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창작자와 창작물 그리고 수용자, 이 세 가지 요소가 함께 할 때 완성된다. 독자 없는 문학이나 관객 없는 연극을 상상해 보라. 제아무리 뛰어난 창작자가 만들어낸 예술품이라 할지라도 수용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로써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이름을 불러줄 때에 비로소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예술은 100% 완성의 고정형이라기 보다는 100%를 향해 달려가는 현재 진행적 속성을 지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되는 수용자의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무궁무진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이라는 예술은 프레임 안에서 영원히 박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번 달라지는 감상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잠깐만>은 이러한 예술의 본질에 접근하는 마임 연극이다.
관객과 함께 매번 새로운 극을 만들어 나가며 예술의 확장을 일으킨다.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장면에서는 여인의 스카프를 휘날리게 만드는 바람을 관객이 담당한다. 그림 속 이야기를 관객과 만들어 나가면서 명화 속의 이야기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에서는 아기와 함께 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모성애를 느낄 수 있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과 이미지를 배우들의 연기와 무용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그 의미를 확장시킨 것이다.
필자는 또한 <잠깐만>이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개인적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잠깐만>은 애초에 함께 나이를 먹어갈 생각으로 만든 극임을 언급한 바가 있다. 고재경 연출가는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관객들과 나누고 싶다’고 추가로 덧붙였다.
실수투성이에 미숙하지만 공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랑극단의 이야기. 한 예술가의 치열한 창작의 고뇌와 예술의 열정을 <잠깐만> 속 유랑극단의 이야기로 펼쳐 나간다.
좋은 극이었음에도 앞서 예술에 백 퍼센트 완전한 것은 없다고 언급했다. 또한 필자는 마임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평범한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느낀 개인적 아쉬움을 풀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애매한 웃음 포인트. ‘마임’하면 일반적으로 희극적 코미디를 떠올리는 만큼, ‘마임’에서 웃음과 유머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말을 할 수 없고 몸짓으로만 표현해야 하는 넌버벌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방법은 흔히 두 가지가 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이나 표정’, 그리고 희극적인 ‘상황’이 주는 우스움.
어렸을 때 봤던 ‘톰과 제리’나 ‘찰리 채플린’영화는 넌버벌이었음에도 슬랩스틱과 같은 몸 개그나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웃음을 유발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잠깐만>의 웃음 포인트는 어쩐지 애매했다. 웃음이 나오려다가 만 느낌이랄까.
두 번째는 각 그림 스토리 해석의 통일성이다. 가령 『이삭 줍는 사람들』, 『여성의 세 시기』, 고흐의 자화상 이야기에서는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확장이 있었다. 하지만 『양산을 쓴 여인』, 『절규』에서는 새로운 해석보다는 그림의 재현과 관객의 참여에 더욱 집중하고자 했던 것 같다.
관객의 참여와 새로운 해석이 조화롭게 맞물렸거나 그림의 순서를 목적에 따라 통일성 있게 배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림 순서에 통일성이 없어 개인적으로 극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자화상으로 끝마치는 이 극을 끝까지 보고 나면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뭉클하고 아름다운 잔상이 남는다.
그것은 어쩌면 노래 'Vincent'의 가사.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lette blue and grey.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별이 빛나는 밤. 팔레트에 파랑과 회색을 칠합니다. 얼마나 고뇌했는지.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표현하고자 괴로워했던 고흐의 예술정신이 그림에 남아있듯이 예술을 향한 유랑극단의 마음이 이 극에 녹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무사히 공연을 마친 극단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별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그들은 어깨를 서로 맞대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내일 공연을 준비하고, 관객의 캔버스에는 물감이 아름답게 번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