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공부는 돈이고, 지능이 경쟁력이라면. - 능력주의

글 입력 2020.05.2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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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정한 무한 경쟁 사회


 


"그동안 능력주의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숭배하기까지 했다. 그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한다는 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 <능력주의는 허구다>, 스티븐 J 맥나비,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개인은 자신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받아야 한다. 능력주의의 핵심인 이 문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정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정함은 개인의 능력을 정확하게 측정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큼 노력하지 않은 사람, 정당하게 이 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지위와 대우를 받는 건 불공정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이런 인식은 집단 간의 위계와 차별을 만든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 학교 내에서 성적에 따른 학생 차별, 최종 학력, 학벌에 따른 차별 같은 차등 대우가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며, 이를 완화하는 건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대한 부당한 손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계 구조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끝없이 서로보다 더 효율적인 인재가 되고자 경쟁해야 한다.

 

능력주의에 따른 차별이 시작하는 건 교육 부문이다. 한국 청소년의 입시 경쟁은 기괴할 정도로 심하고, 청소년의 공부 시간, 학업 스트레스 비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다. 아이들이 압박감 속에서 이토록 오래 공부하는 건 왜일까? 가장 큰 이유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고,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사소한 모욕이 오가는 등, 학교가 성적에 따른 서열화로 학생들을 구분하는 일은 흔하다. 2019년 서울시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생 인권 실태조사 설문에서 학교 내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41.6%였다. 이 때 차별의 이유 1위가 성적(29.6%)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습한 경쟁심과 낙오하면 안된다는 위기감은 이들이 사회에 진입해서도 끝나지 않는다. 직업을 둘러싼 위계 질서가 기다리고 있다.


 

FireShot Capture 078 - [10대 부모 필독] 잘 놀아야 공부도 잘 한다. 행복지수 꼴찌 한국 청소년, 공부스트레스 해소 집중력 향상 성적 쑥쑥 올리_ - m.blog.naver.com.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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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런 식의 위계가 정당한 기준이라고 말하는 '능력주의'란 정확히 무엇일까?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영국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이 출간한 풍자 소설<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 속에서다. 마이클 영은 이 단어를 통해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가치관이 얼마나 위험하게 흐를 수 있는지 말하고자 했다. 1958년 처음 출간된 이 디스토피아 소설은 지금까지 능력주의에 관한 칼럼이나 논문 속에서 짤막하게 등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4월, 이매진 출판사가 이 소설을 <능력주의>로 번역 출간하면서 한국어로도 능력주의 담론의 시초를 만날 수 있다.

 

 

 

2. 지능 + 노력 =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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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마이클 영은 1915년 영국에서 태어나 2002년 세상을 떠났다. 사회학자, 사회운동자로서 '능력주의' 단어를 처음 만들고, 영국 곳곳을 다니며 사회 활동을 벌이며 대학과 교육 관련 운동, 지역 사회 운동에 헌신했다. 영은 능력주의라는 단어가 없을 때부터 이 이데올로기에 내재한 불평등을예견하고 위험성을 설파하고자 노력했다. 능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추상적 가치관에 개념을 정의해 형상을 부여한 만큼, 선구안적 시각으로 능력주의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한 사상가이다.

 

2034년 영국이 배경인 <능력주의> 속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식은 '지능+노력=능력'이다. 능력은 국가가 장려해야 할 것이며 모든 방해를 제거해 최고의 잠재력을 발휘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능력에 따라 사람들의 격차와 보상이 주어진다. 위계 간 간극이 심화하면서 가내 하인이 다시 등장하고, 극심한 빈부격차, 하층 계급의 마비 등 암울한 시기가 이어진다.

 

 


3. 엘리트의 부상/ 하층 계급의 쇠퇴


 

왜 영국은 이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된 걸까? 작가는 1부와 2부로 나눠 어떻게 영국이 극심한 엘리트적 계급 사회로 변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장르는 소설이지만 사실은 한 권의 논문 같은 딱딱한 문체다.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영국 사회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1944년 교육법 제정 이후로, 영국은 능력주의 가치관을 수용하고, 교육 체계를 이에 맞춰 수정한다. 사회주의자들의 '균등한 기회' 요구에 맞춰 세습제는 능력제로 대체된다. 계급을 가리지 않고 영리한 인재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후에 국가 인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한 지능 검사가 발달한다. 이제 모든 아이들은 정확하게 예측 가능한 지능 검사를 받고 그에 적합한 교육을 받는다. 더해, 하층 계급 아이들이 혹시나 가족을 위해 일찍 돈을 벌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선별된 그래머 스쿨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학생 수당'을 지급한다. 이는 산업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보다 60% 높다. 영리한 학생들은 공부한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육체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의 간부 역시 그럴듯한대학 졸업장을 가진 젊은 층이 차지했다. 기존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을 거쳐, 어려운 길을 헤치고' 지도자가 된 사람이야말로 노동조합을 지도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사회의 흐름은 더 이상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머 스쿨만큼 어려운 과정을 헤치고 올라가는 길은 없기 때문이었다.'(p.137) 노동조합의 상층부는 졸업장을 가진 '능력있는' 인재들로 채워졌다. 실제로 노동하는 사람들은 '우둔한' 노동 하층 계급 사람들이다.

 

능력주의가 가장 빨리 도입되는 곳은 군대다. 긴급 상황인 전쟁만큼 기존 가치관을 뒤엎는 효율성을 원하는 순간은 없다. 군대가 만들어낸 인재 분류 방법(지능 검사에 따라 부대를 배정하는 방법)이 국가가 시민을 분류하는 방식이 되었다. 능력주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누르는 건 국가 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위기의식, 경쟁심이다.

