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69세, 사건은 영화 속으로

당신의 편견은 어떠신가요
글 입력 2020.08.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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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간호조무사 성폭행 사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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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2일, 병원을 찾은 한 여성이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당했다. 하지정맥류 수술 후 압박붕대가 풀려 간단한 처치가 필요했던 여성은 간호조무사를 따라갔고, 석고실 안에서 성폭행이 일어났다. 여성은 팔에 링거를 꽂아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다. 당시 여성은 58세, 남성은 32세였다.


피해자는 경찰에 성폭행 사건을 고발했지만, 영장은 네 번이나 기각되었다. 오히려 가해자가 피해자를 꽃뱀이라 몰아갔고, 경찰도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며 피해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0대 남성이 60대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A4 다섯 장에 달하는 유서에는 "내가 젊은 여자였다면 가해자가 구속되었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피해자의 억울함이 담겨있었다. 간호조무사 노인 성폭행 사망사건은 성과 노인에 대한 편견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2. 당신의 편견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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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임순애 감독, 예수정 주연의 영화 '69세'는 위 사건을 모티프로 제작된 이야기다. 영화 속 인물도 실제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피해자의 고통을 영화 속 경험으로 보여준다. 간호조무사 성폭행 사망사건에서 나타난 사회적 편견을 동일한 상황으로 보여주며,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69세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받다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치욕적인 일을 당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처음 시작에 배치하고, 화면은 꺼진 채 소리만 들리는 암전의 상황으로 보여준다. '다리가 이쁘시네요', '아가씨 같아요' 등의 과도한 친절로 위장한 성추행이 이어지다 결국 성폭행이 일어났음을 암시한다. 시각을 제외하고 상황의 본질만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암전 화면으로 편견의 개입을 통제한다.


그리고는 효정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정된 카메라에서 효정의 물속 뒷모습이 지나간다. 관절이 아파 수영을 오래 했다는 설정이 시각적으로 지나간다. 처음 두 장면을 통해 영화는 관객의 편견을 묻는다. 피해자의 억울함이나 사회적 편견을 보여주기 전, 69세의 노인이 29세의 남성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지 질문한다.


효정이 영화 속 겪는 편견은 특정 인물에 의해서가 아닌, 사회 속 불특정 다수로부터 발생한다. 효정이 겪은 편견은 특별한 원한 관계에 있는 누군가에 의한 악의적인 언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효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편견들이 사건 속 효정에게 상처를 줬다.


노인에 대한 편견은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효정은 사고를 당한 후 경찰서를 찾지만, 고소장과 고발장을 찾지 못하는 모습에 경찰관은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효정이 밤길에 차도를 건너다 사고가 날 뻔 하자, 젊은 남성은 효정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사회의 편견은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여긴다. 담당 형사는 노인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하고 사건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 또한, 동거 중인 동인과의 관계를 물을 때 비웃음을 숨기기도 한다. 수영장에 함께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몸매가 처녀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병원의 간호사에게는 나이보다 옷을 더 잘 입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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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관객인 우리도 동일한 편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성폭행 사건을 맨 앞에 두어 관객의 편견을 질문하며, 이후 일상적인 편견들을 가진 인물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편견들이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하고, 비극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었음을 말한다.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실제 사건과 병치한다. 유서를 작성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실제 사건과 달리, 영화의 효정은 고난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영화와 실제 사건이 다른 점은 마지막 장면이다. 계속되는 영장 기각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효정은 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다. 효정은 가해자 이중호의 가족들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리고, 길가에서 대면해 자신의 억울함을 복수한다.


이후 효정은 성폭행 사실을 진술한 인쇄물을 들고 병원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난간에 인쇄물을 바람에 날리게 두어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알린다. '이제 전 어려운 고백을 시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햇빛으로 나아가 보려 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글은 그의 용기 있는 선택을 보여준다.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에서 감독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영화는 단순히 비극을 그린 이야기도 아니고, 고난을 극복한 휴먼 드라마도 아니다. 영화는 아직도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그린다. 진실을 가로막고 피해자를 고통받게 하는 편견을 보여주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래도 영화는 실제 사건과 다른 결말을 통해 희망을 남겨둔다. 효정의 선택은 편견 속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감독의 바람이기도 하며, 우리가 미쳐 가지지 못한 생각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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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9세

영제: AN OLD LADY

감독: 임선애

출연: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김중기, 김태훈

장르: 드라마

제작: ㈜기린제작사

배급: ㈜엣나인필름

러닝타임: 100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0년 8월 20일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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