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일랜드에 살면서 느끼는 '명절' [여행]

유럽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로 느낀 참된 명절의 의미
글 입력 2020.01.1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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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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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시절 매년 새 다이어리를 얻으면 가장 먼저 적곤 했던 맨 뒷장의 버킷리스트에는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가 늘 한 줄을 차지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부터 시작해 각종 내가 사랑한 대부분의 서구권 영화에는 크리스마스가 가장 큰 이벤트로 등장했고, 이는 내 마음 한 구석에 동경과 환상으로 가득 찬 무언가를 심어주었다.

 

어릴 땐 빨간 옷을 입고 캐롤이 울려 퍼지는 거리를 부모님과 함께 걷거나,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부모님이 주신 선물을 받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소박한 파티를 했으며,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종 크리스마스 영화(주로 <나 홀로 집에>나 <해리포터> 시리즈)를 함께 보는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제법 냈다.

 

하지만 자라면서 점점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느새 내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연인과 좀 더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날, 혹은 친구 집에서 맛난 음식과 함께 과음하는 날이 됐다. 어릴 때 느꼈던 그 특유의 따뜻한 어떤 분위기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해가 갈수록 유럽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에 대한 갈망이 커져만 갔다.

 

드디어 2019년 연말을 유럽에서 지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올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에 대한 고민과 기대가 컸다. 그리고 내 오랜 소원은 며칠 전 이곳 아일랜드 코크에서 이루어졌다.


 


온 도시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10월 31일 광란의 할로윈 파티가 끝나고 그 다음 날, 거짓말처럼 온 도시 분위기가 확 변했다. 각종 상점 윈도우 장식의 주인공은 잭-오-랜턴에서 산타로 바뀌었고,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한 조명들이 길거리를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셋째 주 일요일 저녁, ‘크리스마스 점등식’이라는 이벤트와 동시에 시티에서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를 향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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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시티 중심의 공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Glow’라는 이름의 작은 산타마을이 생겼고, 그 앞엔 관람차와 회전목마, 그리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점들이 줄을 지었다. 커다란 산타가 문을 지키고 있는 우체국엔 크리스마스 카드와 선물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매일 붐비었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이나 남았지만 학생들은 저마다 루돌프나 산타, 눈사람이 그려진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고 매주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으며, 시티 곳곳의 낭만 버스커들은 아름다운 캐롤송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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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말에는 ‘어드벤트 캘린더’라는 선물을 받았다. 12월 1일부터 24일까지만 적힌 상자모양의 달력인데, 해당 날짜 부분을 열어보면 매일 다른 초콜릿이 하나씩 들어있다. 하루에 하나씩 초콜릿을 먹으면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좀 더 어렸더라면 참지 못하고 하루에 여러 개씩 열어서 초콜릿을 먹었겠지만, 25살의 나는 정직하게 하루에 하나씩 그 날짜에 해당하는 초콜릿을 먹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초콜릿을 하나씩 먹으면서,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연말을 향해 하루하루가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실감했다.

 

 


리브 인 오페어로서 보낸 ‘진짜 크리스마스’




현재 나는 부모님이 일하는 동안 혼자 있는 아이를 돌보는 ‘오페어(au pair)’ 일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아이 부모님이 일을 하지 않아 내게 2주라는 장기 휴가가 생겼다. 이 기회에 독일이나 체코 등 크리스마스 마켓이 유명한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갈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나 극성수기 비행기 값은 만만치 않았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유럽의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친구들은 홀리데이 시즌을 맞아 가족을 찾거나 여행을 떠났다. 그럼 나는 이곳에서 혼자 뭘 하나, 고민하다 문득 생각났다. 참, 나 리브 인 오페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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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인(Live in)오페어는 말 그대로 아이를 돌보며 그 가정에서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덕분에 비싼 렌트비와 음식 등 각종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일터와 집이 일치하는 것에 대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다행히도 이 도시에서 누구보다 친절하고 좋은 가족을 만나 이 집을 정말 ‘내 집’처럼 편안히 느끼며 살고 있다.


