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좌절과 절망의 연대기 - Goodbye, grief. [음악]

슬픔의 깊은 곳까지 마주하고 애도하기
글 입력 2020.07.3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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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모든 게 완벽할 줄 알았다. 지금과는 다른 삶이 펼쳐지고, 모든 것이 빛나는 찬란한 어른을 꿈꿨다. 하지만, 빛날 것 같았던 내 인생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가득했다. 허무하게도 내 삶은 지독하게 평범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당신은 특별하다’, ‘청춘’에 관한 지겨우리만큼 똑같은 말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아픔을 위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은 찬란하게 빛나는 삶은커녕, 오히려 좌절과 실패, 상실로 얼룩져 있을 뿐이다. 이런 정형화된 문구는 공허한 희망을 주입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마취한다. 부정적 감정을 지우고 긍정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혼란을 초래한다.

 

자우림, 그들은 무책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슬픔, 좌절, 무기력, 분노, 상실… 이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억지로 숨기려 하지도, 애써 긍정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격렬하게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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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감정처럼 앨범 [Goodbye, grief.]의 수록곡이 만든 감정선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폭풍 속에서 분노를 터뜨리며 상대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데,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당사자에게 버림받지 않도록 사랑을 갈구한다. 때로는 가벼운 리듬에 춤을 추며 모든 슬픈 기억마저 잊으라고 한다.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폭풍이 지나간 후 하늘에 떠오르는 무지개를 보며 허공에 손을 내민다. 이런 우리를 보고 자우림은 앞으로 좋은 날이 있을 거라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도 땅을 박차고 달려가라고 한다.

 

죽음의 문턱까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것은 바로 행복보다는 슬픔이란 감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상실감과 좌절은 삶에서 필수 불가결하다. 슬픔 속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잠깐씩 희망을 품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Goodbye, grief.]는 기존 청년에게 주입하는 공허한 희망과는 다른 길을 간다.

 

 

 

좌절, 그리고 분노


 

첫 번째 수록곡 ‘Anna’와 두 번째 수록곡 ‘Dear Mother’는 상대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다. ‘Anna’는 자신을 버린 ‘안나’에게 처절한 저주를 내린다. 가사와 함께 김윤아의 목소리도 날카로운 유리처럼 귀를 찌른다. 엄마와 비슷하기도, 아파와 비슷하게 들리는 이 ‘안나’라는 이름을 되뇌며 많은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하고 있다.

 

‘Dear Mother’도 ‘Anna’와 결을 같이한다. 증오와 애정이 교차하는 구성이 하나의 뮤지컬 넘버를 보는 듯하다. 엄마에게 보내는 말을 나직하게 고백한다. 키보드를 치면서 나직하게 도입부에서 엄마를 부른다. “엄마, 난 어쩌면 좋아요?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며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자신을 봐 달라고 갈구한다. 음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전조처럼 잔잔하다. 그 분노의 표출은 점점 강해진다. 그에 따라 빨라지는 템포와 더해지는 악기의 구성은 극에 달한다.

 

격렬해지는 음악과 함께 게다가 고음에 빠르게 요동치는 멜로디와 가사는 분노를 표출한다. 흥겨운 리듬과 음악은 가사와 이질감이 든다. 음악만 들으면 분위기를 돋우는 축제 음악처럼 통통 튄다. 음악은 춤을 춰야 할 것 같은데, 곡의 의미와 가사는 심각하고 진지하다.

 

 


 

당신의 바람대로 착한 아이가 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당신에겐 그걸로 충분하지가 않았고

아직 어린 나의 인생을 실패다, 끝났다 했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나를 그런 작은 구덩이에 밀어 넣었나요?

눈 감은 채, 귀 막은 채, 입 닫은 채,

마치 죽은 체 살기 바란 건가요?

이대로의 나를, 모자란 나를,

사랑해 주면 안 됐나요?

