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 하나뿐인 나의 단짝에게 : 나의 눈부신 친구 [도서]

도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통해 되감는 어린 날의 기억
글 입력 2020.06.2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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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유년 시절과 사춘기를 떠올려 본다. 항상 내 옆에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있었다. 특히 '한 명'의 친구. 성향 때문인지 어느 집단에 있든 붙어 다닐 친구 하나가 생기면 그 외의 존재들에게는 관심이 안 생겼다. 마치 나와 친구가 무대의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은 엑스트라인 것처럼.

 

친구가 일생에 단 한 명인 건 아니어도 가장 친한 친구는 어느 시기든 한 명이었다. 이 버릇은 지금도 여전하다. 도서 '나의 눈부신 친구'의 주인공 레누도 비슷한 모습이다. 다른 친구들도 많지만 가장 마음을 나눈 친구는 '릴라' 하나다.

 

책은 '나폴리 4부작'이라고도 불린다. 1950년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한 시리즈물이기 때문이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그중 1부, 시리즈의 처음이다. 목차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것처럼 유년 시절과 사춘기, 단 두 개다. 그만큼 레누라는 인물의 환경, 생각, 주변인, 변화 등을 따러 가기 쉬운 구조를 가진다. 특히 레누의 생각과 심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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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게 또래 친구는 곧 전부였다. 친구와 같이 무언가를 하고, 먹고, 배우고, 같이 다니고, 놀고, 쉬고. 고등학교 무렵엔 이 생활패턴이 더욱더 자연스러웠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말이다.

 

레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유년 시절에는 릴라에게서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릴라는 아주 똑똑하다. 어려운 셈도 암산으로 해내고, 소신껏 행동하고, 주관이 뚜렷하고, 행동력도 좋다. 레누는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똘똘 뭉친 릴라를 '오만'이라고 표현한다. 그 모습이 싫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릴라의 오만은 레누가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릴라는 레누를 한 번에 압도했다.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선생님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레누는 점점 자신이 그 자리에 앉는 빈도수가 줄어듦을 느꼈다. 여기서 레누의 반응이 재미있다. 무력감이나 시기를 느낄 만도 한데 오히려 릴라를 받아들이고 자신보다 뛰어남을 인정한다.

 

레누가 릴라를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존경하기에 이른 지점은 아마 반 대항전 아니었을까. 릴라와 레누의 학급과 다른 학급 간 경쟁이었는데, 반에서 대표 두 명씩 나와 문제의 답을 맞히며 최종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 레누는 초반에 탈락하고, 릴라는 상대의 정답율에 맞춰 자신의 실력을 조절한다. 뜻밖의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해 릴라와 견줄 만한 지식을 드러내자 릴라도 진심으로 대결에 응한다. 결국 승자는 릴라였다.

 

이 장면 묘사는 굉장한 들뜸과 긴장, 놀라움과 환희가 뒤섞였다. 레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라서 결국, 이 감정은 모두 레누의 것이었다. 릴라를 보며 레누가 얻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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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하던가. 만년 2등일 것 같던 레누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얻으며 선생님들에게 사랑받는 뛰어난 모범생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올리비에로가 자신을 수제자처럼 챙기려 들자 레누는 뿌듯함을 느낀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진 않았다. 어머니와의 갈등을 겪고 어렵게 중학교를 입학한 후, 레누의 첫 성적은 엉망이었다. 릴라는 집안의 반대로 아예 중학교 진학을 못 했다. 이제부터는 단연 자신이 일등일 줄 알았으나 잘난 사람은 쌔고 쌨다. 레누에게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여기서 릴라의 명석한 두뇌가 빛을 발휘한다. 라틴어, 그리스어 등 레누가 어려워하는 과목을 예습하고, 일대일 과외를 하듯이 레누의 공부를 도왔다. 릴라 집은 궁핍했지만, 사람은 적당히 있었다. 릴라, 릴라의 오빠 리노, 어머니 눈치아, 아버지 페르난도로 총 4명. 릴라는 도서관에서 가족 모두의 이름을 사용해서 책을 잔뜩 빌렸다. 한 사람당 빌릴 수 있는 책이 2권이라 쳐도, 릴라는 8권을 한 번에 읽을 수 있던 셈이다. 게다가 한 책을 오래 보기 위해서 자신의 이름으로 빌린 책을 반납한 후에 다시 가족의 이름으로 빌릴 수도 있었다. 레누를 가르치기 위해 빌렸던 문법책도 이런 식으로 지녔다.

