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Good person의 방식, 영화 "나이브스 아웃"

‘Good person’은 오해와 비극 속에서도 ‘Good person’의 방식으로 이긴다
글 입력 2020.02.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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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person의 방식

나이브스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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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스테리 소설 작가 할런이 85세 생일 파티 다음날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피가 튄 것부터 알리바이까지 모든 것이 자살로 맞아떨어지는 상황. 수사가 그대로 종결되나 싶지만 사립탐정 블랑이 범죄 냄새를 맡고 사건에 전격 뛰어든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가족들과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하는 간병인 마르타. 진실은 무엇일까.

 

블랑이 가족들을 한 명씩 들쑤시자 가족들은 하나둘씩 거짓말을 내뱉는다. 거짓말하는 할런의 가족들-추궁하는 블랑 구도에 본격적으로 추리 수사물에 발을 디딘 느낌을 받았다. 린다의 남편? 월트? 조이? 누가 범인일지 궁금한 것도 잠시, 간병인 마르타가 질문을 받기 시작한 순간, 플래시백 되며 장르는 갑작스레 범죄 서스펜스물로 바뀌기 시작한다. 사립탐정 블랑으로부터 완벽 범죄를 ‘꿈꿔야 하는’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마르타의 고독한 싸움이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범죄 스릴러? 싶다가도, 서서히 모든 퍼즐이 맞춰지며 다시 추리물로 돌아온다. 유머러스하고 스릴 있는 장르 비틀기였다.

 

이 장르 비틀기는 작지만 큰 하나의 설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미스터리 범죄의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추리물은 철저히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추리소설의 배경들(이상한 장치의 저택), 인물들(거짓말을 하는 가족들), 상황(자살로 위장된 죽음)같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고전적 방식 말이다.


판타지가 개입하는 순간 추리물은 추리물이 아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감독은 묘한 수를 썼다.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나는 사람’이 범인이라면? 딱히 개연성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판을 넘어가는 설정은 아니다. 이 설정 덕분에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적인 후더닛 구조를 넘어 특색있는 서스펜스 추리물로 거듭났다. 솔직하고 간단하게 평하자면, 정말 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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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이야기 자체가 무척 흥미진진한 것도 좋았지만, 호평을 굳이 남기고 싶었던 건 이 영화가 ‘Good person’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르타는 (문자 그대로) 거짓말을 못하는 ‘거짓말 구토증’에, 할런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좋은 간병인이었다. 그런 그는 할런의 충고와 가족 생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완벽범죄를 포기하고 프랜을 살리기 위해 자백한다. 범죄 서스펜스의 싱거운 끝 같아 보였지만, 실은 마르타는 어쩔 수 없이 정직하고 선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저는 승리보다는

아름다운 패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 <나이브스 아웃> 마르타

 

‘Good person’은 오해와 비극 속에서도 ‘Good person’의 방식으로 이긴다는 것. 영화는 선하고 좋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실의 힘을 아주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복수와 분노로 얼룩져왔던 범죄 미스터리의 새로운 교훈이었고, (어쩌면 순진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마르타, 남을 돌보아 주기 좋아한다는 성서 속 한 여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자신을 추궁하고 몰아내던 사람들 속에서 마르타는 선한 방식으로 성장한다. 마침내 ‘My House, My Rules, My Coffee!’컵을 들고 오만방자한 가족들 앞에 우뚝 선다. 갈수록 단단해지는 마르타의 눈동자와 표정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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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잘 나가는 백인 가족들의 실체는 ‘블랙 코미디’ 그 자체였다. 모두들 마르타에 대해 “우리는 그 아이를 가족처럼 대해줬다.”라고 하지만 정작 마르타의 국적을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본인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르고 협박하고 회유하려는 모습들이 퍽 사실적이었다.


실제로, 10대 보수 나치로 나오는 ‘제이콥’은 감독이 ‘스타워즈 : 라스트 제다이’ 당시 받은 사이버 불링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마르타에게 유일하게 사과하며 연대할 줄 알았던 인물이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배우는 ‘메그’라는 점에서 참으로 비교되어 보였다. 남부억양에 말 많은 주인공 탐정 ‘블랑’이 백인 남성인 것이 조금 거슬릴 법도 했으나 오히려 설득력을 붙여준 느낌이었다. 저 가족이 누구 말을 듣겠는가.

 

맛좋게 곁들여진 유머, 재치 있는 대사들, 선한 서스펜스, 성장하는 여성 주인공. 미스터리 저택의 미장센까지 후회 없이 재밌는 영화였다. 한국에서는 <겨울왕국 2> 여파로 큰 흥행을 거두지 못했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작품의 재미를 인정받아 블랑을 주인공으로 한 2탄이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2탄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재미’를 기대해본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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