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Sinn)의 혁명] 003. Folklore: 테일러 스위프트, 인간적 세계관의 완성 ②

Folklore, 두 번째 이야기
글 입력 2020.09.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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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활자 중독


   

활자 중독에 걸렸다. 개강 첫 주부터 쓸 게 많고, 읽을 게 많다. 일단 기사를 써야 한다. 규모가 꽤 크다. A4로 두 장을 조금 넘기는 분량인데도, 전국 대학의 현황을 소개해야 하는 기사여서다. 총학생회와 국회의원, 연구소 등에 메일과 전화 폭탄을 날렸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미래에 쓸 에너지를 대출한 기분이다. 신경이 한껏 곤두섰다. 이런 날은 위험하다. 무언가 잘 진행되지 않거나, 삐끗하는 부분이 생길 경우 괜한 감정이 솟구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대개 ‘나’라는 자아를 비극화하는 방향으로 증폭되곤 한다.

 

사탕이 달다. 단맛에 멍을 때리다가 무심코 알맹이를 깨물어, 형태를 부쉈다. 그제야 사탕을 먹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동시에 속이 더부룩해진다. 원인은 만성 강박에 있다. 인터뷰지 회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조급함만 더해진다. 조급함을 그냥 내버려두면 짜증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김영하 작가가 그렇게 말했던가, 짜증이라는 단어에는 감정을 단순화시키는 맹점이 존재한다고 했다.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묘사하길 거부하고, 하나의 그릇에 응축하는 느낌이라고. 지금의 내가 딱 그런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테일러의 노래를 듣고 있다.

 

 

 

1. 둘, ‘Betty’


 

바람을 피우던 와중, 원래 연인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혼자 드라마 찍는 남성의 시점을 담은 노래다. 냉소적인 설명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저번 편에서도 말했듯, ‘Cardigan’ - ‘Betty’ - ‘August’로 이어지는 세 곡은 삼각관계에 놓인 두 여자와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두 번째 노래의 제목 ‘Betty’는 ‘Cardigan’에서 떠나간 연인을 보며 씁쓸한 감정을 토로했던 한 여성의 이름을 뜻한다.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읊조리는 James의 속내가 전개된다. 어린 날의 치기였다는 알량한 말들이 흘러나온다.

 

 

I was walking home on broken cobblestones

부서진 돌길 위를 걸어 집으로 가면서

Just thinking of you when she pulled up like

나는 너만을 생각하고 있었어

A figment of my worst intentions

내가 했던 최악의 상상들처럼 그 여자애가 차를 멈췄을 때 말이야

She said “James, get in, let’s drive”

“제임스, 어서 타, 드라이브 하러 가자”라고 그녀가 말했고

Those days turned into nights

그 여름날들은 밤까지 이어지곤 했지

Slept next to her, but

그녀의 옆에서 잠들었지만,

I dreamt of you all summer long

여름 내내 나는 너만을 꿈꿨어

 

 

우리 사회에선 이런 상황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관용어구가 하나 있다. ‘있을 때 잘 하지.’ 연인관계에만 국한되는 어구는 아니다. 그렇지만 쓰임새의 빈도가 어떤 영역에서 높은지를 생각해보면, 성애적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무래도 지배적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그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익숙함이 문제라고 말한다. 관계에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할 때, 상대방에게서 무언가를 더 찾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상대와 보내는 시간을 포함해 그 사람의 모든 특질까지 ‘뻔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얘기다. 뻔해진다는 건 지루함을 유발하고, 지루함은 곧 익숙함에 지쳐 질리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비일상이 곧 일상이 되는 순간 한쪽은 따분함을 느낀다. 또 다른 타인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도, 따분함에서 벗어나기 위함일 테다. 그렇게 일상이 돼 버린 관계의 파편을 떼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파편을 떼 낸 후에, 때때로 당사자는 후회감을 느끼곤 한다. 비일상의 영역으로 상대방을 몰아낸 후에야, 그간 일상의 일부로 편입됐던 그와의 시간이 사실 불완전한 비일상이었음을 깨닫는 거다. 재미있는 일이다. 애당초 비일상의 영역에 서 있던 상대방의 존재를, 무엇을 근거로 일상에 편입시켰던 건가. 우리는 보통 일상과 비일상을 나눈 후, 전자를 후자보다 우선시한다. 안정성에 높은 가치를 매겨서다. 일상은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요소들로 만들어진 삶이다. ‘나’를 세계에 뿌리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는 기반인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본래 싫증을 잘 내고, 욕망에 솔직한 존재라 그런 일상에 권태를 느낀다.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일상에 놓인 타인을 일상의 영역으로 함부로 끌어들이려 한다.

