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를 위한 신념인가 - 마터 [연극]

글 입력 2020.02.07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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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인물들은 전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누구도 함께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봤고, 그것에 눈이 멀어 있었다.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해도 소통은 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이야기한다고 해서 대화인 것은 아니다. 나는 연극 <마터>에 단 하나의 대화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념은 눈을 멀게 한다. 그 믿음만이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울타리가 쳐지고 울타리 밖의 모든 것들은 '거짓'과 '혐오'의 영역으로 분류된다. 연극 <마터>의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신념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그 신념만을 바라보며 다른 것들을 배제했고, 결국 주변 사람과 자기 자신마저도 신념 뒤로 밀어냈다. 연극에는 사실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강하고 뒤틀린 신념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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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한마디로 불쾌했다. 의도된 불쾌감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께름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었다. 배우들의 열연은 불쾌감을 한층 더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줄거리였음에도 어딘가 현실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숨이 막혔고, 답답했다. 연극인 걸 알면서도 끼어들어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고, 배우인 걸 알면서도 말이 안 통할 것 같아서 화가 났다. 공연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칼 대신 성경책


연극 <마터>의 인물들이 가진 신념은 상당히 극단적이다. 사소한 것조차 과민반응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어긋난 신념에 따라 해석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일에 대해 옳다고 믿는다. 하지만 연극을 계속 보며, 이들이 신념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념을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신념에 충실한 척하면서 결국 신념을 변명의 수단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성경에 미쳐있던 '벤야민'은 각종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를 일삼는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구원"해주겠다고 말하며,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의 비윤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들을 전부 성경으로 변명하려 한다. 심지어 생명과학 교사인 '로트'를 살해하려는 것까지 전부 성경의 뜻이라며 '게오르그'에게 범죄를 강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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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만큼 기독교나 성경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벤야민'의 행동이 종교적 윤리에서도 많이 벗어났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를 과연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까? 그는 마치 신을 위하는 척, 신을 사랑하는 척했지만, 그가 바라본 것은 오로지 "성경"의 활자뿐이었다. 자신의 말과 행동,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기로 성경을 이용했고, 신앙심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도 전부 다른 성경책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그 속에서 전하려는 의미를 찾고, 본질을 바라보아야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벤야민'은 성경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본질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의 신앙은 시대로부터 역행했고, 극단적이었으며, 맹목적이었다. 결국 그는 진정으로 지녀야 할 가치를 갖지 못하고 두 눈과 귀를 닫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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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세상에 맞서고 싶을 때 가장 꺼내 들기 쉬운 무기는 역사책, 과거의 가치이다. 시대가 변해도 그 자체로 근거가 되어 변화를 억압하려 든다. 그냥 싫은 것에 대해 "그냥" 대신 "안 된다고 쓰여 있으니까"를 넣으면 더욱 그럴듯해진다. 차별과 폭력에 대한 일종의 변명 수단이 되는 것이다.

'벤야민'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도 신념을 이용해 타인을 학대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빈번하다. 실제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발언의 다수는 성경을 근거에 두고 있다. 술, 담배, 피어싱 등에 대한 부분은 "시대가 변했으니까" 하며 외면하면서, 유독 타인을 혐오할 때는 "성경이 그렇다잖아"라며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 성경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성경이 얼마나 도구로서 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든 종교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 많은 이들이 자신이 받아들이기 싫은 가치에 대한 변명의 수단으로 성경을 이용하고, 종교를 소비한다. '벤야민'은 매우 신실하고 숭고한 종교인인 척했지만, 그 역시 그런 부류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면의 분노와 광기를 표출하는 수단으로 성경의 말들을 인용하고, 그를 근거로 타인을 괴롭히는, 성경을 무기로써 소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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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연극 <마터>가 기독교를 비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벤야민'도, 목사도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는 돈을 위해, '벤야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들은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종교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꿔 목적 달성에 활용하려 한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벤야민'은 자신이 신념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자신이 성경의 말을 잘 따르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위험한 거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그가 완전히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잊은 채, 모든 것을 성경으로 정당화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광적이라는 말로밖에 형용되지 않았다.



들리지 않은 말


연극이 진행되며 가장 답답했던 것은 저들은 누가 어떻게 말해도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마터>의 이야기는 극단적이었지만, 전부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도, 자신이 믿는 것만을 고집하며 듣지 않을 사람들이다. 화가 나면서도 안타깝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마음이 든다.

사람들이 모두 신념이 다른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한다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이 없고, 오히려 다양성 속에서 더 많은 가치를 배울 근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귀를 닫고 자신의 말만 하려 한다면 <마터>의 파국은 결코 연극만의 일이 아니게 될 것이다.

'벤야민'도 '로트'도 '게오르그'도, 그리고 그들의 주변 사람들도 전부 눈과 귀를 완전히 닫고 있었다. 마치 누구의 신념이 선택받는지에 대한 싸움을 하듯 각자 자신의 소리만 내려 했다. 일말의 틈도 없었으며, 점점 더 범위를 좁혀 갔다. 자신의 신념이 무시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더 크게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과정에서 좁혀지는 시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영역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이는 극심한 혐오와 배척으로 이어졌다.

잘못인 줄 알면서 차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옳다는 믿음을 갖고 타인을 배척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자신이 혐오 표현을 뱉고 폭력을 행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으며, 결국 잘못을 바로잡거나 뉘우칠 기회를 날려버리게 된다. 그리고 피해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방향으로 사고하게 되고, 가해자의 강한 신념 앞에 무릎 꿇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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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마터>의 상황을 바로잡을 방법은 없었다. '벤야민'의 잘못이 밝혀져도, '로트'가 학교를 그만둬도 그건 해결이 될 수 없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념에 눈이 멀어버린 그들은, 진짜 봐야 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만을 본다.

신념이라는 거, 정말 무섭다. 강한 믿음으로 눈먼 사람이 내뱉는 말과 행동이 가지는 폭력성이 얼마나 가혹한지 연극 <마터>를 보며 느꼈다. 마치 내가 그 폭력을 직접 겪은 것처럼 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에도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믿음 하나로 이토록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니, 숨이 막혔다.

혹시 내가 그랬던 적은 없었나. 내가 눈을 감고 타인을 외면하던 적은 없었나. 절대 그렇게 눈이 멀어버리고 싶지 않다. 신념 뒤에 숨어 웅크리며 타인에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그건 정말, 스스로에게도 못 할 짓이라고 생각한다. 신념에 묶인 <마터> 속 인물들은, 무섭도록 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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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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