 

옳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릴라에게 도덕성은 중요치 않았다. 실용과 기능이 훨씬 의미 있었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두뇌를 가졌음에도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자신을 좋아하고 따르던 레누는 계속 공부할 수 있다. 레누에게 공부를 가르쳐준 덕분에 레누의 성적이 오른다면, 자신은 여전히 뛰어나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처음엔 이랬을 것 같다. 레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식으로.

 

릴라의 가업인 구둣방, 오빠 리노와 힘을 합쳐 아버지 몰래 만든 구두, 릴라의 사랑을 갈구하는 부자, 대안책 스테파노, 그리고 결혼.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릴라는 공부를 아예 손에 놓고 레누와 전혀 다른 방향을 걷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1권에서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 결혼도 마무리된 이야기가 아니다.

 

레누가 워낙 릴라를 존경하고 좋아해서 책 제목은 릴라를 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릴라가 레누를 표현한 말이었다.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레누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릴라가 직접 전했다. 눈부신 친구가 된 시작점이 어디일까. 릴라가 학업을 완전히 놓은 후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하며 열심히 살아간 레누를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을 거다. 릴라의 솔직한 심정은 왜 책에 잘 드러나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이유를 레누의 가려진 열등감에서 찾았다.

 

릴라만큼 레누도 대단한 사람이다. 어느 누가 '나도 친구처럼 잘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밤낮이고 노력해서 이상을 현실로 만들까. 그것도 성적이 떨어지면 공부 따위는 관두고 집안일이나 하라고 강요받는 상황에서. 릴라의 뛰어남을 닮으려 노력하던 레누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로는 릴라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고등학교까지 훌륭한 성적을 유지했으나 말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때도 레누는 릴라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다름 아닌 남자 때문에. 릴라에게는 남자가 꼬였다. 가난한 남자, 생활력 있는 남자, 돈 많은 남자, 그리고 사업하는 남자. 릴라는 자기 집안에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업하는 남자를 택한다. 레누는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릴라의 능력은 발휘되지 못하고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아니, 앞에서 살짝 언급한 대로 정확히는 모른다. 릴라의 분노를 살 만한 존재가 등장했으니까. 릴라라면 그 상황 자체를 뒤엎을 수도 있다.

 

레누의 기준은 릴라인 것 같다. 릴라보다, 릴라만큼, 릴라처럼, 릴라와는 달리 등 자신과 릴라를 비교하는 표현이 많다. 비교는 우열을 나타낸다. 레누에게 '우'는 릴라, '열'은 레누 자신이었으므로 릴라를 롤모델처럼 존경하던 마음에 열등감이 섞일 수밖에 없었다.

 

레누가 지닌 열등감과 경외심은 끝으로 갈수록 강해진다. 릴라에 관한 레누의 생각이 앞으로는 어떨지, 어떤 변화가 생길지, 레누와 릴라는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 궁금한 이야기가 많다. 다음 권을 언제 읽어볼까 검색하다가 발견한 드라마 소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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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에서 제작한 원작 기반 드라마를 왓챠플레이에서 단독 공개 중이다. 현재 시즌 2까지 스트리밍 가능한 상태다.

 

시리즈 물의 묘미를 오래간만에 느껴본다. 지금 자라날 아이들은 나폴리 4부작을 보며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될까. 내 또래는 해리포터를 보고 컸듯이.


 


 

 

나의 눈부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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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엘레나 페란테

 

옮긴이

김지우

 

발행일

2016년 7월 7일

 

쪽수

456쪽

 

펴낸곳

한길사

 

가격

14,500원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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