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상력의 결여; 다름에 놀라지 않을 면역이 필요하다 [도서]

글 입력 2020.08.30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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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상력의 결여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상권, 제19장 속이 텅 빈 사람들의 자기 증명

 

한 여성 단체에 소속된 여성 2명이 '여성적 견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도서관을 방문했다. 당시 근무하던 오시마 씨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두 사람은 오시마 씨에게 '당신은 남성성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례"이자 "전형적인 차별 주체로서의 남성적 남성"이라고 말했다.

 

오시마 씨는 이렇게 답한다. "저는 여성입니다.", "신체구조는 여성이지만, 내 의식은 완전히 남성입니다. (…) 다만 나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도 레즈비언은 아닙니다. 성적 기호로 말하면, 나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즉 여성이면서 게이입니다."

 

이후 오사마 씨가 다무라군에게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한다.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부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즉 쉽게 말하자면, 조금 전 도서관의 실태를 조사하러 온 두 여성 같은 인간들이라고."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은 남의 고통도, 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낳을 결과도 생각할 수 없다.

 

*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500만 명의 유대인을 이송해 죽음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그는 그저 철저하게 나치의 명령을 따랐던 근면한 군인이었을 뿐 어떠한 악의적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미국 정치 철학가 한나 아렌트가 주장하듯,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 즉 상상력의 결여가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였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점은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상처 입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동기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기에 변명할 여지는 없다. 자신의 행위로 초래하는 바를 상상하는 것은 의무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2. 변화를 전제한 소통



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에 카프카> 일부에서 나오는 두 여성은 이미 삐뚤어진 눈으로 자신들이 창조한 부정적인 상황에 상대방을 끼워 맞추려 한다. 그들은 앞에 놓인 인물이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중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성소수자일 수 있다는 염두 따위 전혀 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라는 탈을 뒤집어쓴 채 편견과 일반화를 일삼는 비겁한 사람들, 그들은 대화라는 걸 하지 않는다.

 

평등이라는 가치를 이의를 말살시키는 구실로 이용하고 남을 비난하는 데만 혈안이 된 사람들에 소름이 끼친다. 그들이 순간순간 핏대를 세우며 내린 결론은 지나친 일반화, 혹은 극심한 특정화로 이루어진 거짓된 주장인 경우가 많다. <해변에 카프카>에 나오는 두 여성이 오사마 씨의 외면만 보고 '전형적인 차별 주체로서의 남성'으로 간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 "안이한 자기 정당화", "자각이 부족한 사회적 부조리", "남성적 남성"과 같은 단어들은 그럴듯해 보이는 비약이 덕지덕지 묻어 알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소통 방식은 자신까지 속일 수 있을 만큼 촘촘한 알고리즘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험성이 아주 크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정상인이든, 페미니스트든, 파시스트의 돼지든, 공산주의자든, 힌두교 신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어떤 깃발을 내걸든 나는 전혀 상관하지 않아.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공허한 사람들이야. (…)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비관용성, 독불장군 같은 계급투쟁의 운동 방침, 공허한 말들, 찬탈된 이상, 경직된 시스템, 내가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런 것들이야. 나는 그건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증오해. " _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

 

성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왜곡된 정의들이 조금씩 벗겨지는 과정에 놓인 지금, 세대 간, 남녀 간에 화합이란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과거의 '옳음'으로 습득되었던 상식은 시대가 바뀌어 편견이 되었다. 상식과 진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쉽게 변모하기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지금 당신이 진리처럼 믿고 있는 뚜렷한 자기 신념이 있다고 해도, 언제나 변화할 수 있음을 전제할 때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소통은 포용 가능할 때 이루어지고, 주장은 '서로의 변화'를 전제할 때 현실이 된다.

 

 

 

3. 다름에 놀라지 않을 면역


 

누구나 그런 적이 있다. 나를 슬쩍 꺼내 보여줬다가 상대방이 깜짝 놀라서 상처를 받은 경험. 사람들은 별것도 아닌 '다름'에 지나치게 놀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마치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것처럼 말이다. '다름'에 죄책감을 부여하는 '예상하지 못함'에 대한 경각심. 그것이 부재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느낀다.

 

다름에 놀라지 않을 면역이 필요하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성 소수자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내가 상상 지 못한 경험을 했고, 예상치 못한 곳에 상처와 트라우마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를 언제나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름을 염두에 두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

 

"무엇이 옳고, 무엇이 옳지 않은가-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 그러나 그런 개별적인 판단은 혹시 잘못되었더라도 나중에 정정할 수가 있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할 용기만 있다면, 대개의 경우는 돌이킬 수 있지. 그러나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것이나 관용할 줄 모르는 것은 기생충과 마찬가지거든. 중간 숙주를 바꾸고 형태를 바꾸어서 끝없이 이어져가는 거야. 거기에는 구원이 없어." _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독심술로 남의 마음을 읽는 것을 즐기지만, 정작 자기 내면을 퇴고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가끔 굳게 믿고 있는 나의 진리를 의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꽤 많은 모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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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GroszRemember Uncle August, the Unhappy Inventor, 1919, Musee National d'Art Moderne, Centre Pompidou,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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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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