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통을 살지만 고통만 살지는 않으니까 - 삶이라는 고통

고통이 무한한 만큼, 삶이 무한하다
글 입력 2023.11.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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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까지의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다. 그리고 2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컬러 사진이 등장한다. 2부의 첫 챕터는 ‘홈리스’. 색이 들어간 사진들인데도 1부의 흑백 사진보다 더 어둡고 침울하다. 오히려 채도 없이 밝음과 어둠만 있는 1부가 훨씬 즐겁다.


바로 이어서는 ‘거리의 악사들’이 나온다. 거리를 배경으로 서거나 앉은, 썩 깨끗하지 않은 차림을 한 사람들의 사진이란 건 홈리스와 별반 다를 게 없는데도 악사들은 전혀 우울하지 않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도 미소가 보이고, 관객이 보이지 않아도 시선이 보인다.

 

악기가 하나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사진에 이렇게 큰 차이를 불러올 수 있는 걸까?

 

 

KakaoTalk_20231103_213446528.jpg

 

 

사진은 순간 포착이다(p.13). 그러니까 우리는 그 사진이 실은 일련의 순간들에서 빠져나온 점 하나라는 것을 안다. 사진 한 장으로도 그 장면의 전후 맥락과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엿본다. 아무도 사진이 그 장면 하나로 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기타를 들고 있는 남자의 사진을 보고, 그 남자가 기타를 품에 안고 왼손으로는 현을 누르며 오른손으로는 허공을 스치는 채로 가만히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 현장을 채우는 음악을 상상해 낼 수 있다. 그것이 사진 속 악기가 만들어 내는 차이다.


사진이 순간의 포착이라면 악기는 음악의 포착이다. 악기가 음악을 상상하게 만들 때 사진은 인생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러분, 나의 젊은 시절의 필름 사진을, 때로는 희미하고, 때로는 포커스가 안 맞더라도 내 인생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보여드립니다.

 

(p.13)

 

 

 

항상 고통



한대수_표1.jpg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항상 고통 속에 있다. 삶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끝없이 걸어가는 것이다. 아무도 삶의 끝을 모르기 때문이다.

 

(p.201)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이라는 말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눈에 띈다.

 

아마 본인이 남들 눈에는 ‘항상 고통 속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그의 글은 유쾌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활기차다. 사진 또한 무게 있을지언정 무겁지 않고 어둠이 있을지언정 어둡지 않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살아간다.


그래서 고통을 살아간다. 고통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면 고통이 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통을 안다는 것은 고통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임을 안다는 뜻이다. 저자는 고통스럽지 않은 순간을 알고 있고 충분히 포착했다.

 

그는 항상 고통 속에 있었지만 항상 고통 속에'만' 있지는 않았으리라.

 

 

 

마지막 고통



저자는 군 복무 당시 베트남 전쟁을 지켜보며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전쟁일 거야(p.276)”라고 말했다고 한다. 50여 년이 흐른 지금, 저자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더욱 큰 비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p.276).


마지막 전쟁, 마지막 비극이란 건 아마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아무리 많이 노력해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 전쟁과 비극만은 아니기 때문에.


예브게니 자먀찐의 디스토피아 소설 ‘우리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은 혁명군을 만나고 큰 충격에 빠진다. 지금의 국가원수가 일으켰던 혁명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혁명이라고 생각했던 그에게는, 새 혁명을 준비한다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런 주인공에게 혁명군이 말해준다. 마지막이란 없다고. 혁명이란 무한한 것이라고.


전쟁이 무한한 만큼, 혁명이 무한하다. 폭력이 무한한 만큼, 예술이 무한하다. 혐오가 무한한 만큼, 사랑이 무한하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올 수 있는 결과라면, 그것의 마지막이란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고통이 무한한 만큼, 삶이 무한하다.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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