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감각을 넘어 존재로 마주하는 공간: 더 터치 [도서]

글 입력 2020.08.0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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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각적’이라는 표현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사전적으로는 감각을 자극하는 것, 감각이나 자극에 예민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내게 ‘감각적인 사람’은 단순히 감각이나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보통의 것이 아닌, 대체할 수 없으며 언어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도드라진 센스를 지닌 사람’으로 느껴지곤 했다.

 

그랬기에 늘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감각적이라는 칭찬이 무엇보다도 날 가장 기쁘게 했다. 하여,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내가 향유하는 모든 것들이 감각적이길 바랐다. 이를테면 옷차림, 액세서리와 같은 외적인 부분은 물론이며 가구와 오브제들을 포함한 나의 방, 내가 종종 방문하는 카페와 식당, 여행지, 내 손에서 태어나는 작업물들, 하물며 나의 SNS 피드까지도.

 

그를 위한 감각의 구축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만 가르쳐주었기에 그 밖의 배움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스스로 발품을 팔아 눈에 담고 귀 기울여 듣고 살갗으로 경험하며 깨달아야 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세상엔 수많은 감각적인 레퍼런스들과 아티스트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만든 스튜디오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그중 하나인 ‘킨포크’와 ‘놈 아키텍처’ 역시 진즉부터 주의 깊게 보아오곤 했다. 헌데, 질 높은 삶을 탐구하고 의식과 목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매거진 ‘킨포크’와 유행과 첨단 기술보다는 인간 중심 적을 지향하는 북유럽 디자인 스튜디오 ‘놈 아키텍처’의 협업으로 탄생한 책이 발간되었다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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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터치: 머물고 싶은 디자인>은 인간 중심의 건축 디자인을 빛, 자연, 물질성, 색, 공동체라는 다섯 가지 본질적 분류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각 주제마다 그에 상응하도록 다양한 나라의 도시에서 선별된 아름다운 주택, 숙소, 상점, 미술관, 학교 등의 공간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그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연출자의 의도, 목적, 쓰인 재료 등을 해설한다. 건축과 공간에 대해 일절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책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를 환언하자면 '자연과의 일체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으로 일맥상통하며 이는 인간의 운명 그 자체이기에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삶을 건축으로 풀어냈을 뿐이다.

 

*

 

자연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햇빛부터 쉬이 떠오르지 않는 코르크, 티크 나무, 테라코타 타일 등 가히 셀 수 없을 만큼 무수하다. 그 무수한 것들은 건축의 재료로써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합성 재료로 된 것들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고 사용할수록 예측할 수 없는 멋을 더해 간다.

 

건축가 유하니 팔라스마에 따르면, 자연 물질이 합성 물질보다 중요한 이유는 화학 물질은 추하게 닳을 뿐인 반면에 자연 물질은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돌은 퇴적작용을 말하고 나무는 성장을 이야기하듯 생명과의 관계나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고 근사하게 낡아 가며 운치를 풍긴다는 것이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그의 말에 무척 공감했다.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소가죽 벨트가 있는데,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그게 벨트냐 절지동물이냐 물을 정도로 낡았지만 나는 그 낡은 가죽의 얼룩과 광과 에이징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좋다. 다른 신발들보다 내 발에 알맞게 길드는, 마찰하는 부분에서 신음하듯 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죽 부츠가 좋고 다른 그릇보다 내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간간이 흙 입자가 보이는 도자기 그릇과 화병을 좋아한다.

 

데이비드 툴스트럽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낡아 간다는 건 가구의 영혼이 깊어지는 거예요. (중략) 의자에 붉은 와인 얼룩이 지고 사람들의 손때를 타 낡겠죠. 얼룩이 200배쯤 많아지겠죠. 하지만 그 후에는 정말 근사하게 보일 겁니다’라고. 이탈리아의 건축가 데 코티스 역시 무너진 벽이나 마감 처리를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각 방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남기는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이 묻은 물건들에 깊은 애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이는 비단 나만의 취향은 아니구나 싶다.

 

이렇듯 책을 접하는 동안, 건축과 공간에 조예가 깊지 않은 나조차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영국의 건축가 존 포우슨의 ‘런던 모퉁이 집에 살았는데, 맞은편 집들의 창문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어 우리 집으로 들어왔죠.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었어요. 동쪽에서 뜬 태양이 우리 집 서쪽 벽을 비췄으니까요. (중략) 이런 현상은 하루 중 몇 분 동안에만 일어나는데, 꽤 근사했어요’라는 말에도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맞장구를 쳤던 것 같다. 몇 해 전 한여름에 새벽 기차를 타고 정동진에 도착해 해변에 앉아 바라본 일출은 라일락 빛의 은은함부터 타는듯한 붉은빛으로 시시각각 변화했고 그 잠깐의 시간이 나의 온 하루를 근사하게 만들 만큼 황홀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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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공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공간과 건축을 닿지 못할 만큼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간 또한 기록이자 건축가의 마음과 의식이라고 생각하며 <더 터치>를 통해 감각적인 공간들을 눈에 담는 시간은 실로 즐거웠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고유의 분위기를 가진 건축물들을 보며 여행했던 도시는 다시 방문할 명분을 만들었고 이전엔 흥미가 없던 도시엔 그 건축물을 보러 꼭 가야겠다며 나중을 기약했다. 우리는 눈뿐 아니라 우리의 존재 전체를 통해서 건축물과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인상 깊게 보았던 구절들과 함께 이만 리뷰를 마무리한다.


 

때론 무언가를 없애는 것도 건축이 될 수 있다. - p.110


"음악과 비슷하다. 재료가 지닌 풍부한 질감, 냄새, 느낌은 뭐라고 콕 집어서 정확히 말할 수 는 없어도 뭔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 p.129 


흰빛이 흑백 사진처럼 공간을 꿰뚫는다. 책에, 비코 마지스트레티의 기하학적인 테이블 램프 위에, 조각가 세르지오 드 카마고의 대리석 체스 판 위에 바랜 흰빛이 드리운다. 리넨 커튼, 긴 파사드, 커다란 두 개의 양털 카펫, 이사무 노구치가 종이로 만든 플로어 램프 위에도 소박한 흰빛이 내려 앉는다. - p.137


"우린 실수도 저지르고 변덕도 부리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도 품어 주는 문화를 좋아한다. 그것도 그저 자연이 지닌 속성의 일부다." - p.154


때론 어둠도 인간의 의식이 열망하는 환경이다. 둥지는 어둡다. 동굴도, 자궁도 어둡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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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안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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