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물의 내면을 그려낸 화가, 툴루즈 로트렉展

글 입력 2020.07.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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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 미술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한 번 쯤은 들어보았을 이름이다. 디자인학과를 다니며 필수로 서양미술사를 공부해야 했던 나는 모르려해도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서양의 긴 미술사를 한 권에 담아내야 했던 책의 특성 때문에 로트렉은 그 중 한 두 페이지 밖에 소개되지 못 했고, 그렇게 나는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며 로트렉을 '서양 포스터의 대가' 정도로 알고 넘어 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툴루즈 로트렉 앵콜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고, 운이 좋게도 신청을 통해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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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의 생애


 

툴루즈 로트렉은 후기인상주의 대표 화가이다. 그는 남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님이 귀족 집안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했던 근친혼 때문에 약한 몸을 갖고 세상으로 나왔다. 선천적으로 몸이 안 좋은 데다가 청소년기에 의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게 된 그는 자라서도 153cm의 기형적인 키를 갖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가문에 걸맞게 승마, 사냥 등의 귀족 문화를 누렸으면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가 장애를 갖게 된 후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를 홀대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홀대 받으며 홀로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자연스럽게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림을 배우며 재능을 발견하게 된 그는 여러 유명 선생들의 수업을 받으며 작품을 그려나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며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된다. 둘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던 고흐와 육체적인 고통을 가지고 있었던 로트렉은 서로 공감할 수 있었기에 남들보다 돈독한 친구로 발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로트렉이 그린 고흐의 초상화에서 고흐 특유의 붓터치가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고흐가 로트렉에게 그림을 많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흐는 알코올을 무척 사랑했었지만 술을 살 돈은 없었고, 이를 지켜본 로트렉은 그에게 매일 같이 압생트를 사주기 시작한다. 고흐는 그 대가로 로트렉에게 그림을 알려주며 서로 이득이 되는 관계 -라고는 하지만 비즈니스가 아닌 우정이 강했던- 를 유지하였다.

 

그 후 로트렉은 슬럼프와 더불어 정신병을 앓게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의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도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입원을 하면서도 매일 같이 그림을 그린 그는 결국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는 연필로 자유를 샀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으로 나온 그는 파리의 밤 문화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는 퇴근을 하면 꼭 들리던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매춘 시설이었다. 그는 그곳에 보금자리를 잡고 당시 가장 낮은 취급을 받던 여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그는 직업 여성의 성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닌 빨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는 일상적인 모습을 그림으로써 그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있음을 세상에 알려주었다. 그도 소외 받는 삶을 살았었기에 소외 된 다른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직업 여성을 그림과 동시에 공연 포스터 또한 제작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제인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아리스티드 브뤼앙'의 공연 포스터를 그리며 그들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포스터 제작 초기에는 미니멀하고 모던한 그의 화풍 때문에 광고주 측에서 포스터 사용을 거부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며 동시대 화가였던 '알폰스 무하'와도 그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그의 그림은 상승세를 타게 되었다.

 

파격적인 그림으로 인기를 끌어 명예를 얻은 로트렉은 그렇게 평생을 행복하게 살 줄 알았지만, 선천적인 병들로 인해 빠르게 몸져 눕게 된다. 그는 '어머니, 평생 저는 어머니 하나만 곁에 있군요.'라는 말로 자신을 평생 곁에서 지켜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며 3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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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보다는 진실을 그린 화가


 

그는 그림은 풍경이 아닌 결국 인물이라는 가치관을 가졌기에 풍경보다는 동물이나 인물 작품을 많이 그려내었다. 이렇게 인물을 사랑한 그는 인물 작품을 그릴 때 한 가지 철칙을 지키며 그렸는데, 그것은 바로 '이상보다는 진실'을 그리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캉캉 춤으로 물랭 루즈의 스타덤에 올랐던 '제인 아브릴'의 공연 포스터를 그릴 때면, 그는 항상 아브릴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내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아브릴의 얼굴은 어떤 때는 무섭게, 또 어떤 때는 슬프게 보이기도 하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아브릴은 예쁘지 않은 얼굴을 가진 자신의 포스터를 보고는 실망을 금치 못하였고, 로트렉에게 예쁘게 그려달라는 부탁도 여러 번 했지만 그는 그 제안을 모두 거절한다. 그저 예쁘게 그리는 것은 '이상'을 그리는 것이기에 그의 철칙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물이 가진 그대로를 그리려 노력했다. 이는 '외적'인 그대로가 아닌 '내적'의 온전한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는 말이다. 그가 아브릴을 다양한 모습으로 그렸던 것 또한 그녀의 내적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브릴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공연 후의 지친 모습까지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그녀의 본질이라 생각하여 마냥 예쁘게 그리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는 아브릴 그림만의 특징이 아닌 모든 그림의 특징이기도 하다. 또다른 유명 가수였던 '이베트 길베르'의 공연 포스터에서는 근엄하고 멋있는 길베르가 아닌, 거만하고 관객을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 길베르가 담겨있다. 당시 관객들에게 욕을 하고 거만했던 길베르의 모습 그대로를 그린 것이다.

 

로트렉은 사람의 겉면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평생 장애를 갖고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야 했던 그는 사람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고 느꼈고, 그런 본인의 경험에 의거하여 더더욱 사람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면을 그린 화가, 툴루즈 로트렉


 

전시를 관람하기 전, 나는 로트렉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평생을 작은 키로 살아야 했던 로트렉은 정말 불행했던 삶을 살았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도슨트님께서는 그가 유머도 많고 성격이 좋아 그 시대의 '인싸'였다는 설명을 듣고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게 되었다.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은 영원히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가진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딛고 최고의 화가로 거듭났다. 나는 이런 그의 성공이 인물의 내면에 집중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가 외적인 아름다움만 중시하고, 그림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았다면 이런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도 가슴 깊숙히 와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만 판단하는 일이 잦다. 내면을 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온전한 뒷모습까지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외적인 가치로 인해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역으로 외적인 가치로 평가당하는 삶에 지치기도 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많이 해 본 사람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지금까지 이런 얕은 가치로 상대방을 평가하고, 또 당했다면 전시를 통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처럼 편견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가더라도, 나올 때 즈음이면 눈 녹듯 사라져있는 편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이 전시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상보다는 진실'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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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展 - 앵콜 전시

- Henri de Toulouse-Lautrec -

 

 

장소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제 1, 2 전시실

 

기간

2020년 6월 6일 (토) ~ 9월 13일 (월)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10:00 - 19:00 / 입장 마감 18시

 

관람요금

성인: 15,000원

청소년: 12,000원

어린이: 10,000원

 

도슨트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5시

전시장 내부 혼잡시 취소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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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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