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19.11.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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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대 중반에 막 들어설 무렵의 나이가 됐다. 사회생활에 찌들어 사는 30대, 40대, 혹은 이상의 어른들이 본다면 콧방귀를 뀔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제 마냥 어리다고 생각할 나이는 지났다는 생각에 인생에 대한 부담이 나를 짓누른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이제는 해야만 하는 일을 좇는 삶을 살아야 될 때가 왔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숨이 막혔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뭔가를 도전한다는 것은 사치인 것 같았다.

 

76세의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화가가 되셨고 갤러리에 전시까지 하셨단다. 충격이었다. 난 얼마나 건방진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나 싶어 헛웃음도 나왔다. 내 인생의 3배 이상을 산 분께서도 열정과 의욕을 가득 담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성공하는 마당에 아직 한창인 나이에 책임감이라는 핑계를 뒤집어쓰고 내 두려움을 감추고 있던 게 부끄러웠다. 그저 도전하는 것이 무서워서 핑계만 늘어놓을 뿐이라는 것을 이전까지는 몰랐다. 모리스 할머님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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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고를 때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 위주로 고르는 편이라 자서전은 딱히 읽은 적이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굳이 읽어서 뭐하나 싶은 생각도 했었다. 어쩌면 그냥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교과서나 필수 도서 목록처럼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서 위대한 인물이니 어쩌니 하면서 자랑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들에 거부감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지스 할머니의 얘기는 좀 달랐다. 제목도 그렇고 할머니라는 호칭이 붙어있으니 어딘가 친근하기도 했고 “할머니가 자서전을?”이라는 생각에 의외성이 불러온 호기심이 날 이끌었나 보다. 책을 다 읽었을 때, 정말 오랜만에 책 읽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랑 아무 연관도 없을 것 같은 역사적 사건이나 엄청나게 큰돈이 오고 가는 것 따위만 다루던 자서전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할머니가 살아온 과정을 보고 있자니 시골집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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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젊은 시절까지 시골 농장에서 살아온 내용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따스해졌다.

 

지금처럼 시끄러운 차 소리, 바쁜 일상,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화려한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도시 공해에 찌든 삶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빵을 만들고, 버터를 만들고, 소를 키우는 것 따위에서 오는 진정한 의미의 여유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자니 각박한 삶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처량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봄이 되면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이른 봄, 아직 눈발이 흩날릴 때 숲으로 가서 그해 처음으로 피어난 아르부투스 꽃을,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그 꽃을 찾아다니거나 갯버들을 꺾던 그날들이 그립습니다! 그럴 때면 하느님의 뜻 가까이, 대자연 가까이에 다가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지요. 생각해보면, 대자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고 아름다움과 평온을 간직한 곳이며, 삶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해지기 위해 간절히 가고픈 그런 곳이 아닐까요.

 

 

봄 하면 꽃이 피고 겨울의 추위가 물러나면서 다가오는 따스함과 포근함이었는데 이제는 미세먼지나 황사가 먼저 떠오르는 지경이 됐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먼지, 더위, 추위가 된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그렇게 살다가 할머니의 말씀에 그래도 봄은 봄이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년 봄에는 그래도 봄을 느끼려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여유를 즐기지는 않을까 싶다. 옆에 누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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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혈질처럼 흥분해서 난리를 피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어요. 화가 나면 그저 가만히 머릿속으로 ‘이쉬카비블’이라고 말해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엔 흔히들 쓰는 표현이었고, ‘악마에게나 잡혀가라’와 비슷한 의미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흥분을 하게 되면, 몇 분만 지나도 안 할 말과 행동을 하게 되지요. 하지만 벌컥 화를 내버리는 게 앙심을 품고 꽁해 있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꽁해 있다 보면 자기 속만 썩어 들어가니까요.

 

 

나는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있는지 때로는 의문이 듭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여러모로 지금보다 느린 삶이었지만 그래도 좋은 시절이었지요. 사람들은 저마다 삶을 더 즐겼고, 더 행복해했어요. 요즘엔 다들 행복할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할머님도 나처럼 화를 별로 안 내는 성격이었나 보다. 최근에는 짜증이나 화가 좀 많아진 것 같다. 아마 여유가 없어진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은 그저 놀기 바쁘고, 노년에는 모든 것에 미련이 없어져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만 20대부터 중년까지는 이것저것 계산하기 바빠서 그런 여유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여유가 없어지니까 급해지고 급해지니까 신경이 곤두서고 덕분에 화나 짜증이 늘어서 결국 잃는 것이 더 커지는 기분이다. 어른 말 들어서 나쁠 것 없다는 건 이럴 때 쓰나 보다. 책으로도 혼이 나버렸지만 기분이 되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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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꼈지만 이 한 문장이 내가 느낀 모든 것을 요약해준다. 저마다 처한 상황이나 생활하는 환경이 다르니까 “당장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지금 당장은 여건이 안 되더라도 내 마음의 보물상자 한편에 고이 담아두었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꺼내면 되는 일 아닌가. 내가 하고 싶은 일만큼 소중한 보물이 어디 있을까. 좀 웃기지만 해적은 항상 바다 깊숙한 곳이든 외딴섬이든 간에 보물지도를 들고 힘겹게 보물을 찾아온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나의 꿈’이라는 보물을 찾아가는 보물지도를 따라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한다. 좀 돌아가고 길을 잘못 들더라도 언젠가는 도착해서 보물상자에 담겨있던 보물을 꺼내서 모지스 할머니처럼 세상에다가 이게 내 보물이라면서 자랑할 수 있다면 이번 생은 성공했다고 뿌듯해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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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


지은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옮긴이 : 류승경

출판사 : 수오서재

분야
에세이

규격
165*210*16.7 / 무선

쪽 수 : 288쪽

발행일
2017년 12월 16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87498-18-6 (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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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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