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결핍을 예술로 승화하다, 툴루즈 로트렉展

파리 밤문화의 기록자, 현대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툴루즈 로트렉
글 입력 2020.07.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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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파리는 세 번이나 방문을 했다. 16살, 가족과 함께. 23살, 친구와 둘이. 24살, 혼자. 이렇게 세 번이나 같은 여행지를 가면 질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 파리는 질리지가 않는달까. 한 때 파리에서 머물렀던 작가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 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디를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If you are lucky enough to have lived in Paris as a young man, then wherever you go for the rest of your life, it stays with you, for Paris is a moveable feast.

 

 

그리고 여기 이 축제의 나날들을 기록한 화가가 있다. 바로 툴루즈 로트렉이다.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jpg

 

 

툴루즈 로트렉은 헤밍웨이처럼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했던 여러 예술가 중 한 명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프랑스 남부 알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이후 당대 유럽 문화의 중심인 파리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그의 주요 활동 무대는 몽마르뜨 지구였다.

 

몽마르뜨는 파리의 외곽에 위치해 있고,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값이 비교적 싼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예술을 하기 위해 찾아온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몽마르뜨로 모이게 되었고, 자연스레 몽마르뜨는 예술과 향락의 거리가 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파리를 총 세 번을 갔는데, 그중 한 번은 몽마르뜨를 방문하지 못했다. 그때 당시 파리 지하철에서 강도를 만난 이후 치안에 아주 예민해졌었는데, 몽마르뜨 쪽이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에 겁을 먹고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두고두고 아쉬워서 가장 최근 갔던 여행에는 몽마르뜨를 방문했다.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2001년 개봉한 영화 <물랑 루즈>를 본 덕에 몽마르뜨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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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방문한 파리에서 보았던 물랑루즈 건물

 

 

사크레쾨르 대성당과 그 앞에 드리워진 몽마르뜨 언덕, 그리고 아래에는 파리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꼬불꼬불 펼쳐진 골목마다 즐비한 가게들과 싸구려 관광상품을 파는 사람들.

 

무언가 화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몽마르뜨는 그저 평화로웠다. 걸어가다가 마주친 물랑루즈 건물도 새빨간 풍차가 아니었다면 그저 흔한 공연장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 같다. 이곳이 프랑스 근대 유흥 문화의 상징이며 한때 화려한 환락가의 중심이었을 것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 아쉬움을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에서 해소할 수 있었다. 툴루즈 로트렉은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랑 루즈를 무대로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의 모습을 담아낸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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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jpg

툴루즈 로트렉 - At the Moulin Rouge, The Dance

 

 

당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르누아르나 모네 같은 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를 추구하며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그렸다면, 로트렉은 화려한 밤거리의 조명 아래의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그래서인지 르누아르가 그린 몽마르뜨의 무도회와(르누아르 -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로트렉의 그림은 아주 다른 느낌을 준다. 어떤 이들은 로트렉을 탈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파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I don't belong to any school.

I work in my corner.


 

37년의 짧은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화, 수채화, 드로잉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그는 연필과 펜을 항상 들고 다니며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영감이나, 눈앞의 인상들을 수많은 4700점이 넘는 드로잉 작품으로 남겼다.

 

하지만 그의 작품 인생 중 가장 큰 족적 중 하나는 바로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로트렉은 포스터, 잡지 삽화, 표지 등의 수많은 천재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은 100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센스 있다는 느낌을 준다.

 

 

Moulin Rouge, La Goulue.jpg

툴루즈 로트렉 - Moulin Rouge, La Goulue

 

 

그는 여러 실험적인 구도나 색채를 활용하여 예술성도 잡고 동시에 대중들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수 있었다. 로트렉의 포스터가 인기 있어지자, 일각에서는 그의 포스터를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포스터에 담긴 아티스트들은 로트렉의 포스터 덕을 크게 보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중 캉캉 댄서 제인 아브릴(Jane Avril)이나 배우이자 가수인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Aristide Bruant)는 로트렉의 뮤즈들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포스터를 그린 사람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포스터에 담긴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이 잘 이해가가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19세기의 포스터의 위상은 현재의 포스터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19세기는 산업화로 인해 예술 작품들도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시대이다.

 

즉, 이 시기를 시작으로 근대적인 대중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로트렉이 살던 시대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이전이기 때문에 포스터가 그 당시의 가장 큰 콘텐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로트렉은 당시 최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라고 불러 볼 수도 있겠다.

 

 

Salon de la rue des Moulins.jpg

툴루즈 로트렉 - Salon de la rue des Moulins

 

 

이처럼 많은 시간을 몽마르뜨에서 보낸 로트렉은 그곳의 많은 사람들을 그의 그림 속에 담았다. 물랑루즈의 댄서, 서커스 단원들, 관람하는 사람들, 그리고 몽마르뜨 유곽에 위치한 환락가의 여인들까지.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로트렉의 뮤즈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 그들과 그들이 하는 일들은 추하고 천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로트렉은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그림에 담았다. 현실 세계에서 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예술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것으로 전복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툴루즈의 작품들은 당시 시선으로 보았을 때 이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어째서 이들에게 관심을 둔 것일까.

 


언제 어디서나 추함은 또한 아름다운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짜릿하다.

 

Everywhere and always ugliness has its beautiful aspects; it is thrilling to discover them where nobody else has noticed them.

 

 

로트렉은 귀족 사회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선천적 장애와 후천적인 부상으로 인해 성장이 멈춰 키가 152cm밖에 되지 않는 단신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아버지와 귀족사회에서 외면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그의 신체적 결함과 그로 인한 콤플렉스 그리고 그가 기존에 속해 있던 사회에서 타자의 위치를 가지게 된 점이 그가 추하다고 여겨지는 ‘밤 문화’로-즉 타자들에게 고개를 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시 공간의 마지막에 상영하는 영상에서는 이것을 외면 받은 자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라고 설명했지만-그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회피와 혐오감, 자신과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동질감 등과 같은 것들이 그의 손을 움직이게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로트렉 또한 "내가 키가 작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결핍과 열등감이 그의 예술 세계의 근간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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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둘러보고 나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한 사람의 고통이 이토록 아름답고 천재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에, 그것이 전체 예술사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그리고 이내 자기 파괴적 감정을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 툴루즈 로트렉에 감사하게 되는 그런 전시였다.

 



 

 

툴루즈 로트렉展
- Henri de Toulouse-Lautrec -


일자 : 2020.06.06 ~ 2020.09.13

시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매표 및 입장마감 오후 6시)

*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 15,000원
청소년 : 12,000원
어린이 : 10,000원
 
주관: 메이드인뷰, 한솔BBK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이지현.jpg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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