 

끌어들여진 상대방은 자신의 일상에서 객체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그 또는 그녀가 통제 가능한 일상의 영역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으로 포장된다. 싫증이 나기 시작하면 추방을 고민한다. 일상적인 것으로 돼 버린 타인을 다시 비일상으로 내쫓을 궁리를 하는 것이다. 이때 누군가는 잠시 망설인다. 미약하게나마 진정한 타인으로서 상대방이 간직하고 있는 낯섦을 체감하고 있어서다.

 

계륵이라는 단어가 이 상황에 적합하다. 남에게 주긴 아깝고, 내가 가지고 있긴 성가신 상태. 이별을 고민하거나 그와 유사한 관계적 단절을 꾀하는 사람에게 이 단계는 고문에 가깝다.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상대방과의 관계를 ‘질질’ 끌고만 가게 된다. 애매한 감정은 미온적인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 상태에서 외부인이 일상의 경계를 기웃거릴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충동이 관여하면 기존 사람과의 관계는 애매한 파국으로 치닫는다. 상대방이 이를 알아차릴 경우 ‘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비일상에 한 발 가까워진 상대방을 바라보며 그제서야 후회를 시작한다.

 

제임스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베티와 함께했던 “일상화된” 시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분리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입에서는 모순된 말만 나오게 된다. “사실은 그 애를 만나면서도 너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분리하고 싶었던 일상적인 베티를 명목으로 그녀와의 관계를 원점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그녀에게 다시 돌아가려고 한다. 베티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 역시도, 제임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Yeah, I showed up at your party

그래, 네 파티에 내가 나타났지

Will you have me? Will you love me?

날 (다시) 가질 거야? 날 사랑할 거야?

Will you kiss me on the porch

현관에서 내게 키스를 해줄 거야?

In front of all your stupid friends

네 어리석은 친구들 앞에서 그럴 수 있니

If you kiss me, will it be just like I dreamed it?

네가 키스해주면, 내가 꿈꾸던 그대로 될 수 있을까?

Will it patch your broken wings?

그렇게 하면, 네 부러진 날개를 다시 붙일 수 있어?

I’m only seventeen, I don’t know anything

나는 고작 열 일곱이었어,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지

But I know I miss you

그렇지만 네가 그립다는 건 알겠어

 

 

 

2. 셋, ‘August’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무슨 죄일까. 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꼭 이런 차원의 측은함을 유발하는 대상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 혹은 그녀와 사랑에 빠진 ‘제삼자’가 그 예시다. ‘August’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여성이 그렇다. 그녀는 제임스를 짝사랑하고 있다. 제임스에게 베티라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정확히는 알려고 애쓰지 않았다. 제목이 일러주듯, 제임스와 그녀의 만남은 8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다. 찰나의 시간이었던 만큼, 둘의 대화는 피상적인 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다. 깊은 대화 없이 그저 서로를 향한 성애적 감정만으로도 충분했을 터다. 그녀는 때때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하며, 제임스의 말이 진실인지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질문을 건네지 않는다.

 

숨고 회피하는 것이다. 이대로 관계가 계속되기 어려우리라는 걸 그녀는 짐작하고 있다. 그 이유가 제임스의 애인을 눈치채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확실한 점은, 제임스가 언제든 떠나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그와의 관계가 영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에 빠지려고 시도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희망조차 현실 도피의 일환이기에, 미지의 여인은 절망한다. 대놓고 드러나지 않지만, 독자는 그녀가 좌절감과 절망에 시달리고 있음을 눈치챈다. 돌길 위를 걸어가는 제임스를 보며 차에 타,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렇다. ‘Betty’에서 살펴봤듯, 제임스는 스스로 길을 거니는 동안 베티의 생각만을 했다고 이실직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노래가 가진 서사성이 확장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여인에게 제임스는 그녀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전제 조건인 동시에 결론이었다. 예정된 결말이었는데도 그녀는 제임스를 놓고 싶지 않아 했다. 회피형 태도로 관계에서 미련을 버리고자 노력했지만, 끝까지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의 열정이 표출된 결과였을까. 그녀 딴에는 자신의 운명이 가혹하다며 타이밍의 신을 원망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최선의 엔딩이었을 수도 있다. 열정으로 점철된 관계에는 번민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단지 상대를 원한다는 원초적인 감정만 강렬했을 것이기에, 비극적인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더 사랑하지 못해 아쉽다는 토로만 가능할 뿐이니, 상처받을 일도 그만큼 줄어든다.