왜 나론 안 되나요?

왜 내가 미웠나요?

 왜 나를 낳았나요? 

 

 

마지막에 나는 다시 처음의 기분으로 돌아와서 진실한 고백을 한다. “엄마, 날 또 울리지 말아요. 지금 내겐 당신뿐이에요.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래도 내가 돌아갈 곳. 이제는 제발 나를 안아 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애정과 사랑이었을 뿐. 나를 학대했던 기억에도 나를 사랑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노래의 끝은 보이지 않는 대상에게 기도하듯 나의 감정과 말은 허공에 사라진다.

 

두 곡 모두 분노로 일그러진 감정을 노래하고, 좌절로 점철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안나와 엄마를 같은 인물이라 단정할 수 없다. 그렇지만, 두 인물 모두 화자에게 좌절을 안겨주었고, 증오하는데도 사무치게 사랑하는 존재다. 상대에게 분노를 내보이는데도, 정작 그 상대에게 전달될지는 의문이 든다. 혼자만의 중얼거림으로 그칠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좌절의 연대기가 시작된다.

 

 

 

무기력한 청춘의 자화상


 

이 분위기는 ‘님아’로 이어지면서 바뀐다. 예스러운 가사와 트위스트를 춰야 할 것 같은 리듬이 특징인 곡으로, ‘어여쁜 내 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이전 곡과 완전히 정반대의 곡을 배치해 청자가 숨을 쉴 수 있게 만든 거라 예상한다. 다소 정신줄(?)을 놓은 것처럼 들리는 창법과 가사가 이전 곡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인다. 흥겨운 분위기의 음악과는 다르게, 가사에는 슬픔이 담겨 있다.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어디 멀리 가지 마오.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혼자 그리 가지 마오.

강에 가면 검은 물이, 산에 가면 어둠이

내 님을 데려 가려 하네,

훠이 훠이 훠이 훠이 훠이

님아, 내 님아 꽃 같은 님아.

님아, 내 님아 해 같은 님아.

 

 

자우림은 이 곡을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파괴하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내 님을 슬프게 하는 것들을 물러나라고 쫓는 모습이 연상된다. 자우림만의 보컬 창법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악기 구성이 특징이다.

 

이 즐거움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폭풍을 노래하고 있는 ‘템페스트’가 흘러나온다. 폭풍처럼 격렬하게 쏟아내는 감정은 우울이 마음속을 깊게 잠식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을 노래한다. 비틀린 감정 속에서 고통받는 화자는 차라리 자신을 휩쓸어 버리고, 부숴버리라고 한다. 잔잔했던 마음은 한순간에 슬픔과 우울도 뒤덮이고, 얽히고설켜 분노가 되어 버린다.

 

 

 

 

고요함에서 드럼이 조용히 등장해 폭풍의 전조를 알리며, 사이키델릭한 음색이 환상을 들려준다. 이후 청자는 순식간에 폭풍 속으로 들어간다. 거센 비가 내리는 밖에서 맨발로 나와 춤을 추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실성한 사람처럼 보인다. 자기혐오와 세상에 대한 분노가 일렁이는 마음을 나타내며 이전 곡 ‘님아’ 이후에 등장하여 거센 폭풍을 만들어낸다.

 

다시금 분위기는 반전된다. 광고 음악처럼 감각적인 멜로디가 청자의 귀를 사로잡는 ‘I feel good’이다. 가볍고 툭툭 내뱉는 가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방식, 그냥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은 청춘의 초상을 나타낸다. “가버려라, 다 가져가라 어? 그건 놓고 가라”는 위트있고 먼지처럼 가벼운 생각과 말은 노래를 더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다. 뭐가 그리 기분 좋은 지 모든 게 완벽해졌다며 ‘I feel good’을 외치는 모양이 안쓰럽기도 하다. 촘촘히 쌓인 일렉 기타의 선율이 매력적인 곡이다.

