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계의 심연에 매몰된 두 자매의 탈출기 - 영화 '딥워터'

글 입력 2020.06.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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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재난 영화를 보는가.

 

세상의 어느 이야기든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한 선과 악의 대립과 옳고 그름을 다룬다. 물론 재난 영화에도 인물 간 선악의 대립이 있지만, 이야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선이나 악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아주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 자연. 그 앞에서 모두 미약하고 평등한 생명체가 될 뿐인 인간은 생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집중한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이전에 원초적인 생존의 본능이 있다. 다양한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현대임을 짐작하자면 재난 영화는 원시로의 일탈을 희망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일지 모른다. 오직 생과 사만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 플롯 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짜릿함을 맛본다.

 

물론 단순히 짜릿해서만은 안된다. 재난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갈망하는건 모든 것을 잃고 죽어가는 절망이 아니다. 대 재난에 압도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나려 애쓰는 인간의 의지와, 피투성이가 된 너덜이는 몸일지언정 생존의 기쁨과 안도를 느끼는 모습을 기대한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삶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인간과의 연대다.

 

위기의 순간 생의 의지를 지탱하게 만드는 것은 한낱 미물일 인간과의 연약한 약속과 관계에 있다. 모든 것을 덜어내고 오직 생존의 문제만이 눈 앞에 남아있을 때,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인간을 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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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차가운 물 속, 숨통을 조여오는 긴장감


 

영화 <딥워터>는 아버지가 다른 이부자매 이다와 투바가 차가운 노르웨이 바다 속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재난 영화가 대체로 그렇지만 아주 간결한 스토리라인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난 언니 이다와 동생 투바가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가, 스쿠버다이빙을 하던 중 낙석에 의해 투바가 돌에 깔리고 만다. 이다는 다행히 동생을 찾아내고 투바 역시 멀쩡한 상태였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추가로 가져온 산소통과 돌을 움직일 지렛대를 찾기 위해 이다는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는건 낙석 때문에 파괴된 산소통과 열리지 않던, 심지어 여는데 성공했지만 지렛대는 커녕 텅 비어있던 트렁크 뿐이었다. 이렇게 해결책을 찾아가는 와중에도 물 속에 잠겨 호흡이 가빠올 투바를 생각하면 손끝이 떨린다. 수심 33m의 깊은 해저. 이 극한의 상황은 제한 요건이 너무도 많다.

 

차가운 수온으로 체온이 떨어질 염려는 물론 가장 중요한 산소의 부족이 치명적이다. 동생을 구조하려는 이다 역시 매 순간 목숨을 걸고 다이빙한다. 물의 압력으로 인해 지상과 바다를 오갈수록 신체는 망가져가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 중 이렇게 한정된 장소에서 짧은 시간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는 <딥워터>가 처음이었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재난 상황이 펼쳐진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던 중 재난 상황을 맞닥드렸다는 설정 특성상 사건 발발 후 모든 것이 급속도로 흘러간다. 굉장히 단순한 만큼 엄청난 긴장감과 박진감을 심어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심지어 재난 상황을 이끌어가는 건 오직 두 사람과 막막하게 펼쳐진 바다 뿐인데도 지루할 틈은 커녕 몰입도가 대단하다. 극한 상황을 관람객이 체험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해 생생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바다와 인간과의 사투를 지켜보기가 아찔해 몇번이고 귀를 막고 손바닥에 손톱을 박았다.

 

이 같은 생생한 연출은 실력을 인정받은 제작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바다 속의 신비롭고 압도적인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등의 수중 연출을 담당했던 제작진이 참여한 것이다. 아울러 세계에서 가장 큰 벨기에 브뤼셀의 수중 스튜디오,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겨울 해안에서 촬영함으로써 더욱 입체적인 영상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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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매 이다와 투바의 관계 재건기


 

영화 <딥워터>는 자극을 추구하는 단순한 재난 영화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이부자매 이다와 투바의 관계성을 면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막연할 정도로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드넓은 바다마저도 이다와 투바의 관계를 잉태하고 표출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맡는 것처럼 보인다. 단순히 바다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삶과 관계가 무너지고 다시 재건되는 과정을 다룬다.

 

언니 이다와 동생 투바는 사실 조금 위태로운 관계다. 함께 잠수하며 놀던 어릴적 투바가 수중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칠뻔 했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동생을 챙기지 못한 이다를 비난하며 이 아이가 죽으면 네 탓이라 일갈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 둘의 성장과정과 가족관, 관계성을 짐작케 만든다. 아마도 이다는 동생 투바가 때로는 마음의 짐이고 때로는 죄책감을 자극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남편과 낳은 자식이었으며 어머니와 시간을 더 함께 보낸 투바였기에 자신보다 끈끈한 가족의 정을 안고 있는 그녀를 보며 질투하기도 했을 것. 그래서인지 이다가 투바를 대하는 모습은 불안정하다. 불안한 가정사를 겪었던 영향인지 이다는 남편과의 불화로 가족이 와해될까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동시에 이를 피해 도망쳐온 어머니와 투바에게마저 자신이 모르는 그들만의 추억이 있음을 느끼고 불쾌해한다.


투바가 바다에 수장될 위기에 처한 후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바뀐다. 이다는 자신이 또 가족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가 될까,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이 동생을 구하지 못해 동생을 잃고 또다시 자신이 죄책감 속에 살아가게 될까 염려하고 걱정한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이다는 반복된 잠수로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동생 투바 역시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는 언니를 지켜보며 침착하게 상황을 논의한다. 동생이 바다에 잠긴 이 상황에 패닉이 온 언니를 오히려 침착하게 달래고 소통을 이끌어내며 같이 살아남자는 희망을 전한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잠수 초반 바다 속 작은 동굴 벽에 그려진 어머니와 투바의 그림을 보며 외로워하던 이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시점 이다는 투바와 함께 그 동굴에서 잠시 머무르며 생존의 기쁨을 만끽한다. 결국 물 밖으로 함께 나온 순간, 그 순간은 끊어질 뻔 했던 삶이 다시 이어질 것임을, 그리고 그 둘의 관계 역시 다시 더욱 단단하게 이어져갈 것임을 암시한다.

 

함께 생존의 위기를 극복해낸 그 둘은 아마도 이전과 다른 일상을 그려갈 것이다. 노르웨이의 바다보다 관계에 심연에 더욱 깊고 오래도록 매몰되어 있었던 두 자매는 그 안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더이상 관계의 결핍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감사함을, 힘들 때면 서로 붙잡을 수 있는 두 손으로 느끼며 생존의 기쁨 그 이상의 굳건한 관계와 행복을 누려가지 않을까.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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