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 내리는 하와이 1 [여행]

글 입력 2020.01.30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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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하와이 다문화 연수 장학생으로 호놀룰루에 있었다. 다른 열 한명의 연수생들과 함께. 글로벌 다문화 문화교류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어학연수와 수학여행이 교묘히 합쳐진 프로그램이었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순간부터, 열 한명의 사람들과 같이 지낼 생각에 부담이 되었다. 타인을 만나는 시간 : 혼자 있는 시간의 비율이 최소 1:3이 되지 않으면 상당히 스트레스 받는 내게는, 이 세미 패키지 여행이 큰 도전이었다.

 

*


작가 김영하는 책 <여행의 이유>에서 '추구의 플롯'으로서 여행을 설명한다. 이야기에는 대부분 두 가지 목표 층위가 있다. 주인공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외면적 목표'와 주인공 자신도 잘 모르는 채 추구하는 '내면적 목표'이다.



우리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이런 목표는 주변 사람 누구에게나 쉽게 말할 수있는 것들이다. 하와이에 가서 서핑을 배우겠다.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하겠다, (...)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준비한다. (...) 여행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뜻밖의 사실'이나 예상치 못한 실패, 좌절, 엉뚱한 결과를 의도하는 사람은 거의없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도 언제나 외면적인 목표들이 있다. (...) 그런데 이런 외면적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더 높이 희망하며, 희망했던 것보다 못한 성취에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다.


 

하와이에 온지 일주일, 눅눅한 숙소에 누워 전자책으로 <여행의 이유>를 읽던 나는 이 문단을 발견했고, 몸을 뒤집어 팔을 괸 채 창 밖을 보았다. 구름낀 하늘이 침침했고 끊임없이 비바람이 불었다. 사흘 내내 하루 종일 비가 와서 밖을 돌아다닐 기분이 아니었다. 강아지는 지루하면 하품을 한다는데, 나는 하와이에서 백만 번쯤 하품 하느라 턱이 얼얼했다.

 

내 외면적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구체적인 경험을 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하와이가 내게 줄 법한 것, 눈부진 자연 풍광이나 여유로움, 휴양의 기분을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글라스와 하와이안 셔츠, 훌라 댄스. 공기 좋고 물 좋고 살기 좋은 나라.


하지만 최고의 휴양지라는 하와이는 추웠고, 비싼 물가와, 쉬지않는 빗줄기로 나를 맞이했다. 장학생 신분이라는 이유로 술 반입 금지, 렌트카 금지, 서핑, 스카이 다이빙 등 액티비티 금지, 거기다 매일 일곱시에 일어나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잡혀 있으니 침울한 기분은 더해만 갔다.

 

성공적인 여행은 지루함을 잊게 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계속 움직이고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전에 없던 활기를 되찾는다. 피로는 기분 좋은 것이고, 여행지의 무료함은 여유를 느끼는 기회가 된다. 이런 여행이 되려면 타국에 도착하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의무에서 풀려난 자유로움,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할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는 행운도 있어야 한다.

 

일기 예보를 보니 우리가 묶는 내내 하와이는 대부분 비와 구름 아래 있을 것이다. 나는 젖는 게 싫고 번거로운 게 싫었다. 내 소박했던 외면적 목표, 여유롭게 화창한 하와이를 누리겠다는 건 포기해야 했다. 학교 수업 탓에 음주가무에 빠질 수도, 계속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수도 없다. 여기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집 안으로 이끄는 것들(내가 최대한 기피해 온 것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피곤한 단체 생활, 비, 규칙적 기상, 금주, 추위, 비싼 물가, 부족한 예산 등. 만약 김영하 작가의 말이 지혜를 품고 있다면, 이 상황에서 내가 얻을 건 무엇일까? 약간의 영어 실력, 흐린 날의 하와이 풍경, 수많은 분량의 사진들 말고 내가 내면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흐린 날이 내 기분을 울적하게 만들었고, 야자수 나무 밑에서 멜랑콜리한 사색에서 잠기게 했다. 나는 여기 왜 온 걸까? 날씨가 맑고 화창할 때는 이 풍경에 내 존재가 환영받는 기분이 든다. 밝고 따듯한 공기 속에 긴장이 풀리고 꿈과 희망이 샘솟는다. 반면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춥고 축축하고 외롭다. 특히나 여행 온 지역에서는. 환대를 기대하고 누군가의 집에 들어갔는데, 하필 아주 안 좋은 타이밍에 온 것이다. 기대했던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잘못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대신 시선을 과장 없이 볼 수도 있다. 유명한 동상은 빛을 잃고, 관광지도 그렇게 대단해보이지 않는다.


사소한 것들은 눈에 띈다. 헬멧 없이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 수많은 노숙자와 엠뷸런스 소리. 교통체증, 숙소 창가의 먼지, 침대 뒤 편에 떨어진 속옷 같은 것들. 의도했던 건 못 보고 의도지 않은 것들만 보이면서 나는 진짜 하와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여유롭게 운전하는게 더 하와이다운 걸까, 아니면 버스에 붙어있는 광고 문구 '걱정 마십시오. 당신이 집이 없거나, 공원, 주차장, 야외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더라도 당신의 자녀는 초등학교에 등록할 수 있습니다'에 진짜 하와이의 모습이 담겨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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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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