 

 



 

떠나간다, 사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상관없다, 그냥 그렇다

다시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가버려라, 다 가져가라

어? 그건 놓고 가라

떠나간다, 사라진다

오글거리는 기억마저 모두 지워버린다

 

모두 지워버린다

손이 더러워진다

이제 기억이 없다

모든 게 완벽해졌다

 

I feel good, feel good 완벽해졌어

I feel good, feel good 완벽한 사람이 됐어

I feel good, feel good 완벽해졌어

I feel good, I feel good, feel good

 

 

청춘들의 위풍당당하고 요란한 모습이 상상되고 노래 한 편에선 ‘님아’, ‘템페스트’에 남아있던 정신이 돌아버린 모습이 보인다. 누구보다 격렬하게 반응했는데 손바닥 뒤집듯 바로 다음 곡에서 모든 걸 털어버리고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젠 제대로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닿지 못할 나의 청춘에게



앨범은 전환점을 맞는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기점으로 앨범의 공기가 달라진다. 이후 트랙은 지나가 버린 청춘이거나, 순수하게 원했던 나의 꿈을 노래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과거의 청춘과 기억을, ‘무지개’는 간절히 원했지만 얻지 못한 꿈을 말이다. 넘어지고 에라 모르겠다며 모두 놓아버리는 무기력한 청춘의 초상을 나타내는 ‘Dancing Star’가 있다.

 

폭풍이 몰아치는 그때가 지나고 이제는 구름 속 사이로 작은 빛 한줄기가 내려온다. 좌절과 분노가 일렁이다가 결국에는 정신줄을 놓아 버렸던 날들이 지나고 앞을 헤쳐갈 수 있는 작은 힘이 돋는다. 그렇다고 실패를 딛고 노력해서 성공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앞부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명확하게 밝히고, 좌절 사이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곱씹을수록 노래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희망이 청자에게 위로가 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을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이제서야 알게 된 과거 너의 소중함을 사무치게 느끼고 있다. 화자가 기다리는 ‘너’는 여러 갈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각자에 따라 지난 추억일지도, 또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훌륭한’ 어른이 되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다. 빨리 시간이 지났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 시간들을 의미 없게 흘려보냈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지난 시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알게 되어 버린 순간이다. 이제서야 알게 된 그때의 소중함과 다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상실감이 느껴진다.

 


 

 

그에 대한 그리움은 다음 곡에서도 이어진다. ‘무지개’에선 닿지 못한 ‘언젠가 이뤄질 거라 믿었던 천진한 꿈’을 노래한다. 이런 말이 있다. '간절히 원하면 모든 게 이뤄질 거라'고. 노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달콤하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환상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다.

 

허나, 이건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꿈(목표)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실패는 오로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절히’ 노력하지 않았기에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라며, 실패의 요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치부한다. 실패엔 노력 부족이 원인일 수도, 사회 구조의 문제, 또는 사람 간의 관계, 또는 아예 불가능한 꿈을 꿨다는 것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도 자신을 탓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노력하면 모두 이뤄질 거라는 무지‘개’ 같은 꿈일지도 모른다.

 

지나간 청춘이나 꿈은 결국 닿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무지개’를 관통한다. 과거의 그리움,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초라한 현재와의 간극이 벌어지고, 좌절은 언제나 현재와 이상의 간극에서 일어난다. 달콤한 망상에서 빠져나와 좌절한 나는 결국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모르겠고, 화자는 ‘Dancing Star’, 하루가 그냥 지나가면서 내일은 다르겠다는 근거 없는 낙관적인 희망을 기대하면서 춤이나 추자. 에라 모르겠다.

 

 

 

그러니까,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초라한 현실을 음악으로 감싸 안는다. 베이스와 몽환적인 음색의 기타가 뭉게구름처럼 일렁인다. 되는 게 없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우림은 말한다. 모든 게 좌절되더라도, 삶은 포기하지 말라고. “꿈은 하늘에 닿아 사라진대도 쥐어왔던 날들은 놓치지 말아요” 자우림이 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꿈을 꾸라는 잔인한 희망을 걷어낸 담담한 위로다.

