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콕 중인 당신에게 추천하는 넷플릭스 영화 [영화]

글 입력 2020.03.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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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 영화제작동아리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술자리에서는 여지없이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야, 너 영화 000 봤어? 그것도 안 봤으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 수 없지.", "나 어제 000 감독 필모그래피 다 봤어." 술자리는 영화 '지식'을 겨루는 자리로 변하기 일쑤였다. 내가 좋아서, 사랑해서 보던 영화가 어느 순간부터 '안다고 말하기 위해' 보는 영화로 변질되었다. 영화 장면의 순간과, 순간의 음악과 감정에 영감을 받던 내가 "유명한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감독의 영화,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고전 명작" 영화만을 찾아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영화 관람이 귀찮고, 부담스러워졌다. 결국에는 이런 생각에까지 다다랐다. "난 영화를 안 좋아하나봐."

 

그런데도 나는 영화가 좋았다. 영화에 대해, 한 장면이 주는 감동에 대해, 영화 삽입곡이 둥둥 심장을 울리는 것에 대해,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크레딧에서 감독이 특별한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하고도 신비한 감정이 들끓었다. 이제야 알았다. 자신의 왓챠 계정에 별점을 매긴 영화의 수를 운운하며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부르던 동아리 친구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좋아하던 것이라는 걸. 난 이제 자유롭게 영화를 보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영화 자체를 사랑해야지, 영화의 겉멋에 취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이의 평가에 나의 느낌을 포기하지도, 왜곡하지도 않겠노라고!

 

다음 추천하는 영화는 그런 다짐을 한 이후 본 것들이다. 누군가는 진부하다고, 너무 뻔하다고, 주제는 좋지만 연출이 아쉽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 영화들을 보던 나를 기억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웃고, 어떤 장면에서는 가슴의 찌르르함을 느끼던 것을 기억한다. 물론, 내가 좋았던/좋지 않았던 영화가 당신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느낌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게 영화의 묘미니까! 같은 영화를 보고 느끼는 감정의 간극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 그 이야기에는 각자의 인생이 오롯이 담겨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요즘, 친구와 각자 같은 영화를 보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며 서로를 알아 가는 것은 어떨까?

 


  

1. 잡히기만 해봐라 (CATFIGHT)

이들의 싸움은 그저 Cat Fight 가 아니다.


 

 

 

대학 동창이었던 사업가의 아내 베로니카와 화가 애슐리는 베로니카의 남편 비즈니스 파티에서 마주친다. 예술가인 애슐리를 은근히 비꼬며 비난하는 베로니카. 둘은 계단 앞에서 난투를 벌이고, 베로니카는 2년간 의식을 잃게 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베로니카의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더 이상의 내용 설명은 생략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명예, 돈, 권력을 중시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계속 붙잡고자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전쟁이 가지는 양면성, 위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유머러스하게 풀어 냈다는 점도 신선했다.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두 여자의 난투극이다. 과장된 효과음과 함께 낙엽 위를, 계단 위를 구르고 코피가 터져 씩씩 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기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 각자의 감정이 이해가 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한 서로를 탓하지만 사실 그 진짜 원인은 개인에 있지 않을 것이다. 산드라오의 감칠맛 나는 연기로 더욱 유쾌하지만 씁쓸한 블랙코미디가 완성된다.

 


 

2.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

결혼의 끝에서 시작되는, 결혼에 가장 가까운 이야기


 


 

이 영화는 배우 니콜과 연출가 찰리의 이혼 이야기를 다루었다. 나는 이 영화가 다른 이혼을 다룬 미디어와 달리 이혼 여정에 있는 두 주체를 단순히 '아내'와 '남편'으로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남자를 떠나, 서로 같은 경험 속에서 상반된 감정을 느끼며 각자의 인생을 찾아 나가고자 하는 인간으로서 극이 전개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또, 두 인간 주변의 다른 인간들이 바라보고 느끼는 그들의 관계, 그들의 관계가 끝남으로써 주변인들이 겪는 고통도 세밀히 다루었다.

