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메모장을 공개합니다 [사람]

글 입력 2020.03.0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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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Interior with Crown (King), 인테리어와 왕관 (왕)

2017, Oil on canvas, 캔버스에 유채, 60x70cm

 


메모장은 은밀한 구석이 있다. 특히나 요즘같이 어떤 기록이든 들키지 않게 꼭 잠가 두는 핸드폰 속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 어딘가에 적어둔 것들을 남에게 들켜 얼굴이 새빨개졌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특별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미처 머리와 입이 대신해줄 수 없는 것들을 깨작깨작 적었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머리와 입이 한 편이었고 마음과 손이 한 편이었다. 그러니 대부분 손으로 마음을 적은 메모장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클 수밖에. 대단한 마음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이런 메모라도. “내일 좀만 더 화이팅” 나름 은밀한 메모였다.


샤프(연필)과 종이를 고등학교와 동시에 거의 졸업하고, 노트북과 핸드폰 자판이 더 익숙해진 지금은 대부분의 메모를 저장해두고 있다. 쓴다기 보다, 정말 저장해두는 편이다. 기록한 날짜 순 대로 차곡 차곡 쌓인 메모가 많아서 이제는 분류도 해둔다. 그렇게 나의 메모는 차츰차츰 변모했다. 나름 공적이라고 할까, 그런 성격이 내 메모에 생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할 일을 적어둔 메모장이 있다면 예전엔 할 일을 끝내고 난 후 그 옆에 작게 스스로에게 하는 사적인 말들을 적었다. ‘수고했어ㅠㅠ’, ‘오늘은 좀…’, 가끔은 꽉 쥔 주먹 두개를 그려 놓기도 하며 날 응원해보기도 하였다. 지금은 편하게 체크리스트 기능을 활용해 적고, 체크하고, 모두 끝낸 후 말끔히 지운다.


어느 날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하자. 그럴 때면 예전의 난 메모장에 하염없이 ???를 남발하며 대체 이게 무슨 마음인지 스스로 묻거나, 정말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흐름 따라 무언갈 막 적어 봤을테지만, 이젠 이런 경우가 정말 드물어졌다. 핸드폰 자판으로 물음표를 늘어놓는 들 액정화면을 두드리는 일에 그칠 뿐이다. backspace바가 있는 한 말도 안되는 소리는 바로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빈 메모장이 그 날의 마음을 대변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전히 메모를 하고 있다’인데, 지금의 나는 어떤 메모를 하고 있을 지, 아래 분류해 둔 카테고리와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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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 왕관(왕) Crown(King), 2017, 나무에 알루디본드, 22x22 cm

 

 

 

00월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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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한 청년이 버스를 탔다. 장시간 목을 빳빳히 세웠던지 이미 경직되어보였고, 덩달아 그가 입은 셔츠와 정장 자켓, 코트까지 모두 빳빳해보였다. 모두 새 것으로 추정되는 옷차림에 그의 신발까지 시선이 닿았는데, 그마저도 새 것으로 빳빳해보였다. 아 참, 들고있던 우산까지도 주름 하나 없이 공장에서 나온 모양 그대로가 잘 잡혀있었다.

빳빳하다.. 아직은 위화감 가득한 그 모습을 계속 보기가 뭐해서 내 차림새를 보았다. 빳빳하다의 효과적인 반대말이 무엇이 있을까. 늘어져있다? 풀어졌다? 과연 나는 신입인 그보다는 편한 모양새였다.

무엇이 좋을까, 더 나을까
다만 그의 빳빳한 뒤통수를 보며 그런 생각은 해보았다. 저 힘들어간 상체에는 어디 내놓지 못한 자부심이 일단 있겠지. 그리고 퇴근길에서마저 내려놓지 못한 긴장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나도 저런 빳빳함 - 신입생 때의 그 모습을 다시 갖춰보고 싶다하는 부러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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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악사는 시와 같은 속성을 지닌다. 멈춰서서 듣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아름다운 운율. 작지만 강하게 퍼져나가는 목소리. 그래서 마침내 이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하는 일.



<00월의 단상> 메모는 월 별로 구성 되어있다. 사실 이 카테고리는 생성된 지 얼마 안되었는데, 가끔 꽂힌 장면이나 사람이나 생각들에 대해서 골똘히 집중하다가도 쉽게 흐려지는 것을 대비해서 만들어두었다.

 

 

 

인터뷰


 


문화라는 영어 단어 ‘컬처’(culture)가 ‘경작하다’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인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독특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일하고, 성과를 내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면 그게 문화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으로 말과 글의 논리성은 어떻게 만들어내죠?

“솔직하게 던져요. 논리적 구성은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없는 논리를 쌓기보다 느낌의 타당성을 찾아가는 방식이죠. 비록 유난스럽고 부정적인 해석에 놓이더라도, 판단받는게 두려워 솔직한 표현을 멈추진 않습니다.” (배우 유아인)



<인터뷰>란도 있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 중에 무얼 좋아하냐 물으면 듣는 것을 좋아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듣는 것이라면 더 좋다. 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공고한 생각들을 인터뷰에서 듣고, 메모하는 것 같다.

 

 

 

표현


 


“쉬는 것도 용기야” – 휴학 고민 중, 친구의 말


“나한테 다른 노래들은 그냥 얼음 녹은 음료수 같다” – 유튜브 옛날 노래영상 속 댓글



<표현>에는 짧은 한 문장부터 거의 한 페이지 가량의 긴 이야기까지의 다양한 메모들이 있다. 무심결에 툭 던진 누군가의 말이나, 댓글, 책 속의 한 문장 등 출처는 다양하다. 무언가 표현하려 했지만 그 표현에 그 무언가가 묻힌 듯 할 때, 그러니까 그 표현해낸 형상이 더 대단할 때, 이렇게 옮겨 적어놓는다.

 

*

 

이렇게 메모 몇 가지를 공개해보았다. 이젠 더 이상 부끄러울 일 없이 스스로 공개할 수 있는 나의 메모는 무얼 의미할까. 여전히 나의 메모장은 은밀하다. 아니, 이제는 내밀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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