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꿈이 절 비참하게 해요 [영화]

휘고 구부러져도, 나는 프란시스 하
글 입력 2020.04.13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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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절 비참하게 해요



자기 직전, 오늘도 넷플릭스로 뭘 볼까 고민만 하다가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난다. 시계를 보니 어정쩡한 11시. 2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기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오늘은 기필코 영화를 보려 했지만 또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버렸다. 머리속은 점점 번잡해져 간다. 왜 서류를 통과 못하는 거지, 내일 기획안은 뭐 제출하지, 그냥 걔랑 헤어질까, 고백할까, 서울살이 외롭다 등. 러닝타임 짧은데 머리속을 차분히 정리해 줄 영화 뭐 없을까.

 

그런 이들을 준비했다. 잠 안 오는 새벽, 오늘도 현실과 꿈의 괴리 사이에서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 당신을 위한 영화, <프란시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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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화 <프란시스 하>는 뉴욕에 사는 20대 무용수 프란시스 할러데이에 관한 이야기다. 남자친구도 있지만 그보단 친구가 좋고, 열심히는 하지만 죽을 만큼은 하지 않는다. 적당히 놀고, 열심히 살아가며, 매일같이 꿈을 꾸는 내 모습과도 매우 닮아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당시의 비장한 목표는 어디로 가고, 나는 적당히 놀며 살고 있다. 일단 토익 공부는 저 뒤로 제쳐 놓았으며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놓고선 일주일에 두 번 쓰기 벅차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브런치 북에 도전해야지, 라는 마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몇 번이고 계속 떨어지는 탓에 마음이 꺾여 버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라고 하지만 사실 문제는 알고 있다.


나만 재밌는 글을 쓰면 누가 볼까. 그럼에도 글을 쓰며 먹고 살고 싶어 여전히 쓰고 있다. 언젠가는 이 글들이 내게 도움이 될 거라 믿으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적당한 음주와 친구들, 노력한다는 자기위안으로 걸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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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에디터라는 꿈을 꾸며 열심히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이름이 비추는 내 모습이 너무도 작게 느껴질 떄가 있다.


'내가 브랜드에 대해서 잘 아나?', '내가 큐레이션을 잘 할까?', '내가 소비자의 마음을 잘 캐치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부터 '나는 글을 잘 쓰나?', '글쓰기를 좋아하나?', '브랜드는 내 마음을 흔드나?'라는 근본적인 질문까지. 물음표가 전신을 돌아다닌다.

 

퀘스쳔 마크에 파묻힌 사이, 친구들은 이미 저만큼 나아간 것 같다. 누구는 착실히 준비를 하고, 이미 자리 잡은 친구도 있고, 승진까지 한 친구도 있는데 글만 쓰고 있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친구들을 질투할 때도 있었지만, 질투해도 바뀌지 않는 나의 현실이 사실 가장 미웠다. 그래서 더 당당한 척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알바가 사실은 비전이 있는 척, 이 생활이 너무도 좋은 척, 나 자신을 보듬는 시간인 척.

 

내가 그러하듯, 프란시스 역시 꿈 앞에서 자꾸만 초라해진다. 베프라 믿었던 친구는 어느샌가 돈 많은 남자에 빠져 저멀리 날아가고, 동기들은 잘나가고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 하물며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집에 돈이 많았다.


프란시스는 그런 사람들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하고 싶어서 이곳 저곳을 간다. 파리에 빚을 내서 가는 건 솔직히 무리수였지만 백수라 해도 지키고 싶은 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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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씩씩하게 행동하던 프란시스도 꺾이는 순간은 온다. 다만 그게 비참하지 않을 뿐이다. 나를 잃지 않고 큰 세상을 알아가는 것. 그게 청춘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아닐까.


꿈을 꾸기만 해도 돈이 나가고 이루기 위해선 숨 막히듯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뉴욕과 서울. 그곳에서 구부러지더라도 청춘은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베프도 떠나고 꿈은 다른 방향으로 가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스럽게 여긴다. 그럼 됐다. 구부러지고, 휘어져도 나는 '프란시스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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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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