 

이혼은 극단적인 드라마가 아니다. 서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혼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니콜은 찰리의 신발끈을 묶어준다. 이혼을 통해 그들은 각자의 감정을 지긋이 바라보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결혼도, 이혼도 판타지가 아니다. <결혼이야기>는 미디어가 주창하는 사랑의 정상성에서 벗어나 그것이 사실은 별 것 아님을, 그 끝도 그다지 침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니콜에 집중을 많이 했다. 나는 니콜이 느끼는 열등감, 후회, 자신을 잃었다는 느낌을 이혼을 통해 직면하게 되었다고 본다. 케케묵은 감정들을 모른 척, 괜찮은 척하고 살다가 드디어 자신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인간 개개인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감정을 안은 채 살아가고, 그 감정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었다.

 



3. 거꾸로 가는 남자 (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

영화가 끝나면 현실이 펼쳐진다.


 

 

 

다미엔은 "정말 평범한 남자"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하고, 직장 남성 직원들과 시시껄렁한 성적 유머를 즐겨하는, 여성을 숨 쉬듯 대상화하는 남자다. 어느 날, 사고를 당한 다미엔은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오게 된다.


남자가 제모를 하고, 짧은 하의를 입고, 성별 때문에 폄하받으며, 육아와 가사를 모두 도맡고, 섹스 대상으로 여겨지는 그런 세상. 알렉산드라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뀐 사회에서 바뀌기 전 사회의 다미엔과 유사하다. 겨드랑이 털을 내놓고 다니고, 더우면 상의를 탈의하고 조깅을 하며, 자신과 잔 남성의 수 만큼의 유리 구슬을 모은다.

 

이 영화는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나도 여성이 지금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얼마나 대상화되고 폄하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시각화 된 이미지로 보니 정말 충격적이었다. 짧은 반바지를 입고 뛰는 모습조차도 이렇게 대상화되고 있었구나. 남성들은 왜 짧은 반바지를 입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왜 남성들은 여성들의 분노에 공감하지 않는지도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책 <이갈리아의 딸들>을 이해하기 쉽게 영화로 풀어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어디까지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인지, 과연 '여성우월주의'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는지, 여성에게 입히는 코르셋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쉬운 여자가 아니야." 라는 말의 미러링인 원제 "나는 쉬운 남자가 아니야.(JE NE SUIS PAS UN HOMME FACILE)" 참으로 적절하다.


 

 

4. 스파이 (SPY)

"마! 이게 진짜 스파이다!"


 

 

 

가볍고 유쾌한 영화로 이 <스파이> 만한 것이 없다! 잘생기고 훤칠한 남성이 수트입고 총질해대는 기존의 스파이물을 저격한다. 그러한 전형적인 이미지의 스파이인 파인을 보조하기만 하던 쿠퍼는 작전 중 위험에 처한 파인을 대신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특유의 넉살 좋음과 빼어난 실력으로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쿠퍼의 모습을 보며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어리버리한 친구 낸시와의 티키타카도 너무나 유쾌하고, 쿠퍼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폭소를 자아낸다. 유럽 로케이션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이상적인 여성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근한 무시와 차별 속에서 자존감을 잃었던 쿠퍼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임무를 완수하고,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성장 과정을 보며, 좀 더 다양한 주체가 등장하는 스파이물이 많이 상영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획일적이고 보조적인 여성 주인공은 이제 지겹다!

 


 

5.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FACES PLACES)

"예술은 사람을 놀라게 하죠?"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와 포토그래퍼 JR이 만나 포토 부스가 딸린 트럭을 타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사진을 인쇄하고, 그 사진을 마을에 붙인다. 두 예술가의 사람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다정하고 애틋한지, 자극적인 서사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두 사람의 모든 움직임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의 미묘한 찰나를 포착해 그것을 사진으로 전시한다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사진을 두고 떠난 자리에는 생명력이 넘쳤다. 아녜스와 JR이 마을에 활기를 선물한 셈이다. 예술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사람을 향하는 모든 눈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녜스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 그들이 사진을 찍는 것, 사람들이 사진을 응시하고 추억에 빠지는 것. 그 모든 것이 예술이자 영화였다.

 

90대의 아녜스와 30대의 JR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 예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어떤 편견과 격차도 예술 앞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아녜스의 모습이 그리운 사람, 사람을 사랑하는 예술이 그리운 사람에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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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추천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Opinion] 방콕 중인 당신에게 추천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TV/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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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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