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작은 거인, '툴루즈 로트렉 전'

글 입력 2020.04.2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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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스 로트렉> 전시가 5월 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로트렉의 국내 첫 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 헤라클레이돈 미술관의 작품 15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품 모두가 국내에서는 처음 공개하는 것들이다. 물랭 루즈에서 생활하며 그린 포스터, 드로잉, 스케치 등과 일러스트, 수채화 등 로트렉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영상, 사진과 함께 전시된다. 19세기 말 유럽의 벨 에포크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슨트는 요일별로 나눠 정우철 도슨트, 김찬용 도슨트, 한이준 도슨트가 진행한다. 내가 관람한 화요일은 정우철 도슨트가 담당했다.

 

전시 섹션은 총 일곱 개로, '연필 드로잉'부터 '현대 포스터의 선구자 툴루즈 로트렉'까지 시기 별로 로트렉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인상파와 드가에 깊이 영향받은 시기의 작품보다는 물랭 루즈에서 그린 포스터와 스케치 등이 대부분이다. <침대에서>,<숙취> 등의 그림은 없지만, 그만큼 로트렉만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이 가득하다. 정우철 도슨트는 섹션의 흐름에 맞춰 로트렉 삶의 내력을 이야기했다. 이 글은 대부분이 정우철 도슨트의 설명에 의지해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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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남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아기 때는 '작은 보석'이라 불리며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혈통에 집착한 근친혼의 결과는 유전병이었다. 소년 시절 골반을 다친 이후 로트렉의 하반신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았다. 성인인 그의 키는 152cm에서 멈추었고, 로트렉은 상반신은 성인, 하반신은 아이인 기형적 비율의 몸을 갖게 되었다.

 

약한 뼈때문에 활발한 운동을 할 수 없던 로트렉은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는 관찰하는 모든 걸 그렸다. 어머니는 그에게 미술 선생을 붙여주며 로트렉의 재능을 응원했다. 아버지는 승마를 할 수 없는 아들은 없는 취급했다. 로트렉은 항상 연필을 들고다니며 보이는 것을 그렸지만, 정적인 사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동물,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포착해 종이에 붙잡으려 했다. 서커스, 말, 개들의 자유로움 움직임, 이 역동성에 대한 기억은 후에 로트렉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키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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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은 평생 자신의 불구성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는 자화상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해서 그렸다. 그게 로트렉이 본 자신의 모습이었다. 남부러운 것 없는 귀족 집안의 자제였으나, 그는 난쟁이였고 말도 탈 수 없었으며, 모두를 올려다봐야 하는 위치가 그의 시선이었다. 이런 운명에 대한 분노, 원망을 그는 그림으로 풀었다.

 

그런 로트렉의 절친으로 빈센트 반 고흐가 있었다. 전시에서는 구속복을 입은 고흐의 스케치를 볼 수 있다. 밑에 적인 제목이 아니라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든 단순한 스케치다.


이런 스케치는 로트렉만의 방식이었다. 그는 세부적 묘사에 매달리지 않았다. 사물의 본질을 한눈에 포착하고 그것을 순식간에 그려냈다. 본질이 덧입고 있는 것들을 뚫고 알맹이만을 포착하는 게 그의 재능이었다. 이런 묘사 방식이 빛을 본 건 물랑 루즈에서 생활하며 댄서들, 관람객들을 그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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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과 카바레, 창녀과 무희들이 모여 있는 물랑 루즈는 로트렉의 세계였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을 위한 장소를 찾은 듯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다. 본래 귀족 신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면 로트렉은 이런 하층민의 삶에 관심이 없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불구자였다. 그가 보기엔, 누가 봐도 숨길 수 없는 흠이 그에게 있었다. 로트렉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불행이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장애로 인한 폄하에 시달렸던 그에게 몽마르뜨 물랑 루즈는 부랑자들, 가난한 자들,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의 터전이었다. 괴짜가 모여있는 이 곳에서 그의 신체적 기이함에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이런 해방감 아래 그는 인종조명 속의 댄서들, 무대 뒤 댄서들의 모습에 집중했다. 그 음영이야말로 화가가 그려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인상파 화가 중의 드가 역시 무희들을 자주 그렸지만, 드가의 작품은 밝은 빛 아래의 무희들이었다. 그들은 뽀얗고 아름다워 보인다. 로트렉은 드가를 존경해 한때 그의 화풍과 아주 비슷할 정도로 영향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로트렉은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이 드러난다. 그의 포스터는 우키요에의 대표적 특징인 원근법 생략, 완전한 인체 묘사 규칙 무시 등이 돋보인다.


