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경상도 차녀가 읽은 장녀들 [도서]

글 입력 2020.06.27 18: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는 2녀 중 차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지워질 뻔한 둘째이다.

 

엄마를 검진했던 산부인과 의사는 엄마와 아는 사이였고, 첫째가 딸인 것을 알았다. 공교롭게도 이모들 모두가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 순서로 낳아 모두가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남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필 태몽도 고추밭이 나와서 장군감 아들이 나온다고 굳게 믿었다더라.)

 

의사는 딸인 것을 알고는 엄마에게 둘째는 아들이 맞지만, 다운증후군 증세가 보인다며 낙태를 권유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낳겠다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아주 건강한 둘째 딸이 태어났다. 엄마의 결정이 아니었으면 나는 지워졌을 존재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나와 언니는 종종 지워질 뻔한 존재와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서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언니와 내가 『장녀들』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혼 장녀의 이야기



[크기변환]장녀들 표지.jpg

 

 

『장녀들』은 고령화와 비혼율의 급격한 증가 등의 사회 변화의 틈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병간호하는 나오미, 어머니를 향한 애증으로 고통스러운 게이코, 아버지를 버렸다는 죄책감을 겪는 요리코까지. 세 장녀의 이야기는 우리와 밀접하다. 이미 세 여성의 이야기는 단순한 픽션이 아니다. 곧 도래할 미래이며 이미 현실이 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20년 후의 한국 사회를 알고 싶다면, 현재의 일본을 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장녀들』이 오싹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마치 이 이야기가 논픽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식으로서 그저 귀여워하고 예뻐하는 건 차녀지만 기대하고 의지하는 건 장녀다.”

 

_장녀들 14p

 

 

나오미는 여자의 인생에서 남자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밥벌이 수단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오미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다가올 독신 여성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게이코 역시 마찬가지이다.

 

 

“... 홀로 가족 앞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어머니의 딸도, 아버지의 퍼스트레이디 노릇도 당장 그만두고.”

 

_225p

 

 

게이코는 어머니를 향한 애증으로 괴로워한다. 이는 누군가의 ‘딸’이라면 대다수가 공감할 이야기일 것이다.

 

최근 인터넷에서 딸들이 어머니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하지 말고, 자신을 낳지 말고 하고 싶은 데로 살라고 말한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이는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존재를 바라보는 안타까움과 애증이 섞인 말이다. 이는 당사자성을 공유하는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말이자, 대물림되는 말이 된다.

 

 

 

장녀의 상징성


 

『장녀들』에서는 일본의 현실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소설 속 나오미의 여동생, 요리코의 오빠, 게이코의 남동생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아무도 돌봄노동을 하지 않고 부모조차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장녀란 상징적이다. 만약 자신이 처한 현실에 외면하면 차녀가 그 일을 물려받게 된다. 오빠나 남동생이 있다고 한들 그들은 그 굴레에 포함되기 어렵다. 남성 대신 며느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사회에서 노인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주로 며느리였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여성은 착함을 강요받는다.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개호소설에서는 남편, 아들, 혹은 손자의 개호를 다룬 소설이 인기를 얻었다. 왜 여성의 존재는 없었는가? 이는 여성의 개호가 너무나도 ‘일상’적이라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아 독자의 관심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초고령 사회가 다가오는 건 시간문제이다. 비혼율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간병은 거대한 문제가 된다. 요양 병원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금전적인 지원을 해야 할 자녀들의 부담감도 늘어난다.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다가오는 초고령 사회, 돌봄노동, 학대, 소외 등의 문제 속에서 개인이 대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다. 우리가 『장녀들』 속 세 여성의 아주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들에서도 공감하는 것도 이것이 절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ISBN
978-89-93166-09-5


 

[크기변환]20200603213934_yigfwonq.jpg

 

 

[이승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