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자기자신이라는 미로 [도서]

글 입력 2020.03.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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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열린책들 2003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존재하고 때로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어렴풋이 알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삶이 계속될수록 우리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불확실해져서 우리 자신의 모순을 점점 더 많이 알아차리게 된다. 누구도 경계를 넘어서 다른 사람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간단한 이유로.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에 팽팽한 긴장을 풀어 넣어 현실감과 은은한 감동을 직조하는 천부적 재능의 작가 폴 오스터,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뉴욕 3부작』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세개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틸먼을 쫓는 퀸(『유리의 도시(City of Glass)』), 블랙을 쫓는 블루(『유령들(Ghosts)』), 팬쇼를 쫓는 ‘나’(『잠겨있는 방(The Locked Room)』). 추리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이 소설에는 쫓는 사람(탐정)과 쫓기는 사람이 등장한다. 탐정은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의 이름과 행동거지를 바꾸는 데에 서슴지 않고, 쫓는 대상에게 자신을 이입한다.


그들은 조사하고 궁리하고 추격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을 재차 확인할 뿐 사건은 진척이 없다. 그와 달리 속도가 붙은 사유는 쫓기는 사람과 그들이 발 디딘 세계, 그 세계를 보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면밀히 들여다본다. 결국 사건보다 비대해져버린 자의식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들은 분열한다. 서서히 아주 깊은 곳으로.

 


뉴욕은 무진장한 공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미궁이었다. 아무리 멀리까지 걸어도, 근처에 있는 구역과 거리들을 아무리 잘 알게 되어도, 그 도시는 언제나 그에게 길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 주었다. 시내에서뿐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까지도.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리면 신의 언어를 구사하게 된다는 아버지의 잘못된 믿음으로 9년간 빛도 없는 방에 갇혀있었던 스틸먼이 미쳐버렸던 것처럼, 우연한 계기로 탐정 행세를 하게 된 작가 퀸이 스틸먼을 잡기 위해 길거리로 나가 완연한 노숙자가 되는 것처럼, 블랙을 쫓던 블루가 고독에 갇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오랜 친구였던 팬쇼를 마침내 죽이기로 결심한 ‘나’처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파멸에 이르고 전환 같은 건 없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떠난 긴 산보에서 결국 그들은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버린다. 그곳은 너무도 깊고 아득해서 한 번 들어가면 도무지 나갈 수 없는 미로와도 같다.



블루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라든가 영화에 나오는 미녀들 때문이 아니라 극장 안의 어둠 그 자체 떄문이기도 하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영상이 왠지 눈을 감을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전환되는 이야기와 독자를 수령에 빠지게 하는 장난스러움 또한 이 소설의 매력이다. 사건은 더해지지만 개연성은 없고, 뒤의 논리는 앞의 내용을 충분히 지탱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각 문단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구성은 내 자아의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 잘 짜여져 매끈하기보다는 울퉁불퉁하고 진득한, 탐구하면 할수록 침잠할 뿐인 나의 본질과 소설은 닮아있다. 이렇게나 모호하고 난해하고 불친절한 이야기가 나 자신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다.

 


[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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