   

 

Cause you were never mine, never mine

왜냐면 너는 내 것이었던 적이 절대 없었으니, 절대로

Do you remember?

기억해?

Remember when I pulled up

내가 차를 세우고

And said “Get in the car”

“내 차에 타”라고 말했던 순간, 기억하니

And then canceled my plans

그리고 나는 내 계획들을 취소했었지

Just in case you’d call

네가 내게 전화를 할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Back when I was living for the hope of it all, for the hope of it all

우리의 관계가 계속될 거라고 내가 희망을 품었던 그때, 그때가 생각나

“Meet me behind the mall”

“쇼핑몰 뒤로 나를 만나러 와”라고 말했던 그때

 

 

3부작으로 이어지는 세 곡은 감정의 도돌이표를 노래한다. 세 노래를 연달아 들으며 청자는 서사의 연속성에 스며든다. 스토리텔링형 노래 가사에서 중요한 점은 청자를 가사 안의 이야기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부르는 사랑 노래가 아니라, 세 명의 주인공이 토로하는 각자의 이야기라는 관점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청자를 흡수해야 한다. 또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할 것이 아니라 가사로 표현된 주인공의 발화에 녹여내야 한다. 이것에 실패하는 순간 스토리텔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일반 노래’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의 세 트랙에서 테일러는 스토리텔링형 노래 만들기에 성공했다. 당장 네이버 블로그의 포스트들만 읽어 봐도, 노래 가사에 대한 서사적 해설이 글의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핏 보면 보편적인 십 대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노래의 서사를 분석하고, 주인공들의 처지에 감정을 이입한다. 누군가는 베티, 누군가는 제임스, 누군가는 제임스를 짝사랑하는 이름 모를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 테일러는 트랙 속에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연애 소설을 읽듯 노래를 감상하도록 유도했다. 대놓고 자신의 연애 경험과 연애에서 얻은 감정을 제시하기보다, 이야기를 만듦으로써 청자의 자연스러운 관심을 이끌어 냈다. 결과적으로, 소설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으레 각자의 방식으로 교훈을 얻듯 노래를 듣고 나서도 교훈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각자의 경험을 투영해, 애정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결론을 노래들을 통해 회고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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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 뜯은 소포를 다시 포장하는 일


 

이번 편을 완성하기 전, 신문사에서 드디어 기사 완고를 냈다. 원치 않았는데도 며칠 내내 각성 상태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정신에 문제가 오니 신체에도 덩달아 문제가 왔다. 협심증과 불면증이 대표적인 예다. 활자 생산을 손에서 잠시라도 놓고 있으면,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예민함이 밀려 올라오려고 했다. 이번 글을 특히 완성하기 힘들었던 이유기도 하다. 연재 글을 기고할 때만큼은 감정을 게워낸 상태로 글쓰기에 임하고자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끝내 참지 못하고 예민함으로 포장된 감정 소포 꾸러미를 여러 번 풀고 말았다.

  

갖가지 스트레스와 감정들이 소포 구성물로 딸려 왔다. 애정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들도 몇 개 있었다. 부정적이라 일컬어지는 형태의 감정들이, 그 반대의 것들보다 개수가 많았다. 전부 다 괜한 불안감에서 기인한 감정들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소개했던 세 가지 곡 중 가장 내 심리에 잘 조응했던 노래는 ‘August’였다. 관계가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단정 속에서도 상대방이 최대한 오래 내 곁을 지킬 수도 있으리란 빈약한 희망이 잔존하기에. 불안감이 증폭되곤 했다.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관계인데, 라는 냉정한 태도 속에 그것이 정말 현실이 될까봐 초조해하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August’의 화자에게 연민을 느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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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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