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16.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안 돼?

글 입력 2020.04.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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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좋은 것만 보고 살면 안 돼?


 

힘들다. 지치고 답답하다. 매사에 긍정적인 게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그 강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기분이 좋아도 한순간이고 금세 무기력해진다. 취업준비생이라는 상황과 최근 지인에게 들은 ‘넌 너무 너한테 가혹해’라는 말처럼 쉬지 않고 나를 몰아붙인 탓이 제일 클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집착하고 있다. 점심 이후 먹는 아이스크림,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 걸으면서 듣는 음악. 이런 것들을 꾸역꾸역 모아 겨우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당분간 힘든 건 멀리 하고 좋은 것만 보자.’ 두 달 전, 영화 <빈폴>의 라이브톡을 다녀오고 든 생각이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의 모티프가 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감명 깊게 읽었고 평소에도 어두운 영화를 즐겨 봤기 때문에 예매할 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 없이 관람을 즐길 거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어두운 영화를 봐도 괜찮았던 건 내 정신 건강이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빈폴>을 보던 당시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불안한 시국과 그보다 더 불안한 미래에 짓눌려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이 이어졌다. 명료한 해설 덕분에 영화의 난해함과 피폐함이 그나마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만약 그 관람이 라이브톡이 아니었다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 외롭고 막막했을 것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생각했다. 아, 이제 나는 힘든 걸 견딜 수 없는 사람이구나. 밝고 좋은 것만 봐야겠구나.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다시 어두운 얘기를 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정신이 튼튼해진 건 절대 아니다. 어쩌면 그때보다 더 힘들고 약한 상태다. 시도 때도 없이 강박과 불안이 나를 덮치고 깊은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힘든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좋은 것만 보면 안 돼? 답은 ‘안 돼’였다.

 

“좋은 얘기만 하면 안 돼?”

 

2년 전, 밥 먹듯이 어두운 얘기만 꺼내는 내게 전 애인이 던진 말이었다. 그 당시 한국은 혜화역 시위로 뜨거운 상태였는데 그때 나는 매일 분노로 가득 찬 나날을 보냈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기분 좋아지려고 만나는 거니까 기분 좋은 말만 나누고 싶어 했다. 그 말에 대화 주제를 바꾸니 곧바로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분노가 가득 찬 상태에서 밝고 즐거운 일상 얘기만 하려고 하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나도 ‘적당히’를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과열된 상태였다는 것도, 그도 어느 정도 내 말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제 더는 다른 사람에게 분노에 찬 말들을 던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좋은 얘기만 하면 안 되냐고 말했을 때 그가 지었던 피곤한 표정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 표정에 사회가 던진 불안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섬뜩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 다르다고, 꽃밭에 사는 그와 다르게 나는 항상 이 사회의 불편한 부분을 주시하고 들춰내는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 한 사람이 처한 현실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서 나보다 더 힘든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괴로워졌다. 영화나 책은 괜찮았다. 어쨌든 허구니까. 그러나 매일 끊임없이 쏟아지는 살인, 강간, 폭력으로 점철된 뉴스들은 헤드라인 한 줄만 보는 것도 힘들었다.

 

청원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SNS를 통해 전해오는 지인들의 청원 요청을 선뜻 받아들였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니 링크만 봐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외면하고픈 현실이 펼쳐졌다. 애타게 청원을 요청하는 이들의 마음은 알겠지만, ‘어차피 청원해도 바뀌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에 굳센 신념으로 동의를 눌렀던 손가락의 힘도 약해졌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모두 껴안을 만큼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나한테 닥친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열을 올렸던 일들은 모두 나와 관련된 일이었다. 나에게 해당 사항 없는 얘기면 서둘러 외면했다. 기분이 좋았는데 내가 보낸 뉴스 링크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전 애인의 말이 떠올랐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이 에세이를 쓰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좋지 않은 경험을 드러내는 일은 괜찮았다. 내가 꺼낸 상처들은 모두 이미 내 안에서 오랫동안 곱씹어져서 아무렇지 않게 드러낼 만큼 날이 무뎌진 것들이다. 문제는 글 속의 나보다 현실의 내가 더 힘들어지면서 시작되었다.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도 감당하기 힘든데 굳이 또 불편한 이야기를 쓰려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괴롭고 힘든 게 아니었다. 부담스럽고 성가셨다.

 

아무도 내게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안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끝낼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또 이 카테고리에 맞는 글을 쓰고 있다. 매일같이 생기는 글의 소재에 결국 다시 키보드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얘기만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을 좋지 않은 세상이 가로막았다. 그러기 위해선 눈과 귀를 모두 막아야 했다. 26만 명의 가해자와 부대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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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통해 일어난 대규모 디지털 성범죄 사건. 단어는 몇 번 들어봤지만, 엄두가 안 나 자세한 내용은 선뜻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한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N번방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미 이 사회의 어두운 면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밀려오는 청원 링크에 클릭하는 것도 벅차 넘겨버리게 되었다. 이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 그러했다. 그러다 N번방의 청원을 마주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청원 링크를 올리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도 청원 동의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분노하는 것이었다.

 

지인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모두 N번방에 대한 이야기로 물들었다. 그 흐름에 뒤늦게 동참하자 그제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찝찝함이 사라졌다. 드디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한 기분이 들었다. 거창한 걸 한 게 아니었다. 그저 청원에 동의하고 지인들에게 N번방 문제에 관심 가질 것을 독려했을 뿐이었다. 그게 내가 실행한 최선의 분노였다.

 

N번방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몹시 뜨거웠다. N번방과 관련된 모든 청원이 단기간에 엄청난 수의 동의를 받아냈다. 그 뒤에 기대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박사방의 박사 조주빈이 포토라인에 섰고 그의 신상이 모두 공개됐다. 유료 회원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고 있으며 담당 판사가 교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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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나의 경험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적인 폭력’ 열 번째 이야기를 쓰고 난 뒤 친구들에게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은 경험을 얘기하자 모두가 자신이 다닌 학교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이 있어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도 완강하게 먹을 것을 요구받았다고 전했다. 나의 폭력이 나만의 것이 아니듯 다른 이의 폭력도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1년이 되었다는 것과 그때 종각에 나가 큰소리로 낙태 합법화를 외쳤던 작년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시위 현장에 있으면서도 낙태죄가 정말 사라질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분노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있는 힘껏 외쳤다. 그리고 한 달 뒤, 헌법불합치 결정이 이루어졌다.

 

물론 이 세상은 아직 한참 멀었다. N번방을 보자. 검찰은 또 다른 방의 주인인 왓치맨에게 3년 6개월을 구형했고 조주빈의 신상만 공개되었을 뿐 유료 회원들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게다가 그들이 모두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낙태죄 역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낙태죄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을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병폐가 모두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사라지기는 할지 그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분노할 것이다. 만약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사람이 종각에 나가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절대 좋은 것만 볼 수 없다. 글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 순간부터 세상의 부조리와 마주해야 할 운명을 택했다. 이제는 이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옛날엔 행복이 꽃밭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근심·걱정 따위 전혀 모른다는 듯이 살아가는 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이제는 안다. 진흙탕에서도 행복이 피어날 수 있다는 걸. 그곳에서 피어난 행복이 훨씬 더 소중하다는 걸.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오늘도 무겁다. 녹록지 않은 현실, 불안한 미래와 더불어 이 세상의 불편한 이면까지 무수히 많은 것이 내 어깨를 무겁게 누른다.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발걸음이 무겁다고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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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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