 

도대체 무엇에 대해, 무엇에 관해 이기기 위해 국가(책 속 영국)는 개인의 삶을 관리하는 걸까? 엘리트주의가 부상한 이유에는 민주주의라는 공평성에 대한 욕구는 높았으나, 민중의 내면에 위계 질서 가치관이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능력제에 의한 사회 개혁은 하층 계급을 쇠퇴시켰다. '사람마다 능력에 따라 인생의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권고가 도출'됨에 따라 사람들은 지적으로 우수한 사람을 최상층으로, 열등한 사람을 하층으로 구분한다는 시스템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기계의 발달, 지능 검사를 통한 사전 능력 지수를검사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회사가 원하는 능력 지수에 미달하는 사람은 탈락한 이들은 '잉여 노동력'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관리하기 위해 국가는 가내 하인 제도를 부활시킨다. 잉여 노동력인 사람들은 하인으로서 상층 계급에 복무하고 충분한 복지, 교육을 받았다. 각자 맡은 업무가 있는 상황에 기반해 수입을 얻는 상황에서 하인 노동이 인권을 침해한다고 말할 사람은 없었다.

 

하층계급은 자신이 기회가 없어 열등한 위치에 있는게 아니라 기회를 주어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걸 받아들였다. 직업에 따른 연봉 차이는 극심하게 벌어졌다. 책 속 화자는 육체 노동자들이 우둔한 사람들로 채워졌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 하락에 반발할 능력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이 세계에도 지능 평등주의자, 노동자의 지위를 염려하는 포퓰리스트들이 존재하지만 이들의 힘은 미약하다. 하층계급은 자신들을 대변할 사람과, 반박할 근거를 잃으면서 서서히 쇠퇴했다.

 


 

4. 첼시 선언


 

상당히 우울한 세계관이지만, 작가는 능력주의를 넘어서는 가치가 무엇인지 언급하는 걸 잊지 않는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첼시 선언>이다. 이 선언은 능력에 따른 보상이 아닌,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짧지만 그만큼 울림이 깊다.



"계급 없는 사회는 다양한 가치를 소유하는 동시에 그런 가치에 근거해서 행동하는 사회가 되리라. 우리가 사람들을 지능과 교육, 직업과 권력만이 아니라 친절함과 용기, 상상력과 감수성, 공감과 아량에 따라서도 평가한다면, 계급이 존재할 수 없으리라. 어느 누가 아버지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춘 경비원보다 과학자가 우월하며, 장미 재배하는 데 비상한 솜씨를 지닌 트럭 운전사보다 상 받는 일에 비상한 기술이 있는 공무원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계급 없는 사회는 또한 개인적 차이를 수동적으로 관용할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장려하며, 인간의 존엄성이 마침내 그 온전한 의미를 찾게 되는 관용적인 사회가 되리라. 모든 인간은 어떤 수치적 잣대로 비춰 봐 세상에서 출세할 기회가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이끌기 위해 자기만의 특별한 역량을 발전시킬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게 되리라."


- p.268


 


5. 진정한 기회 균등을 위해



마이클 영은 능력주의를 경고하려는 생각에서 이 책을 썼지만, 대중은 오랫동안 <능력주의>를 현대 세계의 조직화 원리를 냉철하게 '예언'한 책으로 받아들였다. 능력주의는 여전히 현대 사회가 떠받치는 신앙 중 하나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마이클 영이 능력제가 부상하던 시기와 매우 흡사하다. 수능 비리, 입시 조작 관련 사건은 공분을 사지만, 학벌주의와 과도한 입시 경쟁, 대학 서열화를 문제시 삼는 뉴스는 그만큼 이슈가 되지 않는다. 이런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말할 때도'그러니까 공부를 잘 했으면 되지 않느냐. 자기가 부족한 걸 사회 탓 한다' 등의 경멸이 다수다.

 

결국 흙수저, 금수저 담론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가 문제라고 여기는 건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다. 상층부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당연하며, 추구해야 할 것이라는 믿음은 굳건하다.


그러나 평등을 말하면서 능력주의를 추구할 수는 없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적 보상이라는 능력주의 개념은 그 자체로 차별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박권일은 서평에서 능력주의는"평등을 표방했지만, 실은 차별을 반대하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을 도입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능력주의는 차별주의이며, 형식적 공정성을 추구할 뿐 실질적 공정성 나아가지 못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라는 평등 주의를 침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 민주주의가 도래한 사회를 위해선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 어떻게 공정하게 계급을 부여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계급이 사라진 사회를 꿈꿀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은 사람도 더 못난 사람도 없이,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서 원하는 삶을 자기 뜻대로 살아갈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사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이 사회에 가까워지기 위해, 우리의 현재 삶을 주의깊게 살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익혀온 능력주의 사고가 차별, 신분제과 밀접히 연관되며 교육 제도가 어떻게 이런 차별 의식을 가르치는지 60년 전에 예견한 <능력주의>의 통찰은 현재도 유효하다. 오히려 젊은 층을 위주로 능력주의가 곧 공정함이라는 인식이 심해지고 있는 지금, 이 책의 출간이 가장 반가운 순간이기도 하다.

 

 


 

 

능력주의

The Rise of the Meritocracy


2034년, 평등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엘리트 계급의 세습 이야기

 

저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

 

옮긴이 

유강은

 

쪽수

319쪽

 

발행일 

2020년 4월 6일

 

출판사

이매진

 

ISBN

979-11-5531-115-8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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