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신만의 달을 보는 전시 -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전시]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글 입력 2020.05.23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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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특별전>은 문화복합물 '안녕인사동' 지하 1층에서 올 4월 29일부터 9월 13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흥행한 <인사이드 마그리트> 전시 구성에 AR 증강현실, 영상 기반 체험물, 교육 체험물 등의 콘텐츠가 추가되었다.


특별전이라는 명칭에 맞게 르네 마그리트의 역사를 총망라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한 작품 수를 보여준다. 회화는 물론 사진과 직접 찍은 영화 등 총 160여 점에 달한다. 다양한 매체와 기술을 활용하였기에 마그리트의 실제 작품 대신 아시아 최초로 멀티미디어 체험형 방식으로 전시를 꾸렸다. 초현실주의의 이질성과 기발함을 21세기의 기술로 몸소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점은 수동적으로 관람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최근 경향과도 걸맞은 형식이라고 본다.


전시는 세 갈래의 흐름으로 연결되었다. 우선 마그리트의 전 생애를 살펴보며, 내·외부 환경에 영향받아 변화하고 발전한 그의 화풍을 보여준다. 설명이 많다고 느낄 정도로 충분하므로 초현실주의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품은 관람객도 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이어질 '플레이 존'을 위한 사전준비라고 해도 무방하다. 증강 현실을 활용하여 관람객이 직접 작품의 일부가 되어본 후,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맞이한다. 전시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앞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

 

은근한 더위가 느껴지던 지난 일요일, 인사동을 찾았다. 오래간만에 접하는 전시회가 반가우면서도 설렜다. 매표소에서 표를 받고, 입장하려던 중 발견한 팻말 하나.


여러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전시라더니 앱도 있었다. 기왕 온 김에 재밌게 즐기고자 '아트픽'을 설치하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물론, 손 소독과 발열 체크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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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퇴근길 한복판에 놓인 것처럼 교통체증을 느꼈다. 무엇이 사람들 발길을 이렇게 잡아두는가 했더니, 마그리트의 연대기가 죽 늘어져 있었다. 사실 본격적인 시작은 이다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그리트가 처음에 고수한 화풍은 무엇인지, 이 화풍이 왜 바뀌었는지, 어떤 풍으로 정착했는지 등이 차례로 연결되었다.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마그리트.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자살하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15년에 고향을 떠나 브뤼셀예술아카데미에 진학했다. 이곳이 마그리트의 시작점이다.


당시 유행하던 미래주의와 입체주의에 입문하며 기하학적인 구도와 다채로운 색채를 그려낸다. 하지만 추상미술 운동에 곧 흥미를 잃고, 친구의 영향으로 다다이즘(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중들이 느꼈던 공포와 불안이 사회 체제에 대한 반발로 바뀌며 발생한 예술운동)에 관심을 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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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데 키리코, <사랑의 노래>

1914, 캔버스에 유화, 79x59cm

 


이 흐름은 192-3년, 초기 초현실주의 시기가 확실해진다. 이탈리아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사랑의 노래> 복제화를 본 것이 계기였다. 마그리트는 이제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로 질문을 바꾼다. 어찌 보면 현실과 거리가 먼 추상미술에서 벗어나 현실, 특히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사물을 그리는 데에 집중한다. 훗날 그가 만든 초현실주의의 밑바탕이 이때부터 그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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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길 잃은 기수>

1926, 캔버스에 유화, 65x75cm

 


이 무렵에 마그리트가 그린 '길 잃은 기수'는 꽤 모순적인 작품이라 기억 남는다.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설명하면서 만족감을 드러낸 작품이지만, 작품 속 인물은 길을 잃은 상태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 붓을 들었을 땐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지 몰라 작품 속 인물에 자신을 투영했다가 완성한 후에야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 아닐까.


마그리트가 쓰는 색채가 유난히 어두울 때와 밝을 때가 있다. 전자는 암흑기라 불리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였다. 암흑기는 말 그대로 검정, 갈색, 짙은 파란색 등 전반적으로 작품이 어둡다. 그래서인지 기괴하고 불안한 느낌이 든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엉뚱한 곳에 재배치한 그의 작품세계는 이때부터 일부 드러났다고 본다. 사물의 고유한 틀에서 벗어나 재해석하고자 메타모포시스 기법을 통해 한 사물이 서서히 다른 사물로 탈바꿈하는 방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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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플레이 존에서는 <세헤라 자드>, <금지된 재현>, <빛의 제국> 등의 주인공이 되었다. 거울을 마주 보았는데도 뒷모습만 보이고, 얼굴에서 눈과 입만 떼어내 보석 일부가 되었다.


나 자신이 작품의 한 부분에 들어가도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마그리트가 현실을 주요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음을 보여준 셈이다. 마그리트의 생각과 의도를 전시 초반부에서 알려주었기에 이런 생각이 가능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이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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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기술, 여기에 마그리트의 작품이 결합하여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오묘한 경험의 장에 놓인다. 천장을 제외한 모든 벽과 바닥이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물들다, 사라지고, 다시 물든다. 붉은 커튼이 드리우며 형태가 가려지고, 커튼이 열리며 형태가 드러난다. 자신의 작품이 고정된 의미로 정해지지 않고, 저마다의 관점으로 해석하길 바라던 마그리트의 염원이 떠올랐다.

 

영상의 커튼뿐 아니라 진짜 커튼도 있다. 이 공간의 왼쪽, 두꺼운 암막 커튼을 젖히면 눈 부신 빛이 모든 색을 뺏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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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손, 발 어느 하나 일상적이지 않았다. 분명 나는 현실에 사는 일상적인 사람임에도. 전시의 의도는 이 방에서 완전히 충족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비현실을 느끼고, 이 괴리감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깨달음을 얻는 것.

 

전시가 여기서 끝났다면 기승전결이 탄탄한 구성이었다고 평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의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관한 짤막한 설명이 이어진 섹션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멀티미디어 기술을 활용하여 장소를 기발하게 한 것도 아니고, 전시 흐름과 이어지지도 않고, 관람객에게 지식을 채워주며 뭔가 얻어갔다고 느끼게 하려는 것 같았다. 전시는 정보의 나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보는 전시의 기획과 의도, 주제를 표현하는 수단일 뿐이지 많은 정보를 한 공간에 넣는다고 해서 전시의 의미가 커질까.


르네상스나 인상파, 혹은 야수파 작품이었으면 멀티미디어 체험형 전시가 오히려 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현실주의 작품, 즉 붓의 터치감이나 색채보다 사물 자체가 주는 의미와 해석이 중요한 작품이기에 기술과 융합된 형태가 잘 어울렸다. 게다가 현실이 소재인 만큼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도 좋았다.


기획 의도와 구현방식은 좋으나 전시 흐름이 마지막에 끊긴 것이 아쉽게 남는다. 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초현실주의, 르네 마그리트, 현재 기술이 돋보이는 전시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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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위치에 있는 사물도 가까이서 보느냐 멀리서 보느냐, 혹은 위에서 보느냐 옆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듯 세상도 그렇다. 저마다 다른 시선, 다른 생각, 다른 가치로 구성된 사람들은 한 가지를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분열과 혼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괴로움은 인간 사회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다르기에 괴롭지만, 다르기에 재밌다. 다만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전자보다는 후자를 느끼길 바란다.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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