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School-verse] 선도부도 교복이 줄이고 싶었다

글 입력 2020.03.17 10: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대청소를 했다. 고작 책장만 정리했을 뿐이지만 다음 날까지 팔이 아팠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꺼리는 많은 사람이 집 안을 청소하고 있다고 들었다. 멀리서 출처도 모를 감성을 채우고 소비하기보다 집에서 예전의 추억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2014021001000382700022102_59_20140211075102.jpg

 

 

클리어 파일 여러 개를 꺼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교문 앞에서 받았던 교복 광고가 있는 파일들이다. 앞면에는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아이돌 그룹의 앳된 사진이 있고, 뒷면에는 교복의 기능을 강조하는 광고 문구들이 있다. 주머니가 많은 교복, 날씬해 보이는 교복, 키가 커 보이는 교복, 크기를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교복 등.


한창 개성을 찾아가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교복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간단하게는 치마를 접어 입는 것에서부터, 아슬아슬하게 바지 통과 치마 길이를 줄이며 교복 자체를 변형하는가 하면, 교복으로 지정되지 않은 운동화나 외투 등은 마음껏 사복을 착용하고 다녔다(그때 운동화에 집착했던 나의 지질한 이야기도 오피니언으로 작성한 적이 있다.).


교복을 구성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학교에서 정하는 ‘바른 복장’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선도부로 활동하면서부터다. 아침마다 마음 졸이며 교문을 통과하며 늘 적이라고 생각했던 선도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보로 30분이 걸렸던, 생각보다 먼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7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 이 ‘극한직업’을 굳이 택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왜 선도부에 지원했느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내가 규칙을 지키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내세우거나, 혹 특수목적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자기소개서에 쓸 거리를 늘리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치마를 줄이지 않는, 재미없는 사람인 내가 교복을 마음껏 수선하는 ‘날라리들’보다 낫다는 걸 확인받고 싶었다.


물론 어느 학교에서나 가장 무섭고 엄격한 선생님으로 유명한 학생 주임, 생활부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선도부가 되면 나도 조금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람3.jpg

 


지나치게 학생의 본업에 충실했던 나는 교복을 줄이는 아이들이 늘 부러웠다. 규칙에 맞설 용기가 없다는 것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선도부가 되어 규칙을 어기는 학생들에게 얼마든지 벌점을 부여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일종의 권력을 쥐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권력을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등교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면 이전과 같이 아무 말 못 하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이다.


내가 권력을 누리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권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지 선생님의 지시를 받아 실행하는 것에 불과했을 뿐, 처음부터 나는 목소리가 큰 학생도, 인기가 많은 학생도 아니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가며 규칙을 지키게 하는 일도 성격상 잘 맞지도 않았다.


 

bcf8bf71bd6b4af4b3090863667394ca_99_20161111160405.jpg

 


그런데도 중간에 포기하는 일 없이 끝까지 ‘선도부’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존재감 있는 주인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쓴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늘 주인공보다는 엑스트라에 가깝다 느꼈는데, 그때만큼은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친구들이 적어준 롤링페이퍼에는 ‘선도부 김채윤’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죽 선도부였다. 짧았던 그때의 경험이 나의 강박적 성격에 이름과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출튀’나 ‘자체휴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이유라고, 이제 와서 지나간 그 시간에 의미를 부여해본다.


인생에서 가장 짧으면서도 결정적인 10대. 나는 그 시절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시기라 생각한다. 청소할 때에나 불쑥 떠오르는 잊힌 시기가 될지라도, 다 똑같은 교복을 입어도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명찰이 된다.


 

[김채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