바로 그 작가를 알코올 중독, 정신 이상, 마약 중독으로 이끄는 장본인이다.

 

- p.98

 

 

 

열정적인 예술가, 음탕한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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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는 스물네 살 때 잡지에 첫 단편을 발표한 이후 창고와 공장을 전전하다 우연히 취직한 우체국에서 우편 분류 및 배달 직원으로 12년간 일하며 시를 쓴다. 작품에도 이러한 그의 상황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이후 부코스키는 전업으로 글을 쓰면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평생 60여 권의 소설, 시집, 산문집 등을 출간한다. 그가 쓴 작품이 너무도 많아 생전에 다 출간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혼란이 오기 시작한다. 우선 이게 에세이일까, 시일까, 소설일까? 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를 구분 짓는 걸 포기하고 나면 두 번째 물음이 떠오른다. 이건 실화일까 허구일까.

 

부코스키의 말에 따르면 ‘일부는’ 픽션이라고 하는데 사실 어디가 사실이고 어디가 거짓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글이 그의 인생 같다.


 

다만 우리를 내버려 두라 말하고 싶다. 멋진 여자, 성, 새 차, TV, 전쟁, 스테이크, 45달러짜리 구두, 4000달러 장례식, 1.6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선인장 정원, 반 고흐 원작을 다 가져가도 괜찮으니 우리를 ‘외설’ 속에 그냥 놔두고 신문들이나 급습하라.

 

- p.115

 

 

 

알코올로 만든 종이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선가 술 향기가 잔뜩 풍기는 것 같다. 그만큼 부코스키는 술, 여자, 도박에 한껏 취해 있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행위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글쓰기를 본인의 사명이자 삶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글 쓰는 것을 제외하면 충분히 망나니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상황, 감정 하나하나를 솔직하게 글로 풀어냈다. 누군가에게는 뮤즈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미간을 찌푸리는 존재로 여겨지며 말이다.

 

아울러 그는 본인을 표현하는 데에만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찰스 부코스키는 소위 말하는 권력자에게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노동 착취에 대한 얘기를 가감 없이 하기도, 정치판을 비판하기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학가들을 MSG 하나 없이 평가하기도 한다.

 

 


"Don’t Try(애쓰지 마라)."


 

몇 번을 반복해 읽어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혐오로 물든 부분도 많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최소 내가 아는 몇 없는 작가 중에서는 부코스키처럼 본인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가는 없을 거라는 것이다. 나 또한 그처럼 솔직히 말하면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내가 다시 그의 작품을 찾아보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읽는 동안 아주 신선한 경험이기는 했다.


“Don’t Try(애쓰지 마라).”

 

그의 묘비명이다. 이를 보고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사람 쿨한데?” 싶었고, 책을 읽고 나서는 “부코스키가 끝까지 부코스키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애를 쓰며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죽고 나서야 애쓰지 말라는 말을 하다니 정말 그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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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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