일본인 아주머니와 아이리시 아저씨, 아일랜드-일본 혼혈 아이와 한국인인 나, 이렇게 각기 다른 네 명이서 서로 다른 문화를 배우며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로 요리를 해주고 가끔 여행도 가면서 내게는 제2의 가족이 생겼다. 그래,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자.


가족들은 아저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가 돌보는 아이의 할아버지를 초대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혼하셔서 각각 혼자 살고 계신다. 두 분 다 여러 번 뵀는데, 굉장히 따뜻하신 분들이다. 할아버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계획이 따로 없다고 하셔서 내심 걱정했는데, 아저씨가 초대하셔서 굉장히 기뻤다. 그래서 우리 집 크리스마스엔 총 다섯 사람이 함께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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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온 도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쇼핑을 시작했다. 보통 회사들이 1-2주에 걸쳐 장기 휴가를 주기 때문에 평일 낮에도 마트와 식료품점이 붐볐다. 우리 집 또한 어떤 음식과 디저트를 먹을지를 며칠 고민 한 뒤, 23일에 크게 장을 봤다. 몇 십 년 동안 단골이셨던 할아버지 덕분에 엄청난 크기의 칠면조를 반값에 사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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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 가장 중요한 건 전 세계 어딜 가나 역시 음식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날과 당일 오전은 내내 요리를 하느라 바빴다. 아저씨는 칠면조를 비롯한 메인 요리를 담당했고, 아주머니는 펌킨 케이크와 크리스마스트리 모양의 샐러드를, 나는 롤케이크와 미니 딸기 산타를 만들었다. 아침 식사로는 아저씨가 만든 스페셜 크렘 브륄레를 먹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테이블을 세팅하고 할아버지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2시, 드디어 할아버지가 도착하셨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됐다. 칠면조를 비롯한 메인 메뉴로 배를 가득 채우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달콤한 디저트 메들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정말 배가 터질 것만 같았지만 모든 게 다 맛있어서 손이 자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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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이후엔 다 같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실 정작 한국 집에서 가족사진을 찍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삼각대를 세우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머릿속에는 나중에 한국 돌아가면 가족사진을 많이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 시간은 그 다음이었다. 엄청나고 화려하진 않지만 정성과 마음이 가득 담긴 선물과 카드를 주고받으면서 따스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남은 음식들을 한가득 싸드려서 할아버지를 배웅하고, 우리는 거실 소파에 함께 모여앉아 따뜻한 티와 함께 영화 <멋진 하루>를 보며 크리스마스 날을 마무리했다.


 


크리스마스 부럽지 않은 우리나라의 명절



이곳에서 ‘진짜 크리스마스’를 지낸 뒤 느낀 건, 참된 명절의 의미다. 사실 내가 그토록 꿈꾸고 동경했던 크리스마스는 결국 가족과 다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명절’일 뿐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분명 크리스마스 부럽지 않은 전통이 유구한 명절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 설날은 해가 갈수록 그 의미가 쇠퇴하고 있고, 어느새 축하와 기쁨과는 거리가 먼 단어가 되었다. 나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야 명절이란 예쁜 한복을 입고 세뱃돈을 받는 즐거운 날이었지만, 지금의 내게 명절은 노동과 잔소리가 먼저 떠오르는 날이 되어버렸다. 


유럽인들은 크리스마스에 모든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반면, 우리나라는 명절에 해외로 나가는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다함께 요리해 먹고, 윷놀이 등의 전통놀이를 즐기며, 충고와 조언보다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그런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명절은 이제 옛날 책 속에만 있는 걸까. 모두가 함께 일을 균등하게 나누고, 잔소리가 아닌 평소 하지 못했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다면 우리의 명절도 추석 스트레스나 설날 증후군보다는 기쁜 추석, 즐거운 설날이 더 자연스럽게 입에 붙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서 명절을 맞을 땐 나부터 명절을 기쁜 날로 인식하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문화리뷰단 김지은.jpg


 

[김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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