 

10번째 트랙, ‘이카루스’에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사소한 비밀’을 알려준다. 아무도 어른이 된다는 건 슬픔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삶이 시작될 거라고. ‘이카루스’에서 이카루스라는 신화 속 인물을 보여주면서 달콤한 환상을 깨트리고 초라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심에 사로잡혀 우리는 하늘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동경했다. 그러나 결국 잡을 수 없던 무엇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성공이었든, 행복이었든 간에 말이다. 너의 스물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고, 빛나지 않을 청춘이 펼쳐질 것이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잔인하고 무심하게도 들릴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며 땅을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라고 한다. 언제까지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할 수는 없다. 현실적이고 무심한, 이것이 자우림식 위로법이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태도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쟁취할 것들은 하늘의 무지개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몸뚱이를 그대로 던져버릴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무지개를 잡으려는 화자처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올라간 이카루스처럼, 닿지 못할 꿈을 따라가는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


 

좌절과 절망의 연대기는 10번째 트랙 ‘이카루스’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트랙 ‘슬픔이여 이제 안녕’이 앨범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사실, ‘이카루스’로 끝을 냈다 하더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카루스’가 마지막 트랙이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이 등장함으로 [Goodbye, grief.]를 더 찬란하게 빛낸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은 [Goodbye, grief.]의 에필로그 트랙이다. 앨범 수록곡을 정리하고, 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트랙이다. 제목만 보고서는 슬픔을 모두 떠나버리고 행복한 나날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마지막 트랙을 들을 때까지 노래 속 화자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슬픔에게 제발 가달라고 애원하는데도 깊은 마음속 무의식에서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한다. 우울에 잠식되어 있어 이제는 슬픔조차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연 화자는, 우리는 슬픔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을까? 슬픔이 제거된 상태를 긍정하지 않는 모습, 마지막까지 ‘자우림’답다.

 

노래 마지막에는 소년들의 코러스가 나오면서 무대에서 김윤아는 눈을 감는다. 소년의 맑은 목소리가 안식을 주는 듯하다. 이런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애도를 표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슬픔에 잠식된 자의 안식과 안녕을 애도한다. ‘Anna’부터 ‘이카루스’까지 처리되지 않는 슬픔을 마주하고 진하게 느끼는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슬픔이여 이제 안녕’에서야 슬픔에게 말을 건넨다. 앨범 속 모든 트랙은 애도의 과정을 담고 있다. ‘슬픔이여 이제 안녕’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를 통해 청춘의 슬픔을 애도하는 앨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Goodbye, grief.]는 슬픔을 깊은 곳까지 마주하고 애도하는, 그런 앨범이다.

 

**

 

자우림의 노래는 항상 사회를 그대로 비춘다. 사회의 부조리를 감추지 않고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번 앨범[Goodbye, grief.]에서 그 타겟은 청춘이다. 흔히 청춘을 다루는 콘텐츠는 상처를 극복하는 서사가 주를 이루고, 불온전이 온전함으로 변하는 것을 결말로 설정한다. 그 과정에서 좌절은 극복하는 것을 선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현실에선 다르다. 성장은 그렇게 쉽지 않게 이뤄지고,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을 해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겐 그것조차 좌절이 된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청춘의 민낯을 드러내고, 사회에 만연한 ‘청춘 만능주의’를 비판한다. 청춘의 찬란한 삶보다는 좌절과 패배의 역사를 기억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있고, 실패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삶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슬픔과 실패, 좌절을 어떠한 긍정으로 포장해 눈을 가리는 것보다 현실을 마주하고 인정하도록 한다. 현실을 직시한 후에 돋는 자그마한 힘이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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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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