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보건교사 안은영'과 교사라는 직업인

글 입력 2020.11.1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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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선생님과 거리를 두는 학생이었다.

 

선생님께 감정적으로 지지받았던 기억이 초등학교 이후로는 없고, 선생님은 그저 시험에 나올 지식을 전달하는 전달자, 혹은 입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나를 증명할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남길 권력이 있는 사람 정도였다. 선생님께서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책을 읽었지만,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따르고 싶었던 선생님은 6년간 중, 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다.


한참 학교 2013, 드림하이 등 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되던 때가 있었다. 드라마 속 인물들에 몰입하며, 나의 학교생활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나는 철저한 엑스트라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들은 나보다도 더 분량이 적은 엑스트라였다. 사제간의 권력관계보다도 학급 내 학생들의 권력관계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웹툰 속에서도 선생님들은 늘 검은 형체로만 등장할 뿐,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직업으로서 선생님을 인지하게 된 건 한참 대학 원서를 넣던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사범대나 교대에 지원하는 친구들을 보고, 나의 친구들이 교사가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과외를 하기도 하고, 교육 봉사나 교생 실습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조금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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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소설과 이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학생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제관계와 교사 간의 관계도 충분히 다루는 흥미로운 학원물이다.

 

보건교사 안은영에게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장 또는 귀신이 젤리의 형태로 보이는 초능력이 있다. 안은영은 젤리가 붙어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학생을 구하며, 젤리를 이용해 아이들을 해치려 하는 악의 무리와 학교의 비밀을 파헤친다.

 

 

“몇 년 전까지는 대학 병원에 있었다. 전문 퇴마사로 살지 않는 이상 돈을 벌어야 했고, 커트라인 밑이었는데도 간호대에 철썩 붙어서 주욱 병원에 있었다. 병원도 학교도 드글드글하기로는 매한가지였다. 왜 하필 간호사를 직업으로 골랐을까. 아니, 아니다. 해가 갈수록 더 느끼는 점이지만 사람이 직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직업이 사람을 고르는 것 같다. 사명 같은 단어를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수긍하고 받아들였다기보단 수월한 인생을 사는 걸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게 맞겠다.”

 

보건교사 안은영, 정세랑, p. 20-21

 

 

많은 이들이 정세랑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이 매력적인 이유로 ‘직업윤리’를 꼽는다. 각 인물의 독특한 직업이 꽤 상세하게 기술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은 자신만의 능력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조금씩 구한다. 드라마에서는 상세히 다뤄지지 않았지만,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안은영이 학교로 오기 전,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과거가 나온다. 이를 통해 독자는 그가 자의로든 타의로든 늘 세계를 구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에는 반복적으로 이런 안은영의 성실함을 무모하다며 꼬집는 인물이 나온다. 악한 행동으로 얼마든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도 박봉인 교사이기를 고집하고 초능력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 안은영은 시청자도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심지어는 그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젤리 폭격 앞에서 왜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한탄하고, 포기하려는 모습까지 보인다.

 

교사에게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 이상으로 다른 직업인에 비해 높은 도덕성이나 완벽에 가까운 인간성,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태도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꼭 학교 교사가 아니더라도 10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면 ‘천직’인 사람만이 훌륭한 직업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나 자신이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최근 권력을 이용해 학생들을 기만하고 이용한 사례를 보며 느낀 바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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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영은 분명 평균 이상의 공감능력과 도덕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학생들을 돕는 이유는 그가 천사처럼 착하거나 학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는 학교에 떠다니는 ‘애로애로’ 젤리를 징그럽고 귀찮다는 듯이 바라보며 터트리고, 욕설을 섞어 빨리 졸업해버리라며 소리치기도 한다. 다만 그는 교사로서 자신의 역할과 능력을 분명히 인지하고, 최소한의 윤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또한, 조금 더 살만한 곳을 만들기 위해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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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도 무작정 도움을 받는 존재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학교라는 작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독립적인 유기체로 등장하며 능동적으로 안은영을 돕기도 한다. 또 교사로 대표되는 어른들과는 대조적으로, 다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인생을 바꾼 은사님, 힘들 때 큰 도움을 준 선생님의 이야기를 접할 때면 ‘나는 참 선생님 복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나는 선생님이 전능하다고 생각하며,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으면서 큰 도움을 받길 바랐다.

 

선생님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다른 직업인이 그렇듯 성격도, 잘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르고, 각자의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날뛰는 중, 고등학생들을 성인군자처럼 보살피는 선생님이 계셨는가 하면, 안은영이 그랬듯, 분명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관찰하고 도움을 준 선생님들도 계셨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나도 나만의 능력으로 작은 세계를 구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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