로트렉의 포스터는 누구나 각인할 수 있는 특징을 잡아 소개했다. 누구라도 그의 포스터를 보면 글자를 몰라도 광고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제인 아브릴, 이베트 길베르 등이 그가 포스터로 인지도를 높여준 인물들이다. 기존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기법과 구성력을 갖춘 로트렉이었지만, 의뢰인들은 종종 그의 그림을 반려했다. 로트렉이 자신들을 아름답게 그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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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삶의 그림자 속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했고, 언제나 그들을 그렸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리진 않았다. 로트렉이 그리는 사람들은 인공조명으로 인한 음영이 얼굴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선은 얇고 이목구비는 구불거려 아름답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묘사로 많은 항의를 받았지만 무엇보다 로트렉의 신념은 가식 없음이었다.


자신이 본 세상을 절대 꾸미지도, 미화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에게 세상은 아름답지 않았다. 로트렉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더라도 짐짓 오싹한 어두움을 얼굴과 어깨에 얹고 있다. 아름다움 대신 인물들이 가진 건 각자의 특성(Character)이다. 누군가를 홍보할 때마다 잊지 않고 부여했던 목도리, 장갑, 색깔 같은 것들. 그건 미추가 아닌 그런 사물들이 개인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

 

로트렉은 종종 몽마르뜨를 떠나 매춘굴에 머물렀다. 그는 그 곳에 살면서 그린 매춘부들의 그림을 'ELLES'라는 화집으로 출판했다. 사람들은 에로틱한 그림을 원했지만, 화집에 담긴 건 청소, 빨래, 지쳐 누워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로트렉의 시선에서 사람들이 보길 원한 성적 유희는 이들의 본질이 아니었다. 그들의 본질은 일상에 있었다.


혼자 있는 모습, 혹은 동료와 함께 있는 모습, 이때 이들은 꾸미지 않고, 숨기지 않는다. 누구도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트렉은 이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최하층민, 비천한 사람들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자신의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받은 상처에서 나왔다. 술집 여자, 매춘부를 그린다는 이유로 로트렉은 변태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르누아르는 그의 그림을 이렇게 평했다.

 


"로트렉의 작품은 때로는 포르노 같아 보이지만 언제나 지독하게 처절하다" (They are frequently pornograpic but always desperately sad.)


- 르누아르

 

 

로트렉은 모든 걸 갖고 태어났지만 그 행운을 누릴 수 없는 신체에 자주 좌절했으며, 술에서 위안을 찾았다. 더해 매춘에서 얻은 매독이 겹치면서 그는 1901년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 생애 동안 50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물랑 루즈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그린 로트렉을 작은 거인이라 칭하며 기렸다. 하층민을 주로 그렸고, 그림을 정교하게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예술성이 알려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정이 많고, 세심하며, 세기를 앞서가는 디자인을 구상한 예술가였던 툴루즈 로트렉. 전시 내내 그의 천재성에 감탄했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인물들 얼굴에 내려앉은 명암이었다. 물랑 루즈가, 우리 삶이 품고 있는 빛과 그림자. 로트렉은 그가 본 모든 사람에게서 이 근원을 보았다. 위선과 가식을 벗겨내면 이런 것들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걸까. 불행을 연민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었던 위대한 예술가의 분투. 그 기록을 보고 나오니 어느덧 일곱 시였다. 해는 저물고 바람이 세